▲ 민주통합당 대선주자인 김두관 전 경남지사가 지난 7월 8일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지지자들이 모인 가운데 대통령 출마선언과 출정식을 가졌다. 사진제공=김두관 |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2위 후보였던 노무현 후보는 사상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당시 노 후보는 당내 조직력은 취약했으나 새롭게 도입된 경선 룰의 수혜를 입어 승리를 거뒀고, 당내에선 ‘민심이 당심을 이겼다’는 평가가 나왔었다. 일반 국민들이 선거인단으로 참여할 기회가 보장되지 않았다면 노 후보의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2007년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2위 후보였던 정동영 후보가 역시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예상을 깨고 승리를 거뒀다. 당시 여론은 손학규 후보의 편이었지만 정 후보가 막강한 당내 조직력을 바탕으로 이변을 연출, ‘당심이 민심을 이겼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당시 손 후보는 이른바 ‘박스떼기’ 등 동원 경선이 횡행하고 있다며 ‘여론조사 반영’을 주장했으나 끝내 관철시키는 데 실패했고, 결국에는 분루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룰이 어떻게 짜여지느냐는 경선 결과와 직결된다. 경선 룰 협상에 임하는 각 대선주자들의 ‘협상 카드’ 속에는 이들의 필승 전략이 고스란히 담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 전 지사가 ‘모바일투표 비중 최소화’ ‘결선투표제 도입’ 카드를 들이민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 사진제공=김두관 |
기획단은 앞서 최고위원회와의 검토를 거쳐 ‘1인1표제 완전국민경선 실시’를 잠정안으로 정해 놨다. 이에 따르면 대의원과 당원, 일반 시민이 행사하는 모든 표는 똑같은 가치를 지니며 모바일투표의 한 표와 현장투표의 한 표 역시 똑같은 가치로 취급된다. 세대별 보정, 지역별 보정을 하지 않는 것도 물론이다.
김 전 지사 측은 그러나 기획단의 잠정안대로 경선을 치를 경우 모바일투표의 규정력이 지나치게 높아지게 되는데, 모바일투표가 안정성 면에서 너무 많은 허점을 노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4·11 국회의원 총선거 때처럼 모바일투표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신뢰도에 큰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전 지사 측은 또 이런 경선 방식에서는 모바일투표에 익숙지 않은 고령층, 전통 당원들은 ‘과소대표’ 되는 반면 젊은 층과 비당원들은 ‘과잉대표’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문병호 의원은 “지금의 분위기에서 모바일투표를 전면적으로 거부할 수는 없지만 차를 타고 투표소까지 찾아가 한 표를 행사하는 사람과 휴대전화로 간단하게 의사를 표현하는 사람을 동일시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모바일투표의 반영 비율을 30%로 제한하고 현장투표 반영비율을 70%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지사 측은 이와 함께 ‘결선투표제 도입’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기획단의 잠정안에 따르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본 경선은 오는 8월 25일 제주에서 시작돼 9월 23일 서울에서 끝나게 돼 있다. 추석연휴(9월 29일∼10월 1일) 이전에 후보를 확정하고 추석 이후에 장외에 머물고 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후보단일화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김 전 지사 측은 그러나 “경선에 새로운 흥행요소가 필요하다”며 ‘추석 전 2명의 결선 후보 압축, 추석 후 결선투표’를 주장하고 있다. 문 의원은 “안철수 원장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다시 단일화 경선을 치러야 하는데, 민주당 경선에서 50% 이상을 득표하지 못한 후보에게 민주당 지지가 결집되지 못할 것”이라며 “민주당 대선후보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결선투표제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지사 측은 이처럼 ‘모바일투표 반영비율 제한’ ‘결선투표제 도입’ 모두에 대해 나름의 명분을 주장하고 있지만, 김 전 지사의 경선 승리를 위해선 이 같은 방향으로 경선 룰을 변경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기획단의 잠정안대로 경선을 치를 경우 문재인 고문의 승리는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우선 모바일투표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가 쉽지 않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7월 둘째주(10∼14일) 정례조사에서 문 고문은 17∼18%대의 지지율을 보인 반면 김 전 지사는 4∼5%의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모바일투표 결과가 일반 여론조사 결과에 수렴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김 전 지사는 문 고문에게 큰 격차로 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역대 민주당 경선에서 모바일투표의 투표율이 80%를 넘은 반면 현장투표 투표율은 30%에도 못 미쳤다는 사실은 김 전 지사에게 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장투표에서 아무리 선전하더라도 모바일투표에서 생기는 격차를 뒤집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김 전 지사 측의 요구대로 ‘현장투표 70%, 모바일투표 30% 반영’이 관철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현장투표는 여론조사 상의 인기투표보다는 조직력 싸움의 양상을 띨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무지개 연합군’이라는 별칭을 낳을 정도로 김 전 지사 주변에 다양한 출신의 당내 인사들이 결합해 있다. 김 전 지사 측의 조직력은 이해찬 대표와 김한길 최고위원의 피 말리는 승부가 벌어졌던 ‘6·9 전당대회’ 때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김 전 지사의 지원을 받았던 김 최고위원이 13회의 지역 순회 경선 중 10회에서 이 대표를 이겼다.
최근에는 김 전 지사의 조직력이 더 막강해졌다. 여의도에선 “일주일에 하나씩 김두관 지지 조직이 생겨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특히 친노(친노무현) 그룹에 대한 비토 기류가 강한 호남에서도 김 전 지사는 상당한 조직력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장투표 반영 비율이 높아질 경우 김 전 지사가 역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결선투표제 역시 김 전 지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다자대결 구도에서는 여론조사 1위인 문 고문을 따라잡는 게 결코 만만찮은 과제이지만 문 고문과 김 전 지사의 ‘1 대 1 양자대결’ 구도가 펼쳐진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당내에 무시 못할 정도로 퍼져 있는 친노 비토 기류를 감안할 때 또 다른 경쟁자인 손학규 상임고문의 지지표가 문 고문보다는 김 전 지사 쪽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구도 하에 승산이 있다는 사실은 이른바 ‘이해찬-박지원 연대’에 대해 강한 역풍 속에 치러진 6·9 전당대회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문 고문이 ‘이-박 연대’에 직접 관여했다는 사실도 김 전 지사에겐 나쁘지 않다.
경선 룰을 둘러싼 김 전 지사 측의 문제제기에 손학규 고문 측이 가세하면서 김 전 지사 측은 일단 ‘경선 룰 논란’을 점화하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손 고문측도 김 전 지사처럼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선 룰 변경을 통해 대역전 드라마를 쓰겠다는 김 전 지사의 구상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우선 경선 룰 논란과 관련, 당내 여론이 문 고문 쪽에 기울어져 있다. 민주당 당헌당규에 대선후보 선출 방식으로 완전국민경선제가 명시돼 있지만 결선투표제 관련 규정은 전무하다. 특정 주자에게 쏠려 있다고 볼 수 없는 기획단의 면면, 최고위원들의 기류 역시 김 전 지사에게 유리할 게 없다.
기획단에 참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룰을 주자들에게 맡긴 결과 황당한 룰이 만들어졌고, 이는 결국 황당한 결과로 이어졌다”며 “각 주자들의 요구 사항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겠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다 들어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 최고위원도 “기획단이 만든 잠정안은 이미 최고위원회의에서 2차례 검토를 거쳤던 방안”이라며 “경선의 흥행성을 제고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마치 문재인 고문을 떨어뜨리기 위한 룰을 만드는 것처럼 국민들에게 작위적으로 비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 측의 요구에 무리가 있으며,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 전 지사 측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현장투표를 통한 대역전 구상’이 현실화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전 지사 측이 ‘무지개 연합군’의 한계를 벌써부터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워낙 다양한 출신성분의 인사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다 보니 김 전 지사 측은 내부 교통정리에 애를 먹고 있다.
경선캠프 구성이 특별한 이유 없이 지연되고 있는 게 단적인 증거다. 김 전 지사를 돕고 있는 인사들조차 “사공이 너무 많아 배가 산으로 올라갈 지경”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박공헌 언론인
▲ 문재인 상임고문은 경쟁자들의 도전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진제공=문재인 |
싸움 걸어오면 웃지요
민주통합당(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김두관 전 경남지사와 손학규 상임고문 등 경쟁주자들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는 문재인 상임고문의 경선 전략은 한마디로 ‘마이 웨이(my way)’ 전략에 가깝다. 당내 경쟁자들의 비난과 시비걸기에는 철저히 무대응으로 일관하면서 ‘경선 이후’를 겨냥한 행보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문 고문의 ‘무대응 전략’은 대선후보 경선 룰을 둘러싼 당내 논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2일 당 대선후보경선준비기획단(기획단)과 대선주자 대리인들 간의 원탁회의에서 문 고문측 대리인으로 참석한 전해철 의원은 별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전 의원은 “기획단이 제시하고 최고위원회를 거친 현재의 경선 룰 잠정안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다만 김 전 지사 측과 손 고문 측의 ‘결선투표제 도입’ 주장에 대해서는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완전국민경선제에서 결선투표는 시간과 비용에서 문제가 있는 데다 시민의 재투표 참여율이 저조할 우려가 높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경선 결과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룰 협상 과정에서 문 고문 측이 이처럼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현재의 경선 룰 잠정안이 자신들에게 불리할 게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더욱이 이 잠정안은 중립적 인사들로 구성된 기획단에서 큰 틀을 마련하고, 최고위원회의에서 2차례 토론을 거쳐 만들어졌다. 문 고문이 직접 나설 이유가 없는 셈이다.
‘게임의 규칙’을 둘러싸고 여론조사 2위, 3위 후보들과 다툼을 벌이는 모양새를 보일 경우 문 고문에게 유리할 게 없다는 것도 ‘무대응 전략’의 또 다른 이유다. 문 고문 경선캠프의 한 관계자는 “모든 경선에서 1등은 집중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때 함부로 대응하는 것은 다른 경쟁자들을 키워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치고받고 싸우기보다는 모든 당내 주자들을 포용하는 모습을 견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문 고문은 앞으로도 당내의 문제제기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야권 대표주자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가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그는 특전사 마라톤 대회 참석, 태릉선수촌 방문 등을 통해 소탈하고 친근하며 강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형성해 가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문재인식 ‘마이 웨이’ 전략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친노(친노무현) 그룹에 대한 호남 지역의 비토 기류가 여전한 데다 ‘문재인의 가치’ ‘문재인의 비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