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선·박순영 제청 땐 대통령이 임명 않고 뭉갤 가능성…법조계선 ‘중립적’ 후보들 낙점 전망
앞서 이뤄진 헌재재판관 추천 때부터 대통령실에서 의사를 드러낸 바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이는 다 아는 내용이다. 대통령실과 대법원은 대법관·헌법재판관 임명 때마다 상호 소통하며 인사를 조율하는 것은 공공연한 관례다. 법적으로 대통령에게 임명권이 있다 보니 사전에 정보를 의견조율을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과 윤석열 대통령은 서로 간에 ‘코드’가 맞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 그러다 보니 대통령실에서는 ‘원치 않는 인사가 임명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8명 후보 중 2명 ‘거부’ 운운
7월 18일자로 조재연(사법연수원 12기)·박정화(20기) 대법관의 대법관 임기가 끝난다. 법원은 후임을 뽑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대법관추천위원회는 5월 회의를 열고 37명의 후보자 가운데 후임 후보자 8명을 압축해 대법원장에게 추천했다.
권영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순영 서울고법 판사, 서경환 서울고법 부장판사,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 신숙희 양형위원회 상임위원(고법 판사), 엄상필 서울고법 부장판사, 윤준 서울고법원장, 정계선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 등이 차기 대법관 후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헌법에 적힌 대법관 임명에 대한 조항은 한 문장이 전부다. ‘대법원장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적시돼 있다. 대법관 제청 과정은 ‘법원 내·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대법관 후보추천위원회가 후임 대법관 자리의 3배수 이상을 추천’하고, ‘대법원장이 이 중에서 최종 후보를 골라 대통령에게 제청’하면 된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대법원과 대통령실이 의견을 조율해 대법관 후보를 낙점하기에 문제가 된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8명 중 정계선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27기)와 박순영 서울고법 판사(25기) 등 2명에 대해 대통령실이 강하게 거부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충주여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온 정계선 부장판사는 진보적 판사들의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 및 우리법연구회 활동을 했고, 여성 최초로 서울중앙지법 부패전담부 재판장을 맡아 횡령·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15년의 실형을 선고한 바 있다.
박순영 고법판사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관위원으로 김 대법원장 사람으로 알려졌다. 노동법 전문가인 박순영 고법판사는 중앙선관위 선관위원으로 임명될 때에도 관행을 깨고 지명돼 ‘김명수 사람’이라는 평이 나왔다.
#9월에 새 대법원장 부임하면…
사실 이번이 윤석열 대통령·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이뤄진 첫 대법관 임명은 아니다. 앞서 현 정부 첫 대법관에 당시 오석준 제주지법원장(19기)이 임명된 바 있는데, 오 대법관은 윤석열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로 가까운 관계였다. 때문에 당시에는 대법관 임명을 놓고 ‘대법원장이 대통령 눈치를 봤다’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김명수 대법원장 역시 임기가 9월 끝나는 터라 이번이 마지막 인사다. 후보로 추천된 8명 가운데 2명의 진보인사 가운데 1명을 올릴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곧바로 대통령실에서는 ‘대통령 거부권’ 이야기가 나왔다. 대통령실은 언론 등에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동안 정부는 삼권분립 구조 속 법원의 인사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를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은 선례는 없었다. 물론 갈등은 있었다. 2003년 대법관 선발 과정에서 최종영 대법원장의 연공서열 우대 방식 대법관 추천에 노무현 대통령이 ‘제청 거부’를 검토한 적은 있지만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에도 당시 청와대와 이용훈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이견이 발생하자, 협의를 거쳐 민영일 당시 청주지방법원장을 대법관을 후보로 제청한 바 있다.
벌써부터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법관 후보 제청에도 임명을 하지 않고 보류하는 방식이다. 제청서를 받더라도 국회에 동의안을 내지 않는 방법으로 시간을 끈 뒤 대통령이 원하는 후보가 다시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방식이다. 오는 9월이면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원장이 부임하기에 기존 제청을 철회하고 새로 제청하면 된다. 헌법에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적혀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부분은 없다는 게 법조계 다수의 관측이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거부권이기에 대통령실과 김명수 대법원장 모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2021년 임성근 당시 부산고법 부장판사 사표 수리 거부 사건으로 고발돼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김 대법원장도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실도 부담이 없지 않다. 박정화 대법관를 대체하는 자리인 만큼 여성 대법관 임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 하지만 정계선·박순영 판사를 제외하면 신숙희 양형위원회 양형위원(25기)만 남고, 유력후보군으로 거론되지도 않는다. 때문에 대통령실 입장대로 차기 대법관 2명을 모두 서울대 법대·판사 출신의 남성으로 임명하면 여성 대법관 몫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비판도 불가피하다.
#비교적 중립 후보군들 낙점 가능성
그러다 보니 법원 안팎에서는 ‘중립’적인 엘리트 법관들이 대법관 후보로 낙점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경환 고법부장판사와 권영준 서울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서경환 고법부장판사(21기)는 건국대 사대부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회생법원장 등을 거친 엘리트 판사다. 광주고법에서 세월호 사건 2심 재판을 맡아 이준석 선장에게 살인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한 바 있다. 권영준 교수(25기)는 대건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35회 사법시험을 수석 합격했다. 1999년 서울지법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고 2006년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이 밖에도 윤관 전 대법원장의 아들이자 대법원 재판연구관,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역임한 윤준 서울고법원장(16기)이나 정경심 전 동양대 자녀 입시비리 사건 항소심 재판장을 맡았던 엄상필 고법부장판사(23기) 등의 대법관 임명 가능성도 거론된다.
재경지역의 한 고법 부장판사는 “앞선 오석준 대법관도, 김형두·정정미 헌법재판관 임명 때에도 김명수 대법원장은 문재인 정부 때와는 달라진 인선 코드를 보여줬다”며 “윤석열 정부가 법조 인사에 대해 잘 알다 보니 ‘내 사람’을 앉히려는 게 강하고 이를 대법원장이 수용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무난한 인사가 이뤄지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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