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 박명근·최지민도 맹활약…‘사직 아이돌’ 김민석은 외야수로서 유일한 후보
2년 차 신인왕 후보들도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입단한 오른손 강속구 투수 문동주(한화 이글스)와 왼손 불펜 투수 최지민(KIA)은 후배들을 위협하고도 남을 '중고 신인'들이다. 이들은 나란히 오는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야구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올해 신인왕 후보는 유독 마운드 쪽에 경쟁자가 몰려 있는 게 특징이다. 외야수인 김민석을 제외하면,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는 선수 대부분이 투수다.
#선두로 치고 나간 윤영철
윤영철은 데뷔 첫해부터 KIA 선발진의 한 축을 맡으면서 5월 이후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으로 급부상했다. 충암고 출신 왼손 투수인 그는 올해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전체 2순위로 지명된 특급 유망주다. 미국 피츠버그 파이러츠에 입단한 심준석(덕수고 졸업), 한화에 전체 1순위로 뽑힌 김서현(서울고 졸업)과 함께 지난해 '고교 투수 빅 3'로 꼽혔다.
시속 160㎞에 육박하는 강속구로 유명해진 심준석, 김서현과 달리 윤영철은 직구 최고 구속이 시속 140㎞ 중반대에 머문다. 하지만 안정감과 경기 운영능력은 셋 중 단연 으뜸이었다. 지난해 고교야구 전국대회 15경기에서 13승 2패, 평균자책점 1.66으로 잘 던졌고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돼 18세 이하 야구 월드컵 에이스로 활약했다. 한국 야구·소프트볼인의 밤, 고교야구 최동원상 등 여러 시상식에서 고교 최고 투수상도 휩쓸었다. 윤영철은 프로에 발을 내딛자마자 벌써 그 이름값을 해내고 있다. '왼손 투수 명가' KIA의 또 다른 후예이자 '포스트 양현종'으로 입지를 다지는 중이다.
1군 무대 첫 등판에서는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데뷔전이던 4월 15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3⅔이닝 동안 안타 4개와 사사구 5개(볼넷 4개·몸에 맞는 공 1개)를 내주고 5실점 했다. 김종국 KIA 감독이 "5이닝 3실점 정도를 기대한다"고 했지만, 윤영철은 1회에 이미 공 40개를 던지면서 5점을 내주고 어렵게 출발했다. 첫 이닝에서 데뷔 첫 볼넷, 피안타, 피홈런, 폭투가 모두 나왔을 정도다. 그래도 KIA 팬들은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마운드를 내려가는 윤영철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팀의 미래를 향한 따뜻한 격려였다.
윤영철은 그 후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기 시작했다. 4월(3경기 평균자책점 4.85)엔 들쑥날쑥한 적응기를 거치다가 5월 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2.03을 기록하며 빠르게 궤도에 올랐다. 4월 3일 롯데전(5이닝 1실점)에서 상대의 10연승을 저지하는 데뷔 첫 승을 거뒀고, 24일 한화전에서는 6이닝 1실점으로 첫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에 성공했다. 무승으로 첫 달을 마친 그가 5월에만 패전 없이 3승을 수확했다. 6월 첫 등판도 결과가 좋았다. 선두 SSG를 상대로 7이닝 6피안타 1볼넷 2실점으로 역투했다.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해 패전 투수가 됐지만, 점점 더 안정적인 기량을 뽐냈다. 김종국 감독은 "이제 계산이 서는 투수다. 자신의 몫을 해내고 있다. 자신감도 많이 생긴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투수 출신인 정민철 MBC 해설위원도 "윤영철은 기술과 배포를 겸비했다. 다른 신인 투수들보다 구속이 떨어지는데, 배짱이 없으면 스트라이크존에 던지기 어렵다"며 "기술력이 좋으니 베테랑 같은 피칭이 가능하다. 완성도 높은 신인 투수"라고 높이 평가했다.
#강속구의 대명사 문동주
2년 차 투수 문동주는 향후 한국 야구를 이끌어 갈 차세대 국가대표 에이스로 꼽힌다. 고교 시절부터 강속구로 이름을 날리다 한화의 마지막 1차 지명을 받고 지난해 입단했다. KIA의 연고지역인 광주 진흥고 출신이지만, 해당 신인드래프트 전년도 최하위 팀 자격으로 전국구 1차 지명이 가능했던 한화는 주저 없이 문동주를 대전으로 데려갔다. 지난해 입단한 신인 선수 중 가장 많은 계약금 5억 원을 받았고, 에이스를 상징하는 등 번호 '1'을 유니폼 뒤에 새겼다. 첫 시즌엔 부상이 길어져 재활군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지만, 올 시즌엔 건강한 몸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돌고 있다.
KBO는 입단 5년 이내에 누적 투구 이닝 30이닝 이하인 투수와 60타석 이하인 타자에게 신인상 후보 자격을 준다. 문동주는 지난해 28⅔이닝만 던져 신인왕 후보가 될 수 있다. 올해가 진짜 '슈퍼 루키'의 존재감을 뽐낼 기회인 셈이다. 실제로 문동주는 4월 12일 KIA와의 광주 경기 1회 박찬호 타석에서 시속 160.1㎞의 강속구를 던져 뜨거운 화제를 일으켰다. 2011년 KBO 공식 기록통계업체 스포츠투아이가 피치 트래킹 시스템(PTS)을 도입한 이후 국내 투수가 시속 160㎞를 넘긴 건 문동주가 처음이었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구속의 벽을 뼈저리게 실감한 한국 야구는 문동주의 등장을 두 팔 벌려 반겼다.
다만 5월 들어 크게 흔들려 걱정을 샀다. 4월 4경기에서 2.38이었던 평균자책점이 5월 4경기에선 8.22로 치솟았다. 15와 3분의 1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무려 14점을 내준 탓이다. 볼넷이 13개로 탈삼진(11개) 수보다 많았고, 피안타율은 0.302에 달했다. 지난달 13일 SSG전에선 2와 3분의 1이닝 동안 7점을 내주고 무너지기도 했다. 데뷔 후 최다 실점 기록이었다. 강속구로 믿음을 얻은 문동주가 제구력 문제로 다시 물음표를 던졌다.
다행히 부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문동주는 6월이 시작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환골탈태했다. 6월 첫 등판이던 1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데뷔 후 가장 많은 7이닝을 소화하면서 2피안타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7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도 6이닝 동안 볼넷과 몸에 맞는 공 없이 1실점(비자책)으로 잘 던졌다. 이날 던진 공 101개는 문동주의 한 경기 최다 투구 수였다.
문동주의 6월 평균자책점은 여전히 '0'이다. 무엇보다 13이닝 동안 볼넷을 단 한 개만 내준 게 고무적이다. 5회를 넘기는 것도 힘겨웠던 5월의 악몽에 마침표를 찍고 다시 신인왕 레이스에 불을 붙이는 모양새다. 류중일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도 큰 고민 없이 문동주를 최종 엔트리에 적어넣을 수 있게 됐다. 문동주는 "풀타임이 처음이라 모든 걸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한 시즌을 잘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험을 통해 아직 배워나가는 과정"이라며 "경기마다 투구 감각이 너무 다른데, 좋았을 때의 감각을 어떻게든 유지하는 게 내 과제다. 좋은 기억을 갖고 준비한다면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불펜 두 명과 '사직 아이돌'
불펜에서 뛰는 신인 투수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LG 박명근은 사이드암으로 시속 150㎞에 육박하는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다. 고교 시절에도 이런 이유로 전국구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다만 키가 174㎝로 작은 게 핸디캡으로 여겨졌다. 올 시즌 KBO 등록선수 587명의 평균 신장은 182.5㎝. 그중 투수 304명의 평균 신장은 이보다 큰 184.3㎝다. 박명근은 평균보다 10㎝가량 작은 셈이다. 청소년 대표팀 출신인 박명근의 지명 순번이 1~2라운드를 지나 3라운드까지 밀린 이유다. 그러나 박명근은 "키는 내 콤플렉스가 아니다. 작은 키로도 힘 있는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실제로 올해 부임한 염경엽 LG 감독은 일찌감치 박명근에게 눈도장을 찍고 원사격에 나섰다. 박명근은 LG에 입단한 신인 중 유일하게 1군 스프링캠프에 동행했고, 개막 후엔 불펜 필승조를 맡아 마무리 투수 고우석이 부상으로 이탈했던 LG의 허리에 큰 힘을 실었다. 6월 8일까지 25경기에 등판해 1승 5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2.35를 기록하면서 LG 불펜의 '믿을맨'으로 확실히 자리를 굳히는 모양새다.
KIA 2년 차 최지민은 문동주와 함께 '중고 신인'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최지민 역시 지난해 2차 지명 1라운드에서 전체 5순위로 뽑힌 수준급 유망주다. 지난해 6이닝을 던진 게 전부라 올해 신인왕 후보 자격을 갖췄다. 그는 올 시즌 초반 필승조의 동반 부진으로 고전하던 KIA 불펜에 투입된 뒤 맹활약하면서 신인왕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5월 한 달간 11경기에서 2승 1세이브 2홀드를 챙기는 동안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월간 평균자책점 '0'을 기록했다. 최고 구속이 시속 150㎞까지 올라온 점도 고무적이다. 6월 들어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도 보였지만,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충분히 승선할 만한 활약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KIA는 KBO 올스타전에 출전할 구단별 베스트12 후보 불펜 투수 부문에 최지민을 추천했다. 현재 팀 내에서 최지민의 입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김종국 KIA 감독은 "최지민은 구위가 좋아 왼손 타자와 오른손 타자에게 모두 통하는 유형의 투수"라며 "이런 장점이 계속 보인다면 선발이나 마무리 투수도 충분히 맡을 수 있다"고 흐뭇해했다. 최지민도 "감독님께서 내게 기대하시는 바가 크다는 생각에 위기 상황에도 기쁜 마음으로 등판한다"며 "늘 내 리듬대로 던지려고 노력한다. 지난해 이맘때보다 컨디션과 자신감이 많이 올라온 것 같다"고 뿌듯해했다.
신인왕 후보들 중 유일한 외야수인 김민석은 올해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김서현과 윤영철 다음으로 이름이 불린 '될성부른 떡잎'이다. 전체 5순위 안에 호명된 신인들 중 포지션이 투수가 아닌 선수는 김민석이 유일하다. 휘문고 시절부터 '제2의 이정후'로 불릴 만큼 타격 능력이 빼어나기로 유명해서다. 실제로 김민석은 개막과 동시에 꾸준히 1군에서 자리를 지키면서 성장 기회를 얻었다. 4월 9일 부산 KT 위즈전에 2번 타자 중견수로 첫 선발 출장한 뒤엔 주전으로도 점점 자리를 굳혔다. 테이블세터와 9번 타자 자리를 오가며 구단의 집중 육성을 받고 있다.
김민석은 인기도 독보적이다. 롯데가 올 시즌 상위권을 달리면서 벌써 '사직 아이돌', '아기 갈매기' 같은 별명까지 얻었다. 올 시즌 롯데 구단 용품숍에선 김민석의 유니폼이 가장 많이 팔려 나가고 있다는 후문이다. 롯데 역시 KBO 올스타전 구단별 베스트12 외야수 부문 후보에 김민석을 올렸다. 올해 올스타전이 부산에서 열리는 터라 김민석의 출전이 성사되면 더 열기가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반등이 필요해
송영진은 올해 데뷔한 신인 중 처음으로 승리 투수가 된 주인공이다.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전체 15순위로 뽑힌 그는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한 뒤 4월 2일 KIA전과 8일 한화전에서 불펜으로 첫 두 경기를 소화했다. 이어 14일 NC 다이노스전에서 5이닝 동안 삼진 7개를 잡고 피안타와 실점 없이 호투해 데뷔 첫 승을 신고했다. SSG 선발진에 부상 공백이 생기면서 땜질 선발로 등판한 건데, '준비된 신인' 답게 단숨에 기회를 낚아챘다. 이후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돌면서 4월 한 달간 2승 무패, 평균자책점 1.93을 기록했다. 단연 신인왕 1순위 후보로 꼽힐 만했다.
다만 5월 들어 급격히 페이스가 떨어진 게 문제였다. 첫 등판인 7일 키움전에서 3⅔이닝 6실점(4자책점) 하고 물러난 것을 시작으로 3경기째 안정을 찾지 못하고 흔들렸다. 5월 3경기 평균자책점이 11.81이다. 재정비 후 반등이 필요한 시간이다. 김원형 SSG 감독은 결국 그를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하면서 "좋은 투수지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인지 시즌 초반과 달리 조금씩 부침이 생겼다. 제구가 안정적인 투수라 좋게 봤는데, 최근엔 제구가 너무 흔들렸다"고 안타까워했다.
강속구로 유명한 전체 1순위 신인 김서현도 6월 들어 급격한 난조를 보여 2군에 갔다. 그는 4월 19일 처음 1군 경기에 등판한 뒤 꾸준히 마운드에 올라 경험을 쌓았다. 5월 11일 최원호 감독이 새로 부임한 뒤엔 불펜의 필승 셋업맨으로 확실한 보직도 받았다. 5월 12일 SSG전에선 1이닝 무실점으로 데뷔 첫 세이브를 따내면서 '마무리 투수'라는 꿈을 향해 한발 더 다가서는 듯했다.
그러나 5월 말부터 제구 난조로 급격히 사사구가 늘었다. 6월 1일 키움전에선 아웃카운트 한 개를 잡는 동안 볼넷 3개를 내줘 3실점을 기록했다. 결국 7일 두산전에서 볼넷과 몸에 맞는 볼로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하면서 다시 2군행 통보를 받았다. 구위에 걸맞은 제구력을 가다듬을 시간이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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