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영입 준비 중이지만 영남권 쏠림, ‘신당’도 부담…용산 입김 강할 경우 ‘필승조’ 전략 공천 가능성
여당에선 총선 준비 부족을 지적한 홍 시장 말에 수긍하는 기류가 우세하다. 하지만 총론은 맞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용산 대통령실로 힘의 축이 기울어져 있는 구도 속에서 여당 차원의 독자적 총선 준비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15대 총선의 교훈
여당 지도부의 총선 준비가 엉망이라면서 당 지도부에 융단폭격을 가한 홍 시장은 1996년 4월 15대 총선을 소환하고 나섰다.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은 선거를 앞두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 지역 맞춤형 인재를 발탁하는 등 확실했던 준비 덕분에 해방 이후 처음으로 수도권에서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정권 말기라는 어려운 처지임에도 원내 다수당까지 차지했다.
지금과 같은 양당이 아닌 다당제 구도로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139석을 얻어 제1당이 됐다. 김영삼 대통령 인기가 급락하고 그의 라이벌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정치권에 복귀한 선거였다. 정치 전문가들은 새정치국민회의의 원내 1당 등극을 점쳤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더욱이 새정치국민회의의 전통적 강세지역인 서울에서 신한국당은 27석을 얻어내면서 18석에 그친 국민회의를 눌렀다.
신한국당은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고 한솥밥을 먹던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자유민주연합) 분가까지 이뤄진 터라 “이번 총선은 어렵다”는 패배감이 당내에 가득 자리 잡고 있었다.
신한국당은 김 대통령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선대위원장으로 기용하는 특단의 카드를 꺼냈다. 이 선대위원장에게 여당 비례대표 1번을 주고 총선 지휘를 맡겼다. 총리직을 맡은 지 몇 달 지나지도 않아 김 대통령과 갈등을 빚다가 사퇴한 이회창이었기에 그의 기용은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새로운 얼굴을 수도권에 전진 배치하면서 바람을 일으킨 것도 주효했다. 검사였던 홍준표 현 대구시장도 영입돼 서울 송파갑으로 나왔고, 운동권 출신의 김문수 이재오 등도 이때 출마해 배지를 달았다. 박성범 맹형규 이윤성 등 방송 기자들도 인지도를 무기로 데려와 수도권에서 모두 당선시켰다.
당시를 기억하는 국민의힘 원로들은 15대 총선에 대해 ‘구조의 불리함을 사람이 만들어낸 아이디어의 힘으로 이겨낸 선거’라고 입을 모은다. 강력한 제1야당 국민회의 등장에다 자민련 돌풍까지 나타나면서 도무지 좋은 환경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 편’까지 품는 과감한 인재 발굴 전략을 쓰는 철저한 준비를 통해 이길 수 없는 구조를 돌려세웠다는 게 원로들의 회고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16대 총선의 기억도 여당이 되새겨봄직하다는 얘기도 있다.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정치적으로 가까운 관계였던 김윤환 의원 등을 내치는 등 과거를 배제하고 미래로 가는 공천을 하면서 남북정상회담 등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선전했다는 것이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국토부 장관 등 386세대가 대거 들어왔었고 세대교체 덕분에 박빙의 차이이기는 했지만 한나라당은 새천년민주당·자민련 연합군을 누르고 1당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비대위원장으로서 지휘했던 2012년 총선, 그리고 대통령으로 있었던 2016년 총선이 대비되기도 한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박 대표 지휘하의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를 앞세운 김종인 박사를 영입하는 한편, 이준석이라는 청년 정치인도 데리고 왔다.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를 두고 서울 강남 현역 전원 교체, 하위 25% 컷오프 등 일정한 틀을 바탕으로 한 공천도 했고 총선 승리로 이어졌다.
2016년은 달랐다. 박 대통령이 공천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됐고 ‘친박 공천’이라는 잡음으로 직결됐다. 당내에서는 분란이 일어났고 여론도 나빠졌다.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나와 호남 의석을 상당수 잠식했는데도 제1당은 민주당이 됐다. 새누리당은 2당으로 밀려나는 쓴맛을 봐야 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 말이다.
“15대 총선은 현직 대통령이 당의 카리스마형 총재로서 전권을 쥐고 있었기에 준비되고 과감한 공천이 이뤄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정치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는데 그 사례를 지금 여당에 단순 접목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잖은 기간 동안 내 편, 네 편 따지지 않고 인재를 널리 구한 15대 총선의 준비성은 본받을 만하고 역대 총선 역사를 살펴볼 때 밀실·측근 공천은 무조건 실패했다는 교훈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스템 공천 힘쓰겠다지만…
지적과 우려가 쏟아지고 있긴 하지만 국민의힘은 나름대로 시스템 공천 준비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데이터에 기반한 현역 의원 평가는 물론, 인물 데이터를 오랫동안 축적해온 터라 새로운 인재 발굴 작업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언론 보도, 인터넷 커뮤니티 평가 등을 빅데이터로 분석한 지표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빅데이터로 국회의원 후보자의 적합성을 평가할 수 있는 공천 모델 개발을 조만간 마무리한다는 당 관계자들 전언도 있다. 후보자의 언급 빈도, 긍·부정 평가, 인지도 등을 종합 평가해 계량화하는 게 핵심이다. 인터넷 ‘맘카페’까지 살펴 후보자의 세평을 알아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빅데이터 분석은 여론조사 단점을 보완하는 조치다. 여론조사는 낮은 응답률과 거짓 응답 가능성이라는 적잖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 객관적 평가지표가 되지 못한다는 비판에 휩싸여왔다. 더욱이 여론조사 과정에서 불법적 방법을 동원하는 경우도 많아 경선 후유증도 심각했다.
인재 발굴 작업 역시 광범위하게 진행된다는 게 당 관계자들 설명이다. 그러나 당의 텃밭인 영남에는 인재가 넘쳐나고, 수도권은 상대적으로 인재를 찾기 어렵다는 게 여당의 깊은 고민이다. 과거 서울에서 출마했던 이력이 있는 사람들까지 “이번엔 고향으로 가겠다”는 경우도 많아 고심은 더욱 깊어지는 중이다.
신당 창당 바람이 불고 있어 기껏 발굴해놓은 정치 신인들의 대이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여당의 총선 준비를 어렵게 만드는 대목이다. 현재 ‘금태섭 신당’ ‘양향자 신당’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2개 당이 나올지, 합쳐진 제3지대 단일정당이 나올지도 오리무중인 상태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은 6월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 2차 토론회 인사말을 통해 명망가가 아닌 정치 신인 위주의 신당 구성 계획을 내놨다. 9월쯤 창당 의사를 밝힌 그는 “현역 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의 합류 여부를 묻는 데 단순히 명망가들이 모여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지금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라면서 “기존 정치인보다 우리 정치에 새 시각, 활력을 제공할 젊은 분들과 함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지난 4월 열린 포럼 1차 토론회는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장소를 대관했고, 이번 2차 토론회는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주최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신당에 야권은 물론, 여권 구성원들이 합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금 전 의원과 별도로 더불어민주당 출신 무소속 양향자 의원(광주 서구을)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으며, 6월 26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창당 발기인 대회를 개최한다.
#믿는 구석은 용산뿐?
정치권에선 국민의힘 총선 준비과정에서 용산 쪽 입김이 커질 것이라는데 이견이 별로 없다. 그 연장선에서 자꾸만 터져 나오는 것이 ‘검사 공천설’이다. 이 얘기만 나오면 당 지도부는 이를 부인하는데 온힘을 기울이는 중이다.
김기현 대표는 6월 15일 취임 100일을 맞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인연이 있는 대통령실이나 내각 등의 검사 출신 인사들이 대거 공천받는 ‘검사 공천’이 우려된다는 지적에 대해 “터무니없는 억측이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선을 확실히 그었다. 그러면서 “당헌·당규에 의한 시스템 공천을 철저히 하고, 공천 과정에 사심 개입이 배제되도록 철저하게 챙기겠다”고 밝혔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고 했다. 검사 공천설에 대한 지도부의 적극적인 부인 발언이 잇따라 나오는 것 자체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해석과 연결되고 있어 당내 불안감은 더 커지고 갑론을박도 거세지는 형국이다. 더욱이 민주당의 여러 헛발질에도 불구하고 새 지도부 구성까지 하고 이제 갓 100일을 넘긴 국민의힘 지지율이 신통찮다는 것은 국민의힘으로선 큰 부담이다. 이런 아킬레스건이 있다 보니 지도부가 목소리를 높여도 권위가 실리지 않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 대표의 100일 기자회견이 있었던 날에도 지도부를 꼬집는 의견이 쏟아졌다.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민주당에서 엄청난 악재들이 팡팡 터지고 있음에도 국민의힘이 반사이익 내지는 주도권을 가지지 못하는 모습”이라며 “김기현 대표가 100일 동안 정확히 뭘 했는지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고 혹평했다.
윤상현 의원도 6월 15일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지지율 면에서 수도권은 더 밀리는 게 결국엔 당의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해서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같은 날 KBS2TV ‘더 라이브’에 출연, “(당이) 안정화됐다고 하는데 사실 당이 죽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여러 당내 구성원들이 지적하듯 ‘움츠러든’ 여당의 모습이 단기간에 변화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결국 당이 주도권을 갖기가 어렵고 사실상 대통령 지지율로 내년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은 더욱 비등해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여러 경로의 외부 천거 방식을 통해 물갈이 형식의 총선 필승조가 구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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