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로 억대 연봉을 받을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 여의도 증권가다. 하지만 이처럼 높은 연봉도 시장이 받쳐줄 때 얘기다. 유럽 재정위기에 중국의 성장부진까지 겹치며 글로벌 경제가 휘청거리다 보니 시장이 엉망이다. 증권사 대부분이 적자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웬만하면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브로커, 투자은행(IB) 담당자 등도 충격이 크다. 실적이 부진하다 보니 연봉이 깎이는 것은 물론, 글로벌 경제 상황이 단기간에 나아지기 어려워지면서 아예 자리까지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 ‘죽을 맛’ 애널리스트
애널리스트는 보통 적게는 1억~2억, 많게는 3억~5억 원의 연봉을 받는다. 그런데 이들의 연봉은 상당부분 성과에 연동된다. 이들의 성과란 투자자들이 이들의 투자조언을 받아 주식거래에 나서면서 받는 주식위탁매매수수료다. 그런데 증시가 침체되면서 주식투자 전망이 나빠지고, 거래가 줄어들었다. 증시 하루 거래대금이 평균 9조~10조 원대에서 4조~5조 원대로 급감하다 보니 이들의 매출도 그만큼 줄고, 매출보다 더 가파른 속도로 이익이 감소하고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낮에는 투자자 방문하고, 밤에는 각종 정보를 분석하는 게 일상인 것은 똑같은데 부르는 곳들은 호황 때보다 되레 더 많다. 그런데 가봐야 뭘 살까를 물어보는 게 아니라 시장이 얼마나 더 나빠질 것인지를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거래와 연결되지 않는 게 당연하다. 힘은 드는데, 벌이는 안 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이러다 보니 애널리스트의 고용과 처우를 결정하는 리서치센터장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경영진은 애널리스트 연봉이 너무 많다며, 그리고 애널리스트 숫자도 너무 많은 게 아니냐며 비용절감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봉을 너무 깎자니 회사를 떠날 것 같고, 사람을 줄이자니 당장 영업에 공백이 생길 수 있어 진퇴양난이다.
한 리서치센터장은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게 아니다. 지금 어렵다고 연봉 깎고 사람 줄였다가 시장 좋아지면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유능한 인력을 뽑고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 비용 때문에 리서치 축소하면 그동안 잡아뒀던 고객들도 놓칠 수 있다”며 “그야말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금융투자협회 통계를 보면 자산 규모 상위 10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 수는 지난해 6월 말만 해도 672명이었으나 올 6월 말 625명으로 47명, 7%가 줄었다.
# ‘속만 태우는’ 펀드매니저
보통 펀드매니저는 연봉 1억~2억 원, 이름 난 펀드매니저는 3억 원 이상을 받는다. 그리고 성과에 따라서 연봉은 다시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억 단위로 높아진다. 그런데 요즘 펀드매니저의 성과인 수익률이 문제다. 시장보다 나은 성과를 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수익률 절대치가 이들의 성과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익명의 펀드매니저는 “시장이 5% 하락할 때 펀드가 플러스 수익률만 내도 사실 운용을 잘한 셈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이 10% 오를 때 15%의 성과를 내면 같은 5%포인트 초과수익이라도 더 많은 성과급을 받는다”며 “요즘 같은 약세장에서는 열심히 해도 겨우 본전일 뿐 성과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비슷한 업종인 투자자문사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문사 투자전문가들도 대부분이 펀드매니저 출신이고, 이들은 회사 실적에 따라 이익금을 분배받는 방식이다. 그런데 자문형랩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기만 하는 상황이 되면서 수익의 원천인 자문수수료도 덩달아 줄어들고 있다. 역시 돈이 덜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잘해야 본전인 셈이다. 특히 중소형 자문사의 경우 아예 월급까지 깎이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투자자문사 관계자는 “운용사보다 더 많은 성과급을 보고 자문사로 옮긴 경우가 많은데, 불황일수록 덩치가 작은 자문사의 경영난이 더 심각하다 보니 오히려 운용사에 있을 때보다 적게 받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고 귀띔했다.
# ‘손가락 빠는’ 브로커
거래량이 뚝 떨어진 주식 브로커(중개인)들의 사정은 애널리스트들과 비슷하다. 그런데 최근 금리인하로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채권브로커들도 울상이다. 채권시장을 외국인이 좌우하면서 국내 기관의 거래는 끊긴 데다, 최근 채권 거래가 수수료 부담이 큰 장외에서 수수료 부담이 없는 장내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게는 2억~3억, 많게는 10억 원이 넘는 연봉을 받던 채권브로커들도 요즘은 성과급을 받기 위한 최소한의 손익분기점을 맞추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 채권브로커는 “절대금리 수준이 2%대로 떨어지면서 국내 투자자들의 채권거래가 뚝 끊겼다”면서 “외국인들은 환차익이 있는 데다 애초에 투자금을 조달할 때의 금리가 국내 금리보다 훨씬 낮다 보니 투자할 이유가 충분한데 국내는 그렇지 않다. 게다가 장내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브로커들의 주 무대인 장외시장도 크게 위축됐다”라고 설명했다.
# ‘마음만 바쁜’ 투자은행(IB)
시장 상황만 좋으면 가장 큰 돈을 버는 IB 종사자들도 요즘은 마음만 바쁘다. 잘나갈 때는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성과급을 챙기는 경우도 수두룩하지만, 증시 불황으로 아예 일감이 사라지고 있다. 주식은 시황이 나빠서, 채권은 발행자와 투자자 간 기대금리가 달라서 발행이 원활치 않다. 크지는 않지만 꽤 짭짤한 수익을 안겨주는 기업공개도 뚝 끊겼다. 대형 생명보험사와 유통기업 등 인수합병(M&A) 시장에 꽤 많은 매물이 나와 있는 듯하지만 몇몇 외국계와 대형운용사가 독점하고 있고, 그나마 주간사를 맡아도 시장상황이 어렵다 보니 수수료 수준이 예전만 못하다.
한 IB 종사자는 “IB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딜(Deal)을 얼마나 따오느냐인데, 요즘 상황이 워낙 어려워서 딜 자체가 거의 없다. 진행 중인 딜도 처리가 지연되면서 비용만 계속 들어가는 상황”이라며 “경기에 따른 부침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업종이라지만, 당분간 계속 경기가 좋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아 앞이 캄캄하다”고 한탄했다.
# ‘그나마’ 외국계
이처럼 여의도에서 잘나간다는 이들이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나마 외국계 증권사 종사자들은 좀 나은 편이다. 사든 팔든 국내 금융시장을 주무르는 외국인 자금 규모가 워낙 큰 데다 외국계 증권사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외국인 주식·채권 거래의 상당부분은 이들 외국계 증권사를 통해 이뤄진다.
게다가 국내 증권사처럼 지점이나 각종 지원부서 비용부담이 거의 없는 슬림한 조직 덕분에 불황 때 느끼는 고정비 부담 정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잘나갈 때처럼 10억 원 가까운 연봉을 챙기는 경우는 크게 줄겠지만, 올해에도 직원평균 2억~3억 원의 연봉은 거뜬히 챙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