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SKT에 내용증명…“개인 이직 막기 어렵지만 함께 일했던 직원 접촉했다면 도덕적 문제 될 수도”
네이버클라우드는 이달 15일 SKT에 AI 핵심 인력 스카우트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내용증명에는 정석근 전 네이버 클로바 CIC 대표를 SKT 미국법인 대표로 채용한 점, 네이버 측 AI 전문가들을 잇따라 빼가는 상황을 묵과할 수 없다는 점,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 및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점이 명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석근 전 네이버 클로바 CIC 대표는 지난 4월 네이버를 퇴사한 뒤 같은 달 SKT 미국법인에 입사해 두 달 만에 SKT의 ‘글로벌‧AI테크 사업부’ 부장을 맡았다. 정 전 대표는 네이버 클로바 CIC 대표로 근무할 당시 세계에서 세 번째로 초거대 AI 모델인 ‘하이퍼클로바’를 개발해 서비스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네이버 측에 따르면 정석근 전 대표가 퇴사한 후 네이버 인공지능 분야 리더급 개발자 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사직서를 낸 직원들과 퇴직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정석근 전 대표가 SKT로 유인했다는 정황을 파악했다고 전했다. 해당 직원들은 퇴직면담까지 한 상태로 아직 네이버에 근무 중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정석근 전 대표님이 개발자 직군인 임원 한 분을 데리고 가셨고, 정 전 대표님이 네이버를 나가시고 나서 SKT 쪽으로 가겠다고 하는 분들이 생겼다”며 “퇴직자 전체를 전수조사하지 않아서 정 전 대표님이 나가기 전에 SKT로 옮긴 직원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전까지 AI 인력들이 한꺼번에 나가려고 하는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초거대형 AI 업데이트 버전인 하이퍼클로바X와 AI 챗봇 검색 서비스인 큐:(cue:)를 만들고 있어서 우리에게 중요한 시기”라면서 “개발자들의 기술이 문서가 아닌 머릿속에 있는데, 그 인력들이 빠져나가면 결과적으로 비밀 누출 여지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SKT 측은 네이버의 주장이 오해라며 양사 간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소통을 통해 원만히 해결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상태다.
SK에서 인재 확보로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인력 빼가기를 통한 기술 유출 의혹을 제기하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낸 바 있다. 당시 SK이노베이션은 인력 빼가기 식으로 인력을 채용한 적 없고 모두 개인의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진행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2년간 이어진 법적공방은 SK가 LG에 2조 원 상당의 배상액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마무리됐다.
SKT는 모빌리티 시장에 진출하면서 쏘카와 인력 관련 갈등을 빚기도 했다. 쏘카는 자사 임직원들에게 이직을 제안한 SKT에 공식적으로 항의했다. 당시 쏘카 200명의 임직원 중 30명 이상이 SKT에 이직 제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SKT는 모빌리티 업계 인력을 대상으로 채용을 위한 공식 제안을 보낸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내 AI 분야 인력이 적어 인력 확보를 위한 움직임을 피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국내 AI 인력이 적어서 스카우트 자체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특히 챗GPT나 바드 등의 형태로 파운데이션 모델을 손 댈 수 있는 인재는 초전문가에 가까워 인력이 더 적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통신사든 포털이든 제조회사든 이 인력을 구하기 위해 전쟁 중이고, 개인은 지원을 많이 해주는 쪽으로 옮길 수밖에 없어서 이직을 막기 힘들 것”이라면서도 “다만 AI 관련 프로젝트는 회사 경영에 영향이 갈 정도로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해당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사람이 사라지면 그 노하우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해당 직원이 갑자기 나가버리면 조직의 노하우가 사실상 사라지는 것이라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AI 관련 기업 1915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국내 AI산업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AI 인력 부족률은 2020년 9.8%에서 지난해 16.7%로 높아졌다. AI 인력 수요는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국내에는 인력이 많지 않아 인력 빼가기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메타버스금융랩 소장)는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이직을 하겠다고 하는 걸 SKT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네이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과거 네이버에서 일했던 임원이 SKT로 이직한 후 개인적인 관계를 이용해 인재를 추가로 영입하려 했다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력 유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AI 인재 양성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기업에서도 인재 양성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또 인력 유출 위험이 있는 기업들은 기업문화나 업무 환경 등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장준혁 한양대 인공지능학과 교수는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훈련시킨 직원들이 경쟁사로 간다고 하면 타격이 클 것”이라며 “핵심 기술을 빨리 따라잡거나 개발하려면 가장 쉬운 방법이 스카우트지만 회사 자체적으로 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내용증명을 보낸 상황에서 소통이 잘 되지 않고 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는다면 법적 소송까지 가게 될 것”이라며 “원만히 잘 해결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SKT 관계자는 “관련 이슈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주기 어렵다”며 “네이버와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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