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부상철도 운행 조감도. 사진 출처=인천공항 홈페이지 |
지난 7월 17일 인천국제공항공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인천공항 자기부상철도 명칭 공모전’의 결과를 공개했다. 당초 6월에 입상작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응모작품을 검토하고 관계기관과 협의해 선정하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돼 연기가 된 상황이었다. 시민들은 그만큼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지만 뒤늦게 발표된 어이없는 결과에 각종 의혹을 제기했다. 최우수작이 공모전 명칭과 똑같은 ‘인천공항 자기부상철도’라는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이유에서였다. 우수작에는 ‘SKYLEX’와 ‘하늘누리’가 선정됐으며 ‘인천 드림레일’ ‘영종 하늘철도’ ‘Air Nuri’가 장려작에 뽑혔다.
공사는 “당선작은 인천공항에 국내 최초로 운행하는 자기부상열차라는 특징을 가감 없이 가장 잘 표현했다. 인천공항에 위치한 자기부상열차라는 의미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이 나오길 바랐는데 대다수의 응모작이 너무 추상적이거나 외국어여서 직관성이 강한 명칭을 최우수작으로 선정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발표 직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사이트와 게시판에는 공사를 비난하는 글들로 가득 찼다. 공공기관이 주관하는 공모전 결과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코미디극으로 치부하는 이들까지 생겨났다.
국민들이 이토록 분노했던 이유에는 거액의 경품 지급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이번 공모전에는 최우수작 10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우수작에 각 5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지급하는 등 총 320만 원어치의 경품이 걸려있었다.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명칭 공모전치고는 거액의 금액이라 평범하게 진행됐어도 예산낭비 지적이 일 만한데 결과까지 쉽게 납득할 수 없으니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도 이러한 국민들의 반응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공모전 진행 절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전했다. 공사 관계자는 “공모전 수상작이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최우수작이 공모전 명칭과 똑같아 처음엔 우리도 당황했었다. 결과적으로는 허튼짓을 한 거나 마찬가지라는 점도 인정한다. 그래도 또다시 공모전을 진행하거나 결과를 번복하면 이게 더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라 생각하기 때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진 않을 것”이라 밝혔다.
또한 수상작 결정이 전적으로 공사 직원들의 손으로 진행된 만큼 심사과정이 허술했다는 비난에도 반박했다. 앞서의 관계자는 “이번 공모전에는 총 904개의 작품이 접수됐다. 이들 중 1차로 관련부서에서 30개를 추려낸 다음 2차로 공사 직원을 상대로 온라인 투표를 진행했다. 우리도 ‘인천공항 자기부상철도’가 최종 수상작으로 올라올 줄은 몰랐다. 비록 결과가 이렇게 됐지만 인천시에서도 최우수작을 공식명칭으로 사용하는 데 동의했기에 문제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사는 공모전 결과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제는 최우수작에 당선된 김순자 씨를 둘러싸고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씨는 ‘슬로건·명칭 공모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 인사였다. 지금까지 확인된 수상기록만 따져 봐도 최소 16차례에 이를 만큼 화려한 경력을 보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 씨의 수상 경력은 지난 2008년 ‘중소기업 정책정보시스템 SPi-1357 브랜드에 대한 새로운 명칭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후 크고 작은 공모전에서 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린 김 씨는 2009년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하는 한국형우주발사체 명칭 공모전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우주센터의 이름과 똑같은 ‘나로’가 당선돼 선정기준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김 씨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상금을 비롯해 김 씨가 공모전으로 획득한 경품을 돈으로 환산하면 1000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될 정도다.
▲ 인천공항 홈페이지에 발표된 명칭 공모전 당선작. |
그러나 앞서의 공사 관계자는 “우리도 뒤늦게 최우수작 당선자인 김 씨가 다수의 공모전에서 수상 경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온라인 투표를 진행할 때도 작품만 공개했을 뿐 응모자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게다가 김 씨처럼 ‘인천공항 자기부상철도’라는 명칭으로 응모한 다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가장 먼저 응모한 사람에게 수상을 한다는 규칙에 따라 김 씨가 받게 된 것이지, 사전에 내정된 수상자가 있었다는 소문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이미 김 씨에 경품도 지급됐고 수령 확인까지 했다. 김 씨는 가상의 수상자가 아닌 실존인물이다. 수상 경력이 많다고 참가 자격을 제한시킬 수는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공사 관계자의 말처럼 <일요신문>의 확인 결과 유령설까지 제기됐던 김순자 씨는 57세의 평범한 주부로 밝혀졌다. 지난 24일 김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평소 슬로건·명칭 공모전에 대한 관심이 많아 틈틈이 취미생활 삼아 참여했던 것뿐이다. 전문적으로 공부를 했다든지 그런 적은 전혀 없다. 특별한 재주를 가진 것도 아니며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응모했던 것인데 운이 좋아 상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김 씨는 “나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내정자로 정해진 사람이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공모전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내가 떳떳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금처럼 공모전에 참여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