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아름 양의 장례식이 7월 25일 통영 숭례관에서 진행됐다. 박은숙 기자 |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휘젓고 다녔던 아이였는데 …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운구차량이 한 양이 살던 마을로 들어서자 마을 전체는 눈물바다로 변했다. 한 양을 기억하는 주민들은 오열했다. 한 양의 오빠는 영정사진을 안고 집안 구석구석을 다니며 동생과 세상의 작별인사를 도왔다. 늦둥이 딸을 잃은 아버지 한광웅 씨(57)는 “미안하다”는 말만 하염없이 되풀이 했다.
주민들의 오열 속에 운구행렬은 한 양이 다니던 산양초등학교로 향했다. 여름방학을 맞이한 학교는 조용했다. 운동장 한편에 교직원와 학생 일부만이 한 양의 마지막 등굣길을 함께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친구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해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아이들도 막상 영정사진을 마주하자 울음을 터뜨렸다. 올해 처음으로 교단에 섰던 담임 교사 안희정 씨(여ㆍ24)는 첫 제자를 잃은 슬픔에 눈물만 흘릴 뿐 잘 가라는 인사조차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그렇게 모두에게 안녕을 고한 한 양은 가족들의 통곡 속에 통영시립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로 화했다.
마지막 가는 길만큼은 외롭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생전 한 양의 모습은 늘 혼자였다. 한 양은 두 살 되던 해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엄마와 떨어져 살았다. 고모가 틈틈이 한 양과 오빠를 챙겨줬지만 3년 전, 고향이었던 경상북도 영덕을 떠나 통영으로 오면서 더욱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한 달 전까지 한 양을 돌봐주는 양어머니가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마을주민 김 아무개 씨는 “아름이가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양어머니라는 사람도 늘 집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달에 보름씩 집을 비우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양어머니가 있을 때는 아름이가 집에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모습이었다. 아이의 끼니도 잘 챙겨주지 않았다. 아빠가 퇴근을 해 직접 밥을 짓지 않는 이상 아름이는 늘 굶고 있었다”고 말했다.
▲ 한 양이 교내 그림 대회에서 수상한 상장. 박은숙 기자 |
하지만 마을주민이 말하는 한 양은 늘 엄마를 그리워하던 아이였다. 충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자란 탓인지 자신에게 조금만 잘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엄마’ ‘아저씨’로 부르며 잘 따랐다고 한다. 한 마을주민은 “아름이는 원래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기도 했지만 먹을 것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스스럼없이 다가갔다. 끼니를 챙겨주면 그 집에서 자기도 하고 재롱을 피우며 친손녀처럼 행동했다. 그런데 낯선 여자(양어머니)가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곤 마을사람들이 아름이네와 거리를 둔 게 사실이다. 아이만이라도 잘 챙겼어야 하는데 아름이에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뒤늦은 후회를 전했다.
가정에서 사실상 방치됐던 한 양은 학교에서도 항상 외로운 아이였다. 아침에 깨워줄 사람이 없었던 한 양은 지각을 자주 했고, 그 탓에 친구들과 어울려 스쿨버스를 타는 일이 드물었다. 학교까지는 걸어갈 수 없는 거리인 데다 시내버스가 자주 오지 않아 스쿨버스를 놓치면 한 양은 지나가던 차를 얻어 타고 등굣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의 기억 속에도 한 양의 이러한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주목할 점은 한 양의 교우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기자가 방문한 날 교실에서 학생들 간에 벌어진 작은 소동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양의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여자친구가 “제가 아름이랑 등하교도 같이 하고 밥도 함께 먹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남자친구가 “거짓말”이라고 맞받아치는 바람에 시비가 붙었다. 그 남자아이는 “아름이는 항상 혼자 등교했다. 학교에 와도 같이 놀아주지도 않았으면서 그게 친한 친구냐”고 따졌고 주위에 있던 친구들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앞다퉈 한 양에 대해 한마디씩 보태던 아이들은 한 양과 다퉜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중 이 아무개 군(10)은 “아름이랑 친하게 지냈던 애들보다 싸웠던 애들이 훨씬 많았다. 특히 남자애들은 아름이랑 같이 안 놀았다. 지각을 자주 해서 아름이가 나중에는 학교에 안 와도 아무도 찾지 않았다. 방학하기 전에 죽은 아름이를 위해서 편지를 쓰라고 했는데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선생님이 쓰라고 해서 쓴 거다”라고 털어놨다.
이처럼 어디에서도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겉돌았던 한 양은 결국 끔직한 범죄의 표적이 됐다. 외톨이였던 한 양은 거리낌 없이 이웃집 아저씨였던 김점덕에게 다가갔다. 김 씨는 지난 2005년 같은 마을에 살던 62세 여성을 성폭행하고 상해를 입힌 죄로 4년을 복역한 전과가 있었지만 이를 한 양에게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을회관에 자주 놀러갔던 한 양은 1층에 거주하고 있던 김 씨와도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김 씨가 평소 스쿨버스를 놓친 한 양을 학교까지 직접 데려다주고 먹을 것도 챙겨주며 자연스레 호감을 샀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날에도 지각한 한 양은 김 씨의 차를 보곤 먼저 다가가 태워달라고 말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