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
지난 5월 30일과 6월 27일에 이어 7월 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2부에서 두 시간 넘게 진행된 세 번째 공판의 분위기는 이 소송이 기나긴 싸움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지난 1·2차 공판의 주요 쟁점이 되었던 사안에 대해 양측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맹희 전 회장 측은 “(이건희 회장이) 또 다른 차명주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소송을 확대할 것”이라며 사실상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한여름 땡볕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뜨거운 ‘맹-건 삼성가 형제전쟁’, 지난 3차 공판에서 벌어진 양측의 팽팽했던 공방을 지상중계한다.
3차 공판에서 이맹희 전 회장과 이건희 회장 측은 각각 2차 공판에서 쟁점이 됐던 사안에 대해 추가 해명과 의혹을 제기했다. 2차 공판에서 논란이 됐던 이건희 회장의 ‘참칭상속인’ 자격 여부와 ‘상속회복청구권 제척기간’을 둘러싼 공방은 3차 공판에서도 계속됐다. 또한 이건희 회장 측은 이번 공판에서 이병철 선대회장 작고 뒤 2년 후에 작성했다는 ‘상속재산 분할 협의서’를 법정에 제출하며 주식분배에 관해 형제들이 동의했음을 주장했다. 이병철 선대회장의 유지가 과연 무엇이었냐는 점을 두고도 양측의 공방은 치열했다.
# 상속재산 분할 협의서 새로운 증거 되나
이건희 회장 측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타계 2년 후인 1989년에 작성된 ‘상속재산 분할 협의서’에 주식 분배에 대해 공동상속인인 형제들이 동의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이 협의서에 따르면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주식은 이건희 회장에게, 제일합섬·전주제지는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골프회원권 및 부동산 일부는 이명희 신세계 회장에게 분배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 측 변호인은 “공동상속인 전원이 기명날인한 것으로 타계 후 25년 동안 상속인들 사이에 아무런 이의 제기가 없었으므로 이 분할 협의서 내용을 받아들였다는 의미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상속재산 분할 협의서에 대해 이맹희 전 회장 측은 ‘진위 여부가 의심스럽다’며 맞받았다. 이건희 회장 측이 “공동상속인 전원이 순차적으로 기명날인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 이맹희 전 회장 측은 “공증은커녕 서명과 작성일자조차도 없다”고 의문을 제기한 것. 또한 ‘차명 주식’의 분배에 관해 아무런 내용이 기재되지 않은 것에 대한 이 전 회장 측의 문제제기에 대해 이 회장 측은 “차명 주식은 기재할 수가 없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느냐”고 되받았다. 결국 이 협의서의 진위와 여기에 기재되지 않은 차명 주식의 소유권을 둘러싼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선대회장 유지 과연 무엇이었나
이병철 선대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려고 했었는지에 대해서도 양측은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이맹희 전 회장 측에서는 고 이병철 회장의 타계 당시 상황을 정황 증거로 들며 유지가 바뀌었다는 주장을 펼쳤고, 이건희 회장 측에서는 이병철 선대회장의 유일한 자서전인 <호암자전>을 근거로 이병철 회장이 염두에 둔 후계자가 이건희 회장이었음을 강조했다.
먼저 이맹희 전 회장 측 변호인은 “선대 회장의 유언장이 존재한다면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이는 이건희 회장 측이 주장하는 ‘선대회장의 유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회장 측은 선대회장 타계 당시 정황을 그 ‘근거’로 내세웠다.
이 전 회장 측 변호인은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후 25분 만에 긴급 사장단 회의가 열렸으며 이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을 회장으로 추대하기로 결정됐다”면서 “대기업의 회장이 돌아가신 직후 사장단 정도라면 빈소를 지켜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데 불과 25분 만에 긴급회의가 소집된 것 자체가 이상하다. 이는 이건희 회장에게 기업을 물려준다는 이병철 회장의 유지가 생전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건희 회장 측은 자서전과 언론 자료 등을 제시하며 반박했다.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선대 회장은 정식 유언을 남기지 않았으나 후계자 선정이나 나머지 자녀들에 대한 분재 문제를 명확하게 정리해 놓았다. 이는 자서전이나 언론기록에도 등장한다”며 과거 이병철 회장이 친필로 남긴 ‘사업보국(事業報國)’과 <호암자전> 속 문구를 근거로 들었다.
‘사업보국’이란 ‘사업을 통해 국가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이병철 회장의 경영철학이 뿌리를 두고 있는 한비자의 법가사상 중 하나다.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이병철 회장은 삼성이 개인의 것이 아닌 사회적 존재라고 생각했고, <호암자전> 속에도 ‘회사를 물려주는 데 있어서 하나의 원칙은 나눠먹기식이 아닌 역량을 갖춘 사람에게 기업을 맡길 생각’이라고 언급돼 있다”고 설명했다.
▲ 이맹희 전 회장이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낸 주식인도청구소송 3차 공판에서 치열한 법리 공방이벌어졌다. 사진은 이맹희 전 회장 측 소송대리인이 지난 5월 30일 열린 첫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떠나는 모습. 연합뉴스 |
이맹희 전 회장 측은 차명 주식의 존재 여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살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며 “만약 소송을 제기한 삼성생명, 삼성전자 외에 다른 차명 주식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소송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이건희 회장 측은 차명 주식 보유는 당시 기업들의 관행이었고 국세청의 1974년도 조사 결과를 근거로 들기도 했다. 당시 국세청이 조사한 48개 기업 전부가 차명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관련 자료였다.
또한 이 회장 측은 “이병철 선대회장이 안국화재 차명 주식 9만 주를 이재현 CJ 회장에게 주었다”며 “아들이 차명주식을 받은 사실을 아버지(이맹희 전 회장)가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 회장 측은 이에 대한 근거로 2008년 CJ 비자금 사건 당시의 판결문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맹희 전 회장 측은 “안국화재는 이맹희 전 회장의 부인 손복남 여사가 소유했던 회사로 삼성과 관련 없다”며 “차명주식을 받았다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으나, 이건희 회장 측은 “손복남 씨 친정에서는 이 회사를 보유할 능력이 없었고 안국화재는 사실상 삼성 것이었다”고 재반박했다.
이에 대해 서창원 부장판사는 이건희 회장이 보유했던 차명 주식 명의수탁자의 명단과 이들의 주식취득일자를 증거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 회장이 가지고 있던 차명주식과 고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받은 차명주식이 동일한지 여부는 추후 공판에서 다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은닉인가 vs 점유인가
2차 공판에서 논쟁이 되었던 이건희 회장이 참칭상속인으로서 자격을 갖추는지와 상속회복청구권의 장기제척기간을 둘러싼 논란은 3차 공판에서도 이어졌다. 이건희 회장 측은 상속회복청구권 제척기간(그 침해를 안 날부터 3년, 침해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10년)이라는 소멸시효를 이용하기 위해 자신이 상속인이지만 참칭상속인이기도 함을 주장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이건희 회장 측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타계 시점(1987년)부터 주식 침해행위가 있었다”며 “차명주식은 동산으로 점유가 정당한 공시 방법이며, 의결권 행사와 이익배당금 수령 등으로 대세적, 대사회적 외관을 갖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침해행위가 시작된 1987년으로부터 25년이나 흘렀으므로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맹희 전 회장 측은 “이건희 회장이 차명주식을 은닉해 왔을 뿐이며 주권을 점유했다는 사실만으로 참칭상속인에 의한 상속권 침해행위가 성립될 수 없다”고 맞선 바 있다. 이건희 회장의 차명 주식 보유 사실에 대해 양측은 ‘은닉’과 ‘점유’라는 엇갈린 표현으로 그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 것. 또한 이맹희 전 회장 측은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상속재산 분할 관련 소명자료’를 받은 지난해 11월이 이 회장의 침해행위를 안 날이므로 이로부터 3년이 지난 2014년 5월까지가 제척기간에 해당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참칭상속인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둘러싼 논란도 계속됐다. ‘대세적, 대사회적 외관이 필요하다’는 이맹희 전 회장 측의 2차 공판에서의 주장에 대해 이 회장 측 변호인은 “원고 측은 참칭상속인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대외적, 대사회적 외관이라는 어려운 용어로 설명한다”며 “이건희 회장이 상속인의 지위를 유지해왔고 다른 상속인을 배제한 배타적 주권을 소유해왔기 때문에 동산의 점유 원인을 밝히기 위해 반드시 명의개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참칭상속인의 자격요건에 대한 논란은 3차 공판에서도 결말을 맺지 못했다. 재판부는 “다음 공판에서는 더 이상 참칭상속인의 의미에 대한 주장은 하지 말아 달라”며 재판부의 판단을 기다리라는 입장을 밝혔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법정서 전화벨…판사님 ‘부글’
지난 7월 25일 오후 4시 서울중앙지법 466호 법정. 벌써 세 번째 공판이었지만 어느 쟁점에서도 의견이 좁혀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2시간 넘게 이뤄진 공판은 먼저 이맹희 전 회장 측 변호인의 변론이 40분 정도 이뤄졌고, 이건희 회장 측 역시 비슷한 시간 동안 변론했다. 초대형 사건인 만큼 법정에는 빈자리가 거의 없을 만큼 기자들과 방청객들이 꽉 들어찼다. 삼성과 CJ그룹 관계자들도 상당수 참석해 공판과정을 지켜봤다.
이맹희 전 회장 측 변호인단의 변론 도중에는 사전에 허가 요청을 하지 않은 동영상을 상영하려다가 제지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동영상 내용은 지난 4월 23일 이건희 회장이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이맹희는 감히 나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아니다”라고 발언했던 장면이었다. 담당 재판부 서창원 부장판사는 “사전에 허가 요청을 받지 못한 영상”이라며 상영을 막았다.
공판 도중에는 감정적인 발언도 다소 오갔다. 이맹희 전 회장 측 변호인은 “삼성은 아직도 차명주식으로 경영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고, 이건희 회장 측에서는 “만약 선대회장이 살아서 돌아오신다면 지금 이 상황을 보고 뭐라고 하시겠느냐. 차명주식을 독식한 것에 대해 야단을 치실지, 아니면 그것을 토대로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것에 칭찬하실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라며 감성에 호소하는 변론을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한 참석자의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잠시 공판이 중단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벨소리가 울리자 서창원 부장판사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달라”고 말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자 재차 “왜 일어나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참석자가 “밖으로 나간 것 같다”고 말하자 이어 “지금 당장 휴대폰을 전부 꺼내 전원을 꺼 달라. 지금 재판부보다 더 바쁜 분들이 있느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날 재판부는 향후 상속재산 협의 분할의 사실관계 주장, 주권의 점유에 대한 법리적인 주장 등을 검토해 추가로 서면으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서창원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가족 간의 사건이므로 외국의 판례를 적용하는 것은 자제해 달라. 또한 25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까다로운 사건인 만큼 그 특성을 감안해 증빙 자료를 철저하게 준비해 달라”고 요구했다. [조]
‘방송법 개정 막기’ 누가 왜?
CJ 앞길에 재 뿌리기?
삼성가 상속 분쟁의 불길이 여의도까지 달구고 있다. 지난 2월부터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서 추진 중인 방송법시행령 개정안 통과를 막기 위해 삼성 쪽에서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기 때문. 이 방송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CJ그룹 계열사인 CJ 헬로비전과 CJ E&M이 특혜를 보게 될 것으로 보여 ‘CJ 특혜’ 논란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개정안에는 그동안 MSO(복수지역유선방송사)의 가입자 수를 전체 SO(지역유선방송사) 가입자의 3분의 1 이내로 제한했던 것에서 SO, IP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전체 가입자의 3분의 1 이내로 완화하는 내용과 특정 채널사업자(PP)의 매출액 제한을 전체 PP매출총액의 33%에서 49%로 완화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어 각각 CJ 헬로비전과 CJ E&M이 수혜를 얻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데 삼성 측에서 CJ에 이득이 가는 방송법 개정안 통과를 막기 위해서 노력 중이라는 것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삼성 쪽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의원실을 찾아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며 최근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최근 국회 문광위원을 상대로 뿌려진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법 시행령 개정 추진의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문건도 양측의 공방전에 기름을 부었다. CJ 측은 이 문건의 출처가 삼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정황을 들며 의혹을 제기했고 삼성은 “그런 일이 없다”며 반박하고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문건에 사용된 서체가 삼성에서만 사용하는 훈민정음 프로그램이며 문건을 받은 의원실에 삼성 측 관계자들이 오갔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 삼성에서 했다면 자신들만 사용하는 훈민정음 서체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완전히 상반된 의견도 있다. 누군가가 삼성에 덤터기를 씌우려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하겠느냐”면서 “삼성보다는 이 일로 이득을 보는 다른 기업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삼성 로비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국회에서도 CJ 특혜 논란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있어 방송법 개정안이 쉽게 통과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 7월 25일 방통위의 문광위 업무보고 자리에서도 “이번 시행령 개정에 대해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 바 있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