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18일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북 송금과 관련하여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서울 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임준선 기자 | ||
특검 발표에 따르면 박 전 장관이 이익치씨로부터 1억원권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받은 시점이 “4월 초순”이라고 돼 있다. 그런데 이때를 전후한 김씨의 해외 행적과 남북 정상회담 막후교섭을 위해 외국에 자주 나간 박 전 장관의 ‘동선’이 공교롭게도 거의 일치하고 있어 의문이 커지고 있는 것.
<일요신문>의 취재 결과 이들이 같은 비행기를 탄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3번 정도는 같은 기간 싱가포르 중국 등지에 함께 머물렀던 사실이 확인됐다. 이 기간에 서로 ‘조우’했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씨가 박 전 장관이나 이익치 전 회장의 측근으로 ‘비자금 관리인’이란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우연한 접점’이 예사롭게 보이지는 않는다. ‘박-김’의 시계를 3년 전으로 되돌려 이들의 해외 행적을 추적해봤다.
김영완씨는 YS 시절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무기중개상이었기 때문에 사업상 외국을 자주 드나들었다. <일요신문>이 최근 단독입수한 2000년 1월부터 2003년 6월까지의 김씨 출입국 현황에 따르면 그는 거의 매달 외국에 드나든 것으로 기록돼 있다. 김씨는 지난 4년 동안 모두 30여 차례에 걸쳐 해외에 나갔다. 여행지는 주로 중국 미국 홍콩 일본 이탈리아 등지였다.
이에 반해 박지원 전 장관은 2000년 1월1일부터 2003년 6월 중순까지 모두 12차례 외국에 나갔다 왔다. 행선지는 주로 중국 일본 미국 등지였다. 박 전 장관은 이 중 정상회담 준비 등으로 분주했던 2000년에만 열 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해외를 오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출입국 기록 중에서 공교롭게도 지난 2000년 3월부터 4월 사이에 ‘해외 동선’이 겹치는 대목이 세 군데 있다. 당시는 박 전 장관이 한창 북한측과 정상회담 막후교섭에 나섰을 시기. 이들 두 사람이 특정 시기에 특정 지역에 같이 있었다는 점은 베일 속 인물 김영완씨의 역할 등과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박 전 실장은 3월8일 싱가포르에서 송호경 아태위 부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위한 첫 대면을 가졌다. 이날은 박 전 실장이 임동원 국정원장을 대신해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첫 테이프를 끊은 의미있는 날이었다. 당시 싱가포르에는 정몽헌 회장 등이 함께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즈음 김영완씨 역시 홍콩을 거쳐 싱가포르에 머물렀던 것으로 나타난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는 2000년 3월6일 홍콩으로 출국한 뒤 3월10일 싱가포르에서 서울로 돌아왔다. 김씨는 왜 홍콩에서 정상회담 협상이 열리는 싱가포르로 날아왔던 걸까. 2000년 3월10일은 박 전 실장과 김씨의 귀국 날짜와 출발지(싱가포르)가 겹치는 첫 번째 ‘접점’이다.
두 번째는 중국에서 함께 체류한 경우. 출입국 기록에 따르면 이때는 박 전 장관과 김씨가 무려 닷새 동안 정상회담 막후협상이 열리던 중국에 함께 머물렀던 것으로 나타났다.
박 전 장관은 2000년 3월17일 오전 9시20분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상하이로 향한다. 주위에 “몸이 불편하니 한 이틀 휴가를 내고 입원하여 건강진단을 받아야겠다”는 거짓말을 남기고 북측과의 막후협상을 위해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 이때 중국에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도 와 있었다. 당시 이 전 회장은 미리 머물고 있던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 미리 합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일요신문> 제563호 3월2일자).
공교롭게도 같은 날 김영완씨도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김씨는 이때부터 7일 동안 계속 중국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와 박 전 장관을 포함해 1백50억원 비자금 사건과 관련, 현재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몽헌 회장과 이익치 전 회장 등이 모두 같은 시기에 함께 중국에 있었던 셈이다.
박 전 실장은 이달 17, 18일 네 차례 북한과 막후협상을 했지만 결말을 짓지 못하자 19일 귀국하게 된다. 그뒤 다시 ‘베이징에서 만나자’는 북측의 전갈을 받고 22일 중국항공기를 타고 중국으로 날아간다. 당시 베이징에 머물던 정몽헌 회장과 이익치 전 회장도 19일로 예정됐던 귀국 일정을 24일로 연기하고 협상이 진행되던 중국에 체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박 전 장관은 이날 밤샘 협상마저 실패로 돌아가자 다음날인 23일 오전 9시40분 서울로 귀국하게 된다. 당시 중국에 머물던 김영완씨는 공교롭게도 박 전 장관의 귀국일과 같은 날인 23일 한국으로 돌아온다. 김씨와 박 전 장관이 닷새 동안 중국에 함께 머문 것이 바로 두 사람의 두 번째 ‘접점’이었다.
박 전 장관과 김씨는 그로부터 15일 후 또 같은 시기에 같은 나라에 모습을 드러낸다. 두 사람 모두 2000년 4월8일부터 4월9일까지 중국에 다녀왔던 것이다. 이 시기는 박 전 장관과 송호경 아태 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사이의 마지막 협상이 이루어져 극적인 타협을 이루었던 바로 그때였다.
당시 박 전 장관은 “베이징 차이나월드 호텔에서 8일에 만나자”는 북측의 제의를 받고, 8일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중국으로 향했다. 박 전 장관은 이때 직원들에게 “한식 성묘를 하지 못해 고향에 간다”고 또 거짓말을 한 뒤 노출을 피하기 위해 고향집 전화번호를 바꾸고 휴대전화도 꺼버렸다고 한다.
같은 날인 2000년 4월8일 김씨도 대한항공 여객기를 타고 중국으로 향한다. 박 전 장관 일행은 북한과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폭탄주’로 뒤풀이를 한 뒤 다음날인 4월9일 귀국하게 된다. 김씨 역시 ‘공교롭게도’ 같은 날인 4월9일 중국에서 한국으로 대한항공편으로 귀국했다.
▲ 이익치 전 회장(왼쪽)과 정몽헌 회장. | ||
정상회담 막후협상이 진행될 때마다 김씨는 ‘공교롭게도’ 박지원 전 장관과 같은 해외 궤적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현지’에는 정몽헌 회장과 이익치 전 회장이 머물렀던 것으로 나타난다. 과연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후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은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다. 박 전 실장은 지난 2001년 5월7일 미국에 관광 차 다녀온 뒤 한 번도 외국에 나간 기록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김씨는 그 뒤로도 거의 매달 외국에 나간 기록이 있다. 특이한 점은 2002년 6월부터는 행선지가 대부분 미국으로 고정돼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난 3월20일 아시아나항공을 타고 미국으로 날아간 뒤 김씨의 출입국 기록은 현재까지 ‘공란’으로 남아 있다.
박지원 전 장관은 김영완씨의 미국 출국과 관련해 “알고는 있었지만 김씨는 평소에도 한두 달씩 연락이 없었다”며 “절친한 사이가 아니어서 출입국 관계는 잘 모른다. 하여튼 외국출장이 잦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박 전 장관은 지난 2000년 3월부터 4월까지 김씨와 묘하게 겹치는 ‘해외 행적’에 대해서 어떤 설명을 내놓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