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국상무위원회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보다는 낮은 단계의 의사결정체지만 당규약에 따르면 당의 노선과 정책, 전략전술과 관련된 중대 사안들을 결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더군다나 7월 15일 열렸던 당시 회의는 김정은이 직접 주관했으며 북한의 경제개혁안을 담은 ‘신경제재건정책’ 결정서를 채택하는 중대회의였다고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회의에는 정치국위원 장성택을 비롯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총리,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리영호 군 총참모장이 상무위원 자격으로 회의에 임했다고 한다.
문제의 발단이 됐던 것은 역시 ‘신경제재건정책’ 결정 안이었다. 결정안을 기획한 장성택과 김영남 최영림 최룡해 등은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의 마지막 돌파구를 열기 위한 공세적인 경제정책’이라며 결정안을 치켜세웠지만 군부 보수세력의 핵심인 리 전 총참모장은 이에 대해 비토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리 전 총참모장은 당시 비토권을 행사하며 “신경제재건정책은 선대 수령이 지켜온 원칙들을 버리고 자본주의로 가는 길이다. 이는 제국주의자들의 개혁개방 압박에 굴복해 당과 군대를 말아먹는 행위다”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그는 김정은에게도 “선친이 개척한 주체의 혁명위원을 어겨서는 안 된다”라고 직접 언급했다고 한다.
당시 리 전 총참모장의 비토권 행사로 회의장 분위기는 차갑게 변했다. 이를 제지하려던 장성택은 리 전 총참모장에게 “이번 정책은 김정은의 직접 지도로 마련된 것이다. 국방위원장의 영도에 도전하는 행위”라고 몰아 붙였지만 리 전 총참모장 역시 이에 대해 “상무위원회에서 장성택은 발언권이 없다”며 맞섰다고 한다. 장성택은 당시 상무위원 자격이 아닌 정치국위원 자격으로 참석한 것이었다.
이후 김정은은 회의장에서 자신의 영도에 반해 비토권을 행사한 리 전 총참모장의 직위와 직급을 즉시 해임한다고 선포하고 군을 동원해 현장에서 끌어냈다. 소식통에 따르면 리 전 총참모장은 현장에서 즉시 계급장과 휘장을 뜯겼다고 한다. 현재 리 전 총참모장과 가족들은 요덕수용소에 감금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대내외 많은 전문가들은 리 전 총참모장의 숙청을 두고 북한 개혁개방 시프트 가동의 전조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 역시 리 전 총참모장 해임 직후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 내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군부 내 거물 리 전 총참모장의 숙청으로 김정은이 더욱 적극적으로 개혁개방의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한병관 기자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