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사건’은 하루·피카·위메이드 중 하나…‘증권 성격 판단’ 놓고 법원서 첨예한 공방 예상
금융・증권범죄 중점 검찰청인 서울남부지검은 더욱 비대해지게 됐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를 토대로, 가상자산 관련 각종 판례들이 더 확보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법원도 가상자산에 대한 이해도를 필요로 하는 전담 재판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가상자산 합수단 탄생 배경은?
금융정보분석원의 ‘2021∼2022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하반기 국내 가상자산 이용자 수는 627만 명에 이른다. 이처럼 가상자산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했으나 관련 법령과 제도가 완비되지 않아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행위 등에 대해 적극적인 처벌은 미미했다.
민원도 급증했다. 금감원에 가상자산 관련 민원이 급증한 건 2021년부터다. 2018~2020년에는 매년 23~33건 수준이었는데 2021년 메타버스, 대체불가능토큰(NFT) 영향으로 가상자산 투자 열풍이 불자 관련 민원은 114건까지 늘어났다. 가격 상승세가 주춤했던 2022년에도 가상자산 관련 민원 접수는 69건에 달했고, 올해도 상반기에만 민원이 31건이었다. 검찰이 ‘가상자산합수단’을 꾸린 이유다.
익명의 검찰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가상자산 관련 사건들을 놓고 새로운 해석과 접근이 필요한데 이를 전담하는 수사부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검찰뿐 아니라 유관기관들로부터 나왔다”며 “루나·테라 사건을 증권범죄합수단이 수사하면서 사기를 입증하는 방식이 기존의 금융범죄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합수단 출범까지 이어진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꾸려진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합수단은 검찰·금융감독원·금융정보분석원·국세청·관세청·예금보험공사·한국거래소에 소속된 조사・수사 전문인력 30여 명으로 구성된다. 가상자산합수단은 이정렬 서울중앙지검 공판3부장이 초대 단장을 맡고, 기노성 남부지검 금융조사1부 부부장 등 검사 7명으로 꾸려진다. 이 부장검사는 2021년 12월 대검찰청 선정 증권금융 분야 2급 공인전문검사 ‘블루벨트’ 인증을 받아 증권금융 전문가로 꼽힌다.
검찰 측은 “그동안 법령·제도 미비로 투자자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가상자산 관련 범죄에 신속하고 엄정한 대응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며 “건전한 가상자산 생태계를 조성해 선량한 시장참여자를 보호함으로써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인사에 밝은 한 법조인은 “사법연수원 32기 대다수가 차장검사로 승진하고, 33기 가운데 일부가 차장검사가 될 이번 인사를 앞두고 33기의 이정렬 부장검사를 단장으로 임명한 것은 이번 인사에 신경 쓰지 말고 내년까지 쭉 합수단을 맡아 끌고 가라는 메시지 아니겠냐”며 “인사를 앞둔 금융증권범죄합수단장이 32기인 점을 감안하면 다음 인사에는 ‘동기’를 앉히겠다는 의사도 드러낸 셈인데, 관련 민·형사 사건이 급증하고 있어 앞으로 더 인기가 많아지는 자리가 될 것이기에 초대 단장은 힘들겠지만 커리어로 보면 큰 기회가 될 수 있는 자리”라고 풀이했다.
#이원석 총장 “시장 참여자 두텁게 보호할 것”
이원석 검찰총장도 출범식에 참석해 “블록체인 기반으로 비트코인이 등장한 2009년에 가상자산이 주식에 버금가는 투자상품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2024년 7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으로 제도적 기반은 마련됐으나 후속법령 정비와 정착까지 상당기간 규제 공백이 문제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리스크를 없애 (가상자산 시장이) 안정적으로 제자리를 잡아 시장 참여자를 두텁게 보호해 건전하게 뿌리내리도록 돕기 위해 합동수사단이 출범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합수단의 1호 수사 사건은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 피카 코인 발행사 피카프로젝트, 위믹스 발행사 위메이드 관련 사건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에서 이들 사건을 가상자산합수단으로 재배당했는데, 검찰 측은 부실 코인 업체와 시장 관계자, 이미 투자자 피해가 현실화한 상장폐지 코인 등을 선별해 수사하겠다는 계획이다.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 사건은 고이율의 이자를 얹어준다며 코인 예치 사업을 하다가 지난 6월 입출금을 중단해 논란이 된 사건이고, 피카프로젝트는 조각 투자 방식으로 미술품을 공동 소유할 수 있다며 허위 사실로 투자자를 끌어 모은 혐의를 받는 사건이다. 피카프로젝트의 공동대표 송 아무개 씨와 성 아무개 씨는 이미 사기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투자 피해자들이 많은 위메이드 사건은 애초 공시한 계획보다 많은 양의 위믹스 코인을 시장에 유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미 위메이드 본사를 압수수색한 바 있다.
법무부가 검찰청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넓힌 데 이어, 최근에는 수사준칙 개정을 통해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핵심인 경찰의 수사 종결권을 축소하는 시도의 일환이라는 평도 나온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기존에는 경찰에 묶여있었던 사건들이 많은데 이에 대해 검찰이 필요할 경우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며 “금융·증권 범죄의 경우 피해자들이 대부분 서민이기 때문에 가상자산합수단 등을 통해 검찰의 신뢰 확대도 얻어낼 수 있지 않겠냐”고 풀이했다.
#넘어야 할 큰 산은 ‘법원’
법조계는 가상자산합수단이 출범하면서 관련 판례들도 하나씩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직 가상자산 사건 수사가 사기·횡령·배임 등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특히 사기의 경우 ‘사업 명목은 거짓이고 처음부터 돈을 갈취하려 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가상자산을 개발·상장하려 했다면 처벌이 쉽지 않다.
처벌하려면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분류해야 하는데, 여전히 법적 기준이 미비한 상태다. 당장 미국에서는 ‘가상자산 리플을 증권으로 볼 수 있느냐’를 놓고 첨예한 논쟁이 있었다. 법정 공방 끝에 뉴욕 법원이 리플 자체에 대해선 증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투자가 공동 사업에 대해 이뤄지고 투자 이익을 기대할 수 있으며 그 이익이 타인의 노력으로 발생한 것이라면 ‘증권 성격’을 띤다는 게 미국의 증권 판단 기준이다. 하지만 뉴욕 법원은 거래소에서 판매된 리플의 경우, 리플 보유자가 구매 비용이 어디로 가는지 명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이는 증권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대신 리플의 발행처인 리플랩스가 기관 투자자에 직접 판매한 코인에 대해선 증권이라고 판단했다.
한국도 미국처럼 증권 성격 판단 등을 놓고 첨예한 공방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가상자산 사건 대리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한국은 가상자산 사건 99%가 사기 아니면 배임, 횡령 등 다른 범죄 혐의로 풀어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법령도 미비하고 관련 판례도 나온 적이 없다”며 “증권으로 적용해 기소한 사건이 루나·테라 사건이 처음일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만큼 형사 재판부에서도 가상자산 사건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검사나 변호사가 오히려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 검사와 변호사마저도 이해도가 낮은 경우가 태반”이라며 “법원도 가상자산 사건에 대한 이해도를 가진 전담 재판부를 꾸린다면 사건 관계인들이 더 질 높은 재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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