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과 ‘교육’ 사이 교권 인정받기 어려워…“갈등 상황 대처 매뉴얼 수립 필요”
이 씨는 유치원생끼리 갈등에서 전원이나 전반 등 조치는 불가능하기에 가능한 대안과 현실적인 방법을 얘기했지만 학부모는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애를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느냐, 뭘 배워 오는 것도 아니고 잘 돌봐달라고 보내는 건데 우리 아이를 방임한 것 같다”며 신고하겠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아이는 같은 반 친구에게 맞은 적이 없었고,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이 씨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맥이 빠진다고 얘기한다. 이 씨는 “아이 말만 듣고 무조건 선생님에게 화를 내거나 협박하는 부모님들이 있다. 모든 걸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게 어렵다”고 토로했다.
최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으로 초중등 교원의 교권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유치원 교사와 어린이집 보육교사들 사이에서는 훨씬 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더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유치원 교사와 어린이집 보육교사들도 교권을 잃은 지 오래라는 한숨이 나온다.
교사노동조합연맹 소속 국공립유치원교사노조가 파악한 교권 침해 사례 중에는 2019년 서울의 한 국공립 유치원에서 학부모 A 씨가 미납된 유아학비 2만 9000여 원을 10원짜리 동전과 100원짜리 동전 수백 개로 바꾼 뒤 유치원 원장에게 집어 던진 일도 있다. 국공립유치원교사노조에 따르면 해당 학부모는 장기 체납된 학비를 납부해 달라는 유치원의 거듭된 요구에 화나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2020년 경북의 한 국공립유치원 교사 B 씨는 학부모에게 “통원 버스가 본인 집을 먼저 지나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운영 원칙상 어렵다는 답변을 하자 학부모는 “당신 같은 사람을 아동학대범이라고 한다. 교사를 그만두고 싶으냐”는 폭언과 협박을 쏟아냈다.
학술지 한국교육문제연구에 2020년 12월 실린 ‘유치원 교사의 교권에 대한 교원 및 학부모의 인식(황연옥‧이혜경)’은 “교원으로서의 직업적인 권위와 권리에 해당하는 교권은 유아교육현장에서 유아를 가르치고 지도하는 데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요소”라며 “교권 침해의 반복된 경험들은 교사로서의 효능감을 떨어뜨리고 의욕이나 자신감을 상실시키며 오랜 꿈이었던 유치원 교사를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고 설명한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유치원은 초등학교와 달리 교육과정에 대한 부모의 간섭도 자주 들어온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다른 원으로 옮기겠다고 하기도 한다”며 “초중등 학교와 달리 유치원은 의무교육이 아니다보니 교원을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경향도 있고, 학교보다 더 오랜 시간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훨씬 더 교권이 침해될 여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보육교사’도 교권 침해를 빈번히 겪고 있다고 토로한다. 어린이집은 ‘교육’과 ‘보육’의 역할을 모두 담당하지만 교사를 단순히 아이를 돌보는 ‘돌보미’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함미영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보육지부장은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교육자라는 인식보다 돌봄, 양육을 대신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어서 학부모들이 더욱 무례한 요구들을 해온다”며 “‘식사할 때 옷에 음식물이 묻지 않게 밥을 먹여달라’고 한다거나 ‘우리 아이는 발가락 사이에 모래가 끼는 것을 싫어하니 모래놀이를 못하게 해달라’ 해서 바깥 놀이를 못하게 하면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고 하고, ‘아침에 세수‧양치 못했으니 씻겨 달라’는 요구 등 다양한 사례가 많다”고 전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런 교권 침해 사례의 원인을 단순히 학부모와 교사 간 갈등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얘기한다. 동료 교사와 관리자 등 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주체와 관계 속에서 여러 요인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 유치원‧보육교사가 학부모와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함께 대처해주지 않는 관리자의 문제도 크다고 지적한다.
앞의 이미선 씨는 “학부모 민원이 들어왔을 때 원장 선생님은 ‘선생님이 정말 잘못한 게 없는지 생각해보라’며 ‘선생님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라고 했다”며 “그나마 공립유치원이라 이 정도지 사립유치원에서는 원아모집에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 무조건 학부모에게 죄송하다고 말하라 한다”고 전했다.
함미영 보육지부장도 “사실 갑질하는 학부모도 있지만 원에 협력해주시는 분들도 많다. 그런데 일부 학부모님의 일방적 항의나 욕설 등에 대해 원에서는 모든 것을 보육교사가 책임지게 한다”며 “사립 어린이집‧유치원 원장님들은 어쨌든 원아를 모집해 이익을 내야 하다 보니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거나 보육교사가 모든 걸 감당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다 보니 악성 민원 등으로부터 교사의 교육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도 유치원 교사의 경우 사실상 있으나마나 한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교원지위법에는 초·중·고교와 마찬가지로 유치원 역시 ‘교권보호위를 둘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18~2022년 5년 동안 유치원 교권보호위 개최 건수는 2019년 1회, 2022년 6회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교권만 강조해서도 안 되고, 교육 공동체가 모두 살아나야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한다. 손혜숙 경인여대 유아교육과 교수(한국 전문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협의회 회장)는 “교권이 안정되고 선생님들에게 행복한 환경이 만들어져야 아이들도 안정적이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선생님‧아이들의 권리가 모두 충분히 보장되는 사회적 분위기와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창현 연구위원도 “단순히 교사나 학부모의 문제로 치부한다든지 원인을 교권, 학습권, 부모의 권한 이렇게 나눠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모든 문제는 교육공동체가 무너져서 생긴 일”이라며 “교육공동체 내에서 교사와 학부모, 학생 간에 존중이 사라졌기 때문이고 모두의 인권이 서지 않으면 교육제도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교육 상황에서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이 제대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함미영 보육지부장은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 모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사 혼자 오롯이 책임지게 할 게 아니라 갈등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매뉴얼이 국가 차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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