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통합당 초선의원으로서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검찰조사에 당당히 응하라고 해서 화제가 된 황주홍 의원은 박 원내대표를 믿기 때문에 한 발언이라고 말한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박지원 원내대표가 검찰에 출두하기 하루 전인 지난 7월 31일 민주당에서는 긴급 의원총회가 열렸다. 3시간 반가량 진행된 총회에서 다수의 의원들은 박 원내대표가 절대로 검찰에 나가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원내대표를 포토라인에 세우려는 검찰의 명백한 표적수사에 박 원내대표가 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 박 원내대표가 검찰 소환에 응할 경우 민주당은 사실상 사령관을 잃게 되고, 다른 의원들도 피해를 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황 의원과 민주통합당 3선의 김동철 의원(57·광주 광산구갑)은 다른 목소리를 냈다. 3선의 김 의원은 그렇다 치지만 초선 의원인 황주홍 의원이 당에 반대의견을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황 의원과 박 원내대표의 오랜 관계를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황 의원은 정치학(연세대)을 전공하고 미국 미주리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거친 정치학자다. 미주리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국내 대학(건국대)에서도 정치학 교수를 역임했다. 정치 이론가인 그가 현실 정치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93년 아태평화재단에서 연구실장 겸 부총장을 지내면서부터다. 민주당 측의 영입으로 아태재단에 몸담은 황 의원은 당시 김대중 이사장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며 외국에도 동행했다. 박지원 원내대표와의 인연도 여기서 시작됐다. 박 원내대표가 재단에 직접 몸담은 것은 아니었지만 같은 당에 있었기에 만남의 기회가 자주 있었다. 되돌아보면 두 사람은 근 20년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오랜 ‘지인’에게 황 의원은 왜 그토록 모진 말을 했을까. 황 의원은 누구보다 박 원내대표를 믿는다고 말했다. “믿기 때문에 당당히 검찰 소환에 응해 조사받고 당당히 걸어 나오면 된다”는 것이다.
또 돌이켜보면 황 의원이 박 원내대표에 이 같은 발언을 한 데에는 과거 자신의 경험도 한몫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황 의원은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 직전까지 전남 강진군의 군수를 지냈다. 민선 군수로 3선을 지낼 만큼 지역기반이 탄탄했지만 세 번째 선거에서 ‘정당공천폐지’를 주장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시련이 시작됐다. 선거에서 민주당을 거부하고 나선 것 때문인지 ‘보이지 않는 세력’으로부터 견제를 당한 것이다. 황 의원은 “군수 선거에서 승리한 뒤 다시 민주당으로 복당을 추진했지만 당시 지역 현역 의원의 집요한 방해로 무산됐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은 황 의원이 4·11총선에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지역에 퍼지자 견제가 시작됐다. 군수시절 지역 교육을 살리기 위해 황 의원이 추진한 ‘강진군민장학재단’ 비리 혐의로 감사원의 감사를 세 번이나 받았다. 200억 원의 장학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이사장을 맡은 황 의원이 장학자금을 횡령했다는 혐의였다. 뿐만 아니라 같은 사안으로 광주지방경찰청과 전남지방경찰청의 두 차례 조사도 이어졌다. 경찰은 강진군청에 대한 압수수색과 네 번에 걸친 계좌추적을 실시했다. 군청 직원들은 수시로 불려갔고 군의 행정업무는 마비가 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황 의원은 “단일 사안에 대해 감사원이 세 차례나 감사를 실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감사원 행정력의 낭비였다”며 “조금의 의혹이라도 있었다면 잡혀갔을 것이다. 투명하게 운영했기 때문에 모두 불기소 처분됐다”고 말했다. 당시 이 사건은 중앙 일간지에도 보도가 될 만큼 이슈가 됐고, 덕분에 황 의원은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결국 황 의원은 불합리한 조사에 응했고 무혐의를 최종 입증했다. 지역민들의 지지를 회복한 결과 국회의원에도 당선됐다. 황 의원은 박 원내대표의 자진 출두에 대해서도 “현명하고 훌륭한 일이다. 조사받고 당당하게 돌아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존경한다”고 말했다. 또 황 의원은 “박 원내대표의 결단이 민주당의 정당 지지율을 높이고,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이루는데 최선의 전략이 될 것이다”고 평가했다.
사실 황 의원은 조금 고지식한 면이 없지 않다. 혹자는 이를 두고 꽉 막혔다고 말하지만 황 의원은 ‘기본, 상식’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기본과 상식에서 비롯된 그의 쓴소리는 또 있었다. 황 의원은 국회의원은 자신들이 가진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했다. 국회의원 배지를 다는 것도 권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일화를 소개했다. 한 번은 다선을 지낸 한 국회의원에게 “왜 배지를 다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의원이 “배지를 달아야 조심하게 된다. 술 먹어도 배지를 보며 실수하지 않고 말도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황 의원은 “배지를 달아야만 자기경계가 될 정도로 도덕적 자제력이 없다면 국회의원 자격이 없는 거다”며 쓴소리를 날렸다. 이어서 “배지가 그렇게 효력이 있다면 전 국민에게 달아줘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황 의원은 “국회의원은 그 자체로 벼슬 아니냐. 배지 달고 안 달고 뭐 중요하겠느냐만은 상습적 과시욕이다. 뭔가 포기하고 내려놔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자신들의 대변자로 인식한다”고 지적했다.
또 황 의원은 정권교체를 위한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여건과 환경에서 정권교체를 못하면 민주당의 잘못이자 동시대의 죄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