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무개 씨(43)는 14년 전 현재의 부인과 결혼했다. 결혼 전엔 특별한 직업이 없이 방황했던 그는 현재의 부인을 만나자 가장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광주에서 작은 주점을 열었다. 부인을 만난 이후 종전과는 달리 살려는 의지가 강했고 일도 열심히 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평이었다.
주점 영업을 시작한 지 약 2년째 되던 2007년, 김 씨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그 무렵 두 아이의 아빠가 됐던 김 씨. 지출은 갈수록 커졌지만 수입은 변변찮았다. 주점 사업이 그의 노력과는 달리 크게 나아지지 않았던 것.
답답한 마음에 김 씨는 난생 처음 로또를 구입했는데 그게 1등에 당첨됐다. 당시 김 씨의 당첨금은 23억 원, 세금을 제하고 손에 거머쥔 것은 약 18억 원이었다.
김 씨는 당첨 직후 조용히 부인과 부모, 남동생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면서도 당첨금의 구체적인 액수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신중함도 보였다.
만약 당신이 로또에 당첨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대부분은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는 답변을 많이 한다. 그동안 궁핍하게 살았던 김 씨도 친척 등 몇몇 지인들의 빚을 갚아주는 일을 가장 먼저 했다. 평소 자주 찾던 단골 중국집의 낡은 배달 오토바이를 새것으로 바꿔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흥청망청 쓴 경우는 없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술에 취해 다툰 기록조차 없을 만큼 당첨 이후에도 아주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동네주민들도 김 씨에 대해 “그는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김 씨가 짧은 기간에 거액의 돈을 모두 날린 연유는 대체 무엇일까.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김 씨가 로또 당첨 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벌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당첨 직후에도 김 씨는 자신의 주점을 계속 운영했다. 다만 주점을 좀 더 크게 넓히고 수억 원을 들여 내부 인테리어를 바꾼 것은 달랐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김 씨의 주점 사업은 잘 되지 않았다. 신장개업을 한 이후부터 손님은 오히려 줄었다고 한다. 손해를 크게 봤음은 물론이다.
주점 사업에서 손해를 본 김 씨가 다음으로 손을 댄 것은 주식투자였다. 그러나 이것도 실패의 연속이었다. 지인들의 말을 지나치게 믿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 무렵부터 부인과의 말다툼이 잦아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 부부가 다툰 원인에 대해 ‘부인 입장에선 남편이 재정상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답답했던 데다가 무리한 투자를 연이어 하는 것에 속이 상하지 않았겠느냐’고 귀띔했다.
주점 사업과 여러 차례의 주식 투자가 실패하자 김 씨는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에 몰렸다. 행운을 잡은 지 3년이 됐을 때쯤 김 씨는 무일푼으로 변했다. 당첨금 모두를 허공에 날렸던 것이다. 그러자 김 씨는 자신의 모습에 큰 자책감을 느꼈다. 친척들에게 빌린 돈으로 근근이 사는 부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김 씨의 마음도 시커멓게 타 들어갔고, 얼마 후부터는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결국 7월 23일 오후 1시경 김 씨는 허름한 한 동네목욕탕 탈의실을 2시간 가량 왔다 갔다 하며 번민하다 문을 걸어 잠그고 노끈에 목을 맸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경찰은 김 씨가 자살한 것으로 최종 판단을 내렸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김 씨가 자살하기 전 부인과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다. 김 씨는 자살 직전까지도 부인과 함께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 씨가 자살한 이유에 대해서는 유가족도 잘 모른다고 했다. 다만 5년 만에 물거품처럼 사라진 로또 당첨금 18억 원이 주원인이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뿐.
그동안 김 씨는 당첨금을 가족에게 배분하는 과정에서 골머리를 적잖게 앓았다고 한다. 주점사업을 확대한 것도 좀 더 돈을 불려 가족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김 씨가 안됐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고는 하지만 젊은 사람이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다가 그게 잘 안되니까 죄책감에 목숨을 끊은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현재 김 씨의 유족들은 언론과의 접촉을 극도로 회피하면서, 김 씨가 당첨금을 날리게 된 자세한 원인이 밝혀지면 유가족들 사이에서 심각한 불화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하고 있었다.
18억 원이라 거액이 거품처럼 사라진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자살한 김 씨가 당첨된 이후에도 성실하게 살아온 소시민이었다는 점에서 취재가 끝난 이후에도 궁금증은 가시지 않았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