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사망사건’ 경우 경찰이 수사한 뒤 민간법원이 재판…“군사법원법 개정 얼마 안돼 생긴 시행착오”
2022년 7월 개정된 군사법원법은 민간법원이 군인을 재판하는 세 가지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군인 사망사건, 군인 성폭력 범죄, 입대 전 범죄는 군사법원이 아니라 민간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한다. 군검찰 및 군사경찰(옛 헌병)도 위 세 가지 사건과 관련한 수사권이 없다.
사건의 시작은 이랬다. 전국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던 7월 중순 앞서 언급한 카테고리에 속한 군인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해병대는 복구 및 지원 목적으로 해병 제1사단 신속기동부대를 투입했다. 대민지원 일환이었다. 7월 18일부터 해병대는 경북 예천군 내성천 경진교와 삼강교 사이 22.9km 구간에 119명을 투입해 민간 실종자 수색작전에 돌입했다.
7월 19일 오전 9시 3분경 해병대가 도보로 대열을 맞춰 탐침봉 등을 활용해 ‘인간띠 작전’으로 실종자를 찾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지반이 내려앉았다. 해병대원 3명이 급류에 휩쓸렸다. 그중 2명은 스스로 헤엄쳐 급류에서 빠져나왔다.
채수근 상병은 20m가량 급류에 휩쓸리다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당시 수색작전에 투입된 해병대원들은 구명조끼 등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병대는 민간인 실종자 수색을 멈추고 채 상병 수색에 돌입했다. 이날 밤 소방당국이 야간 수색에 투입한 드론이 채 상병을 찾았다. 수심 1m 지점에 엎드린 채 발견된 채 상병은 심정지 상태였다.
해병대 수사단은 즉시 수사에 착수했고, 7월 31일 사건 경위와 관련한 브리핑을 예고했다가 돌연 취소했다. 이를 두고 국방부가 해병대 수사 발표에 대해 외압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병대 전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이 준비했던 브리핑 자료가 SBS를 통해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사단장을 비롯해, 여단장, 대대장 2명, 중대장 및 현장 통제간부 3명이 사건 책임자로 명시됐다. 또 수사자료를 경상북도경찰청에 이첩할 예정이며 향후 적극 협조할 것이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단장을 비롯한 지휘 라인 전체에 대한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한 브리핑으로 풀이됐다.
8월 8일 국방부 검찰단은 박정훈 대령을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했다. 동시에 해병대는 보직해임심의위원회를 열어 박 대령 보직해임을 의결했다. 이날 MBC는 “신범철 국방부 차관이 직접 해병 1사단장을 수사 기록에서 빼라고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MBC라디오 '신장식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박 대령 보직해임과 관련해 “네 글자로 말하면 수사방해”라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군이 해병 제1사단장을 과실치사 혐의로 적시해놓은 해병대 군사경찰단장(박 대령)을 압수수색했다”면서 “들은 얘기로는 직권남용죄 성립이 어려울 것 같으니 항명죄를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수사방해 주체로 ‘윗선’을 언급했다.
8월 10일 채널A는 해병대 수사단이 만든 ‘해병 1사단장을 사건 관계자에서 제외할 경우 문제점’이라는 내부문건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수사 과정에서 상급제대 의견에 의한 (사건) 관계자 변경 시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에 해당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문건엔 ‘언론 등 노출될 경우 BH(대통령실) 및 국방부는 정치적·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함’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8월 11일 박정훈 대령이 직접 KBS 시사프로그램 ‘사사건건’에 출연해 입장을 밝혔다. 박 대령은 “국방부 장관 결재를 받은 수사 내역의 경찰 이첩을 막는 정부 고위층 외압이 있었고, 자신은 이에 굴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단항명 수괴 혐의를 받게 됐다”고 폭로했다. 박 대령은 “이번 외압 행사 과정에 국방부 검찰단이 연루돼 있기 때문에 해당 기관에선 조사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해병대 사령부는 군 허가 없이 생방송 인터뷰에 나선 박 대령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소집했다. 박 대령은 8월 18일 징계위원회에 출석했다. 박 대령 법률대리인 김경호 변호사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형식적 관점에서 공보규정 위반 책임이 문제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징계권자가 국민의 징계를 받아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박 대령을 집단항명 수괴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박 대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과정에서 윗선으로부터 외압을 받았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채 상병 사건은 군과 박 대령 간 진실게임으로 번졌다. 지금까지 가장 조명받았던 이슈는 해병 제1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자 포함 여부를 두고 군과 해병대 수사단 사이 갈등이 있었느냐 여부다.
그런데 이번 논란엔 ‘숨은 1인치’가 있다는 지적이 전·현직 군 관계자와 군 사망사건 관련 전문가로부터 나온다. 군인 사망사건의 경우 개정된 군사법원법에 따라 해병대 수사단에게 수사 권한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령이 수사 결과를 이첩하고, 또 군이 경찰에 이첩된 사건을 회수하면서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수사권 없는 수사’를 놓고 갈등을 벌이는 것 자체가 역설적이라는 분석이다.
박 대령은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당한 상태다. 8월 13일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은 박정훈 대령과 해병대 수사관들을 군검찰에 고발했다. 김 소장은 2009년 군수 업무를 맡다가, 영관급 장교로는 최초로 군납 내부 비리를 세상에 알린 인물이다. 문재인 정부에선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 조사과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김 소장은 8월 17일 일요신문 통화에서 “이번 사건은 군사법원법이 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시행착오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기회에 명확하게 정리를 하고 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이번 사건은 경찰이 수사를 하고 검찰이 확인을 해서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면서 “갈등 중심에 있는 박 대령에게는 수사 권한이 없다”고 했다. 김 소장은 “이번 사건엔 핵심 포인트가 네 가지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먼저 채 상병 사망 책임은 해병대에 있다. 그리고 지휘선상에 있는 사람들이 명확하다. 둘째, 박정훈 수사단장은 수사권이 없다. 그런데 수사를 해서 수사 결과를 도출했다. 이 부분은 직권남용이다. 셋째, 수사권이 없는 인물이 수사를 하고 수사 결과를 도출했는데 군 내부에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무지하다. 넷째, 군사경찰 수사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던 시민단체와 인권단체, 국가인권위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침묵하거나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 소장은 “해병 1사단장을 수사 범위에서 제외하느냐 여부가 핵심 포인트가 된 것이 잘못됐다”면서 “수사단장에게 수사권이 없고, 그에 따른 수사 결과가 나올 수 없는데 어떻게 축소와 외압이 있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현 상황에서 해병대 수사단이 할 수 있는 것은 범죄 혐의가 의심이 돼 지체 없이 사건을 이첩하는 것뿐이지 어떤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면서 “바뀐 법에 대한 시스템 정립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고발장을 낸 것의 핵심은 박 대령 개인을 고발한 게 아니라 해병대 수사단을 고발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전직 해병대 장성급 관계자는 “해병대 군사경찰 병과에서는 대령이 가장 높은 계급”이라면서 “박정훈 대령은 해병대 내 군사경찰 병과 리더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사건 핵심은 사건 처리 절차에서 생긴 문제에 있다”면서 “먼저 일선 중대장, 대대장이 어떤 안전조치를 했는가를 살펴야 하고 다음은 그들의 안전조치가 미비했을 경우 사단장, 여단장 등 최상위 지휘관의 지휘책임이 존재하는가를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이번에 해병대 수사단장은 본인이 수사권도 없는 상황에서 수사 결과 브리핑을 작성해 초급간부부터 장성급 간부까지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려 했던 것”이라면서 “중간 절차를 모두 건너뛴 부분을 군에서 항명이라고 봤을 가능성이 크고, 박 대령은 이를 수사 외압으로 보고 있는 셈”이라고 짚었다.
또 다른 전직 해병대 관계자는 “이번 채 상병 사망사건은 대민지원 중 안전조치가 미비해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라면서 “다만 수해 구조와 복구에 적극 참여했다가 발생한 책임이 ‘과실치사’ 혐의 등 정치적인 이슈로까지 번진다면 앞으로 군의 대민지원이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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