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한때 1760선까지 떨어졌던 코스피가 8월 들어 1900을 넘어서자, 주가가 떨어지면 수익이 나는 공매도를 한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일견 맞는 이야기인 듯하다. 그러나 한 국내 헤지펀드 전문가는 “공매도를 한 투자자가 따로 있고 순매수한 투자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라며 “공매도는 시장 하락위험에 대비한 전략일 뿐 공매도만으로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은 많지 않다”고 설명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매도세력에 대한 오해를 풀어봤다.
공매도란 주식을 가진 투자자에게 주식을 빌려 내다팔아 일단 현금을 만든 후 주가가 떨어지면 싼 값에 주식을 되사 원래 주인에게 갚는 거래를 뜻한다. 주가가 1만 원인 A 종목이 있다고 치자. 이 주식을 가진 투자자에게서 1만 주를 빌려와 시장에 팔면 1억 원의 현금(1만 주×1만 원)이 손에 들어온다. 그리고 A 주가가 8000원으로 20% 하락했을 때 다시 1만 주를 사서(1만 주×8000원), 원래 주인에게 빌린 주식 1만 주를 되갚는 식이다. 빌려온 주식을 판 돈은 1억 원, 갚을 주식을 산 돈은 8000만 원이니 2000만 원을 번 셈으로 주가는 20% 하락했지만 수익이 났다.
다만 공매도 과정에서 매도 부담 때문에 주가하락이 나타나고, 주식을 되사는 과정에서 매수세로 인해 주가상승이 나타난다. 또 주식을 빌리는 데 따르는 비용을 지급해야 하므로 보통 주가하락 폭보다 공매도에 따르는 수익이 더 적은 게 보통이다.
어쨌든 순수하게 공매도만 했다면 주가가 내리면 이익, 주가가 오르면 손실이 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뤄지는 공매도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건 외국인이고, 주로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기관투자가들이다. 그런데 이들 헤지펀드 기관투자자들은 공매도를 주가 하락 시 돈을 벌겠다는 목적보다는, 손실을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공매도를 한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주가 상승 가능성에 투입한다. 주가가 오르면 싫을 까닭이 없다는 뜻이다. 사실 헤지펀드의 유래도 시장 하락에 따른 위험을 줄이려는 목적에서 비롯됐다.
헤지펀드 전문조사기관 유레카헤지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운용되는 1조 7000억 달러(2011년 말 기준)의 헤지펀드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류가 29%를 차지하는 ‘롱/쇼트 이쿼티(Long/Short Equity)’다. 전문용어로 ‘롱(Long)’은 매수를, ‘쇼트(Short)’는 공매도를 뜻한다.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글로벌 헤지펀드 가운데 가장 많은 것 역시 이 종류다. 이런 헤지펀드는 보통 운용자산의 80~95%는 주식을 순매수하고, 5~20%를 공매도를 한다.
국내에서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한 매니저는 “롱/쇼트 전략의 헤지펀드의 경우 쇼트보다 롱의 비중이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결국 롱/쇼트 펀드 입장에서도 시장이 오르면 수익이, 시장이 내리면 손실이 난다. 쇼트 포지션 때문에 시장이 오를 때 수익이 다소 깎이지만, 시장이 내려도 공매도 덕분에 손실 폭은 제한된다”고 말했다.
그럼 이처럼 헤지펀드 매니저가 덜 먹고, 덜 손해 보는 투자전략을 펼치는 이유는 뭘까? 바로 원금 손실 위험을 줄여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위해서다. 글로벌 헤지펀드 출신의 한 매니저는 “해외 큰손들은 단기간에 많은 수익을 내는 것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일정 수준의 수익을 내는 것을 선호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시장이 내릴 때 방어력을 갖는 게 더 중요하다. 공매도를 곁들이는 이유”라고 소개했다.
예를 들어 원금 100억 원을 투자해 시장이 20% 하락했을 때, 80억 원으로 줄어든 투자금이 다시 원금을 회복하려면 손실 폭보다 더 많은 25%의 수익이 필요하다. 또 원금이 마이너스(-) 50%, 즉 ‘반토막’ 난 후 다시 원금을 회복하려면 100%의 수익이 필요하다. 즉 같은 거리라도 내리막길보다 오르막길이 더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이 매니저는 “결국 손실이 적으면 반등장에서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수익이 오랜 기간 쌓이면 시장보다 변동성은 적지만 누적으로는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귀띔했다.
2001년부터 코스피를 대상으로 매수만 한 경우와, 공매도를 한 경우를 비교해보자. 5% 공매도 했을 때는 시장수익률의 90%, 10% 공매도 했을 때는 시장의 80%, 20% 공매도 했을 때는 시장의 60%를 벌었다. 누적수익률로만 보면 공매도를 하지 않은 게 더 나아 보이지만, 수익률 추이를 보면 공매도를 곁들인 쪽이 훨씬 오르내림의 폭이 적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시장이 하락했을 때 공매도를 곁들인 투자가 그렇지 않은 투자보다 월등히 강한 방어력을 보였다는 점이다.
2001년 이후 코스피가 3배 가까이 상승한 탓에 공매도를 곁들인 전략보다 그렇지 않은 전략의 수익이 더 높았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이 낮아 주가 그래프의 기울기도 완만한 선진국의 경우 공매도 전략이 더 나은 수익을 보인다는 게 헤지펀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공매도 전략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이는 2007년 이후 하락과 횡보를 거듭한 코스피에 적용해도 확인된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코스피를 순매수한 경우와 공매도를 곁들인 경우를 비교해 보면 오히려 5% 정도 공매도를 곁들인 경우 시장보다 나은 수익률을 거뒀다.
한편 일부 헤지펀드의 경우 수익률을 극대화해 공매도를 공격적으로 하기도 한다. 주로 경제지표의 변화방향을 예상해 투자한다고 해서 ‘매크로(Macro)’로 불리는 헤지펀드인데, 주식보다는 환율이나 금리(채권)가 주요 투자대상이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불러일으킨 헤지펀드들이 이에 해당한다. 또 추세를 따라 투자하는 ‘CTA(Commodity Trading Advisor) 전략’의 헤지펀드도 있는데, 시장 하락 시에는 공매도로 시장을 따라가고 상승 시에는 매수로 시장을 추종한다. 이 전략의 헤지펀드도 선물 등 파생상품을 이용하는 게 보통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