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사로 돌아가지 않아” 본안소송으로 다퉈…‘선급금 채무 변제’ 관련 배임·횡령 여부가 쟁점
지난 8월 28일 피프티 피프티가 소속사 어트랙트를 상대로 낸 전속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재판장 박범석)는 피프티 피프티 측의 신청을 기각했다. 앞서 피프티 피프티 측이 제기한 전속계약 해지의 주장과 그 근거를 전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당초 피프티 피프티는 크게 세 가지의 이유를 들어 어트랙트와의 전속계약이 해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익 항목 누락 등 정산자료 제공 의무 위반 및 회계 불투명성 △멤버들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관리 의무 위반 △연예활동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보유하거나 지원할 능력의 부족 등이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피프티 피프티의 음반·음원 판매나 연예활동으로 인한 수입이 제작 등에 소요된 비용을 초과해 피프티 피프티가 지급 받았어야 할 정산금(수익금)이 있다고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부 수입에 관한 정산 내역이 피프티 피프티에게 제대로 제공되지 않은 사실이 있기는 하나, 이후 정산서에서 해당 누락 내용을 시정했으므로 이를 계약 해지에 이를 만큼 신뢰관계를 파탄내는 '고의에 의한 반복적인 자료 누락 또는 은폐'로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건강 관리 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소속사는 피프티 피프티의 건강 관련 문제가 확인된 경우 병원 진료를 받도록 해 진단 내용이나 경과를 확인했으며, 활동 일정을 조율해 진료나 수술 일정을 잡도록 했다"며 "멤버 아란(본명 정은아)의 수술도 활동 강요가 아닌 상태 개선으로 연기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앞서 피프티 피프티 측은 어트랙트가 멤버들이 건강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활동을 강행했으며 특히 수술로 일정 기간 동안 활동을 중단한 아란의 경우는 어트랙트 측이 병명을 외부에 알리는 등 멤버의 사생활을 보호하지 않았다는 점을 신뢰관계 파탄의 한 이유로 들기도 했었다.
재판부는 또 이 문제에 대해 피프티 피프티 측이 아무런 시정 요구 없이 갑자기 계약 해지를 통보한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아란의 수술로 활동이 중단되고 일부 멤버들이 코로나19에 감염돼 각자의 본가로 귀가한 직후 갑작스럽게 소속사에 이 사건 전속계약을 해지하겠다는 통지를 보냈다"며 "(멤버들의) 시정 요구에도 불구하고 (소속사가) 시정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인 계약에서도 계약 위반 사항이 발생할 경우 임의대로 즉각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 유예기간 안에 시정을 요구하고, 그럼에도 재차 시정이 이뤄지지 않을 때 계약자는 상대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있다.
그러나 피프티 피프티의 경우 전속계약 조항에 계약을 위반할 경우 14일의 유예기간 안에 상대방에게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고까지 명시돼 있는데도 이에 대해 별다른 요구 없이 6월 19일 갑자기 계약 해지를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피프티 피프티의 이 같은 일련의 행동을 두고 "계약 해지 자체가 목적이었기에 시정 사실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짚기도 했다.
지원 미흡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더기버스(피프티 피프티의 프로듀싱을 담당한 외주 업체)가 더 이상 피프티 피프티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정만으론 소속사가 전속계약을 위반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배척했다.
가처분 기각 결정이 내려지자 피프티 피프티는 8월 30일 즉시항고를 진행하는 한편, 본안 소송도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피프티 피프티의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바른은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음반·음원 수입에 관한 정산구조, 음원유통사가 지급한 선급금 중 피프티 피프티 제작을 위해 사용된 내역 및 항목에 대한 미고지, 그와 관련된 채무자 대표이사의 배임 여부 등에 대해서는 본안 소송의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이 쟁점은 법률대리인이 심문재개신청을 통해 소명기회를 요청한 것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앞서 재판부의 기각 결정이 이뤄졌던 8월 28일 오전 바른 측은 재판부에 심문재개신청서를 접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속사인 어트랙트가 제3자인 스타크루이엔티와 체결한 선급금 계약에 따른 채무를 피프티 피프티의 음원 및 음반 공급으로 갚아나가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같은 행위가 어트랙트 내에서 벌어진 횡령·배임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바른 측은 "피프티 피프티는 어트랙트의 선급금 채무를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어트랙트가 제3자의 선급금 채무를 갚아나가는 행위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라며 "게다가 스타크루이엔티는 어트랙트 전홍준 대표이사가 개인적으로 지배·경영권을 행사하는 회사이므로 피프티 피프티의 음원·음반 공급에 의해 어트랙트가 스타크루이엔티의 선급금 채무를 갚아나가는 것은 전홍준 대표이사 개인 회사에 대한 부당한 지원"이라고 지적했다.
가처분 소송에서 피프티 피프티 측이 든 계약 해지의 핵심 주장 중 멤버들의 건강 관리 의무 위반과 지원 미흡의 두 가지는 구체적인 근거 자료가 없는 한 본안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피프티 피프티 측은 실질적으로 멤버들의 '생계'와 연관된 정산 문제와 맞닿아있는 이 선급금 문제에 집중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 문제가 횡령·배임에 해당한다는 본안 재판부의 판단이 나올 경우 이는 신뢰관계를 훼손하는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므로 다른 사정과 관계없이 계약의 즉시 해지가 가능해진다.
실제로 연예인과 소속사 사이의 전속계약 해지 소송 판례에 따르면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깨어졌는데도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는 이유로 연예인에게 그 자유의사에 반하는 전속활동 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연예인의 인격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며 계약당사자 상호 간 신뢰관계가 깨질 경우 연예인은 전속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피프티 피프티 역시 이 부분을 강조해 본안에 나설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이 같은 본안 소송은 피프티 피프티 측이 어트랙트 전홍준 대표를 상대로 8월 17일 낸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로 형사고발한 사건의 결과에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형사사건의 결과가 곧 민사사건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 참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사사건의 진행 상황에 따라 본안의 진행이 느려질 수도, 또는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한편 피프티 피프티가 즉시 항고장을 접수하면서부터 가처분 결정의 효력은 정지된다. 이후 본안 소송의 확정 판결이 나올 때까지 어트랙트는 또 기약 없는 시간을 '소속 아티스트' 없이 보내야 하고, 이 기간 동안 금전적 손해 역시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본안 1심에서도 어트랙트의 손을 들어준다 하더라도 피프티 피프티 측이 상고까지 진행한다면 어트랙트의 피해는 기약 없이 늘어나게 될 것이란 우려가 따르고 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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