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미집' 스틸컷.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https://storage2.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3/0914/1694680398819241.jpg)
차기작인 ‘거미집’을 촬영하던 김 감독은 어느 날 작품의 엔딩을 바꾸면 영화계에 길이 남을 ‘걸작’이 나올 것이란 계시 아닌 계시를 받게 된다. 이미 촬영이 다 끝나 다음 스케줄을 잡아놓은 상태인데다, 처음 대본과 다른 내용으로 수정한다면 검열 당국의 허가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골치 아픔에 배우들은 물론 제작사까지 김 감독의 걸작을 향한 욕망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그의 유일한 이해자이자 무조건적인 지지자는 신 감독의 조카 미도(전여빈 분)다. ‘거미집’ 제작사의 재정 담당이라는 신분을 이용한 미도는 숙모이자 제작사 대표인 백 회장(장영남 분)이 일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김 감독의 걸작을 향한 여정에 동참한다. 이 둘의 의기투합을 시작으로 다시 모인 ‘거미집’ 출연진과 제작진은 투덜거리면서도 이틀 안에 엔딩을 포함해 변경된 모든 신을 재촬영하기로 한다.
![영화 '거미집' 스틸컷.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https://storage2.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3/0914/1694680474352562.jpg)
이 같은 흡인력엔 관객들을 단 한 순간도 한 눈 팔지 못하게 만드는 배우 모두의 열연이 큰 한 몫을 해냈다. 다들 익히 잘 알고 있으니 굳이 언급하기엔 입이 아플 지경인 송강호는 물론, 극중극인 흑백영화 ‘거미집’을 1970년대 발성으로 연기하는 임수정, 오정세, 정수정, 박정수를 보고 있자면 실제로 이 영화의 완성본도 따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흑백영화를 통해서만 배우들로부터 느낄 수 있는 기괴한 아우라를 그대로 간직한 채 스크린에 등장하는 임수정과 정수정의 변신은 기대 이상의 파격을 선사한다. 촬영 장면이 아닌 신에서는 ‘코미디’ 장르답게 시종일관 관객의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레디, 고’ 사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시절 그 배우들의 모습이 되는 이들에게 감탄사 외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지 모를 정도다.
‘거미집’으로 약 5년 만에 다시 관객들 앞에 선 김지운 감독은 이 작품의 시작을 “한국영화의 새로운 르네상스”에 뒀다고 말했다. 9월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거미집’ 언론배급시사회에 참석한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영화의 위축과 위기가 왔을 때 나뿐 아니라 많은 영화인에게 있어 영화를 재정립한 기간이 아니었나 싶다. 어떻게 하면 다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맞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며 “그러던 중 ‘거미집’을 통해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더라. 1970년대는 검열 제도도 있었고 문화 전반 침체기였다. 당시 이만희, 김기영, 김수용 감독 등이 어떻게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을 돌파하고 꿈을 키워갔는지를 고민하며 영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거미집' 스틸컷.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https://storage2.ilyo.co.kr/contents/article/images/2023/0914/1694680528617721.jpg)
한편, 영화 ‘거미집’은 최근 한국영화의 거장 고 김기영 감독의 유족들이 제기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맞닥뜨렸다. 유족들은 송강호가 ‘거미집’에서 연기한 김열 감독 캐릭터가 고인을 모티브로 삼아 부정적으로 묘사했으며 인격권과 초상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제작사 측은 “‘거미집’에 묘사된 주인공은 시대를 막론하고 감독 혹은 창작자라면 누구나 가질 모습을 투영한 허구의 캐릭터”라며 “인터뷰에서 김기영 감독을 모티브로 한 인물이 아니라고 밝혀왔고 홍보에 사용한 적도 없다. 우선 유가족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집중하고 앞으로 진행하는 홍보 마케팅 과정에서도 오인의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처분 신청이 기각될 경우 영화 ’거미집‘은 예정대로 9월 27일 개봉하게 된다. 132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