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지노믹스·파멥신 등 경영참여 목적 가장 많아…업계 자금 수급 어려움이 영향 미친 듯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9월 21일까지 ‘최대주주 변경’ 공시를 낸 기업은 145곳(여러 번 공시를 낸 기업은 각각 따로 집계)이다. 이 가운데 제약·바이오, 헬스케어 기업은 28곳으로 집계됐다. 약 19%에 해당된다. 최근 1년 동안 두 번 이상 최대주주를 변경한 기업은 총 20곳이다. 씨티씨바이오, 이노테라피 등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두 번 이상 최대주주를 바꿨다.
올해 제약·바이오 최대주주 변경 공시 28곳 중 21곳은 경영참여 목적에서 최대주주가 변경된 사례다. 이외에는 오너 일가 간 수증으로 최대주주가 변경된 사례가 2곳, 기존 최대주주 지분매각으로 2대주주가 최대주주로 변경된 사례가 2곳, 인적분할로 최대주주가 변경된 경우가 1곳, 채권 출자전환으로 지분이 변동된 곳이 1곳, 최대주주 중 일부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유상증자에 참여해 독자적으로 지분율이 높아진 사례가 1곳 있었다.
대표적으로 지난 7월 미용 의료기기 업체 루트로닉 최대주주는 황해령 루트로닉 회장에서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한앤코)로 변경됐다. 한앤코는 황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19.33%를 사들였다. 이후 공개매수와 지분 매입을 통해 현재 지분율은 96.41%로 높아졌다. 한앤코는 루트로닉의 자발적 상장폐지와 완전 자회사 편입을 추진 중이다. 사모펀드는 상장사를 인수한 후 상장폐지하는 전략을 택하곤 한다. 비상장사는 공시의무가 없어 경영에 대한 의사결정이 쉽다.
지난 4월 이종장기사업을 펼치는 제넨바이오 최대주주는 제넥신에서 경영컨설팅 업체인 제이와이씨로 변경됐다. 제이와이씨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을 19.54%로 늘렸다. 기존 최대주주였던 제넥신의 지분은 4.01%에서 3.23%로 줄었다. 제넨바이오의 최대주주가 변경된 것은 회사의 경영 상황과 무관치 않다. 제넥신은 2020년 1월 전환사채 전환으로 지분 8.13%를 보유하며 최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이후 꾸준히 주식을 팔았다. 제넨바이오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경영참여 목적에서 최대주주가 변경된 기업 중에는 창업주가 최대주주 자리를 내놓은 경우도 있다. 유전자 검사 전문업체 랩지노믹스와 항체치료제 전문 기업 파멥신이 대표적이다. 지난 1월 랩지노믹스 최대주주는 창업주 진승현 대표에서 사모펀드 운용사 루하프리이빗에쿼티 주식회사로 변경됐다. 7월에는 파멥신의 최대주주가 창업주 유진산 대표에서 경영컨설팅 기업인 유콘파트너스로 바뀌었다.
최대주주가 변경된 사례 중에는 승계가 이뤄진 경우도 있었다. 지난 9월 13일 일반의약품 판매사업과 화장품 사업을 영위하는 신일제약은 창업주인 홍성소 회장이 딸인 홍재현 대표에게 121만 주를 증여했다. 홍 대표 지분은 기존 9.9%에서 20.08%로 높아졌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2021년 대비 크게 오르자 경영권을 넘긴 것으로 풀이된다.
최대주주 변경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 바이오 기업 대표는 “증자로 자금을 조달한 경우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소액주주 입장에서도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통상 경영권을 둘러싼 지분 매입 경쟁은 주가 상승 요인이 된다. 실제 올해만 세 번 최대주주가 변경된 동물·인체 약품 기업 씨티씨바이오 주가는 올해 1월 31일 6240원에서 9월 21일 1만 2380원으로 98%나 올랐다.
하지만 최대주주 변경 후 소액주주 사이에서 불만이 제기되는 기업도 적지 않다. 경영 정상화를 염두에 두고 최대주주 자리에 오른 후에도 별다른 재무 개선 성과를 보이지 못하는 경우다. 대표적으로 지난 4월 최대주주가 변경된 제넨바이오는 지난 9월 12일 운영자금 부족으로 200억 원 규모의 대출원리금을 연체한 상황이라고 공시했다. 제넨바이오 주가는 올해 1월 31일 1721원에서 9월 21일 497원으로 71% 하락했다.
무리한 인수로 잡음이 일기도 한다. 파멥신은 지난 6월 파멥신다이아몬드클럽동반성장에쿼티 제1호(파멥신다이아몬드)와 맺은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 양수도 계약’을 해제한다고 지난 9월 14일 밝혔다. 앞서 파멥신다이아몬드는 300억 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파멥신은 계약금을 제외한 유증대금이 납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약을 해제했다.
유콘파트너스도 파멥신 최대주주 지위를 잃게 됐다. 앞서 유콘파트너스는 유진산 파멥신 대표 지분 6.2%를 인수하는 동시에 파멥신다이아몬드가 지급해야 할 잔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7월 최대주주가 된 바 있다. 9월 14일 파멥신은 기존에 파멥신다이아몬드와 맺었던 300억 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대상자를 히어로벤처스아시아로 변경한다고 공시했다. 그러자 같은 달 15일 기존 최대주주였던 유콘파트너스는 경영권 관련 소송을 제기하며 기업 안팎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최대주주 변경으로 인한 갈등이 오래 지속되기도 한다. 지난해 최대주주가 변경된 헬릭스미스를 둘러싼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12월 헬릭스미스 최대주주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따라 창업주인 김선영 대표에서 카나리아바이오로 변경됐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은 ‘헐값 매각’이라며 반발했다. 소액주주연합은 신주발행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9월 19일 서울고등법원은 소액주주연합이 제기한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 소송을 인용했다.
이와 관련, 바이오업계 한 관계자는 “한동안 업계가 자금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최대주주 변경이 잦은 듯하다”라고 말했다. 앞서의 바이오 기업 대표는 “시장의 영향이 최대주주가 변경된 이유가 중요할 것 같다. 제약·바이오 업종은 전문성이 중요해 최대주주가 바이오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기업이나 업계에 대한 신뢰가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명선 기자 se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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