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리지널 비아그라(왼쪽)와 껌 형태의 발기부전치료제. |
‘제2의 성(性)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조루치료제의 등장은 화려했다. 지난 2009년 다국적 제약사 존슨앤드존슨은 세계 최초로 먹는 조루치료제 ‘프릴리지’를 내놨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화이자의 ‘비아그라’를 따라잡겠다는 포부도 숨기지 않았다. 당시 국내 반응도 뜨거웠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현실은 처참했다. 초반에는 하루 평균 700명이 프릴리지를 처방받는 등 출시 3개월 만에 매출 35억 원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으나 거기까지였다. 갈수록 인기가 시들해져 프릴리지를 찾는 사람들이 줄었다. 결국 지난 2년간 프릴리지의 총 매출액은 100억 원이 채 되지 않았다. 3000억 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것이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해외에서도 다를 바 없었다. 기대 이하의 반응에 미국에서는 출시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처럼 줄줄이 참패를 맛본 존슨앤드존슨은 지난 5월 프릴리지의 판권을 미국계 제약기업인 퓨리엑스에 넘겼다. 이후 퓨리엑스는 한국을 포함해 프릴리지의 일부 판권을 이탈리아계 메나리니에게 팔았다.
조루치료제의 실패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비아그라 열풍이 불기 시작할 무렵인 1998년 국내에서도 바르는 조루치료제가 출시된 적이 있었다. 생약성분으로 만들어진 태평약제약의 ‘SS크림’은 시판 2주 만에 12만 개가 팔려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오래가진 못해 2004년 제품생산이 중단됐다.
이처럼 조루치료제가 외면받고 있는 까닭에 대해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구입해야 한다는 점과 ‘성관계 1시간 전에 복용’이라는 것엔 차이가 없다. 다만 가격은 조루치료제가 약간 높은 편이다. 비아그라는 평균 50㎖ 한 알 1만 1000원, 100㎖는 1만 5000원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으나 프릴리지는 30㎖ 1만 4000원, 60㎖ 2만 4000원에 살 수 있다.
하지만 의약계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조루치료제의 한계는 ‘필수성’이다. 조루는 일단 발기는 되지만 일찍 사정해버리는 증상이지만 발기부전은 아예 발기가 되지 않거나 유지되지 않는 증상이다.
이윤수 비뇨기과 원장은 “발기부전을 겪는 사람들은 성관계를 맺으려면 꼭 약을 복용해야 한다. 하지만 조루는 꼭 약을 먹지 않더라도 짧은 시간이나마 성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적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조루치료제의 효능이 기대 이하였다고 평가한다. 해외 제약업계 관계자는 “발기부전과 달리 조루는 개인마다 판단기준이 다르다. 따라서 개선효과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성관계 시간이 2분이 늘어나도 이를 두고 효과를 봤다고 말하기도 하고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조루치료제를 처방해도 환자가 효과를 뚜렷하게 체감하지 못해 의사들의 처방도 크게 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마케팅 실패도 하나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발기부전치료제를 생산하는 제약업계 관계자는 “세계적인 비아그라의 인지도와 국내외 제약사들의 경쟁구도 속에서 자연스레 광고가 됐다. 이 과정에서 노이즈 마케팅도 이뤄졌고 약간의 과대·과장 광고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소비자들 머릿속에 비아그라 한 알이면 모든 성관계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박힌 것이다. 하지만 조루치료제는 적극적인 마케팅에 나서지 않아 소비자의 생각을 바꾸지 못해 시장에서 도태됐다”고 말했다.
종로에서 대형약국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 약사(64)도 “발기부전치료제가 조루까지 해결해준다는 생각을 가진 소비자들이 상당히 많다. 40대 중후반 이상의 남성 절반이 성관계 시 발기에 어려움을 겪는데 이때 조루가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하면 어쨌든 성관계는 할 수 있기 때문에 조루까지 치료됐다는 인식을 가지게 됐고 발기부전치료제 제약사들도 이를 교묘히 홍보했다”고 말했다.
프릴리지의 국내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얀센 관계자 역시 마케팅 미흡에 대해서는 일부 동감을 했다. 하지만 “시장 반응에 대해 조사한 자료가 없어 실적 부진의 원인이나 매출 추이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하긴 어렵다. 판권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는 지금까지 해온 그대로 프릴리지 판매를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효능이 같다면 싼 것이 ‘갑’
▲ 한미약품의 팔팔정. |
시장조사기관 IMS의 발표에 따르면 비아그라는 올 2분기 74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1분기까지만 해도 96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예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였다. 제네릭의 등장으로 매출액 감소가 현실화됐다. 비아그라 제네릭 선두주자인 한미약품의 ‘팔팔정’이 2분기 매출 177억 원을 기록하며 업계 1위로 올라선 것이다. 비교적 출시가 늦었던 다른 제약사들의 매출액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일단 제네릭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좋은 편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팔팔정은 비아그라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이름도 기억하기 쉬워 소비자들이 먼저 찾고 있다. 불법경로를 통해 발기부전치료제를 구입하던 사람들도 제네릭이 출시되면서 제도권으로 들어오는 효과도 낳고 있다. 블랙마켓에서 거래되던 비아그라는 성분은 유사할지 몰라도 정량에 대한 기준이 없어 자칫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는데 제네릭은 안전성도 보장되고 가격도 비슷해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화이자 관계자는 “이번에 발표된 IMS 자료는 병원처방이 아닌 시장에 유통된 양을 기준으로 작성됐다. 보통 제약사에서 신제품을 출시하면 영업 명목으로 시장에 배포를 하는데 이마저도 통계에 집계됐다. 실제 소비자들이 구매한 수치는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최소 3~4개월은 더 지켜봐야 제네릭의 영향력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