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빈 회장이 계열사 부당지원 지시를 한 것으로 밝혀지는 등 각종 악재로 도덕성 문제가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일요신문 DB |
지난 7월 19일 공정위는 롯데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사업을 영위하는 계열사 롯데피에스넷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6억 4900만 원을 부과했다. 계열사를 부당지원했다는 이유에서다. 롯데피에스넷이 ATM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중간에 롯데기공(현 롯데알미늄)을 끼워 넣었던 것. 다시 말해 롯데피에스넷이 ATM 제조업체인 네오아이씨피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었음에도 롯데기공을 통해 간접 구매했고, 이 과정에서 롯데기공이 가만히 앉아서 41억 5100만 원의 이득을 챙겼다는 것이다.
롯데기공은 2009년 1월 워크아웃 대상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경영악화에 시달리던 상태였지만 그해 말 단숨에 흑자로 돌아섰다. 롯데알미늄과 합병도 있었지만 이 같은 부당지원이 큰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다. 반면 제조업체에서 ATM을 모두 666억 3500만 원에 살 수 있었던 롯데피에스넷은 중간에 롯데기공을 끼워 넣음으로써 707억 8600만 원을 지불, 그만큼 손해를 봤다.
이러한 불법행위가 신동빈 회장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으로 드러나 파장은 컸다. 일련의 과정을 조사한 공정위는 “당시 신동빈 부회장이 롯데기공을 거래 중간에 끼워 넣을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롯데기공이 ATM 사업과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는 것도 문제가 됐다. 결과적으로 신 회장은 사업 연관도 없는 부실 계열사를 중간에 끼워 넣어 이른바 ‘통행세’를 챙기게 한 셈이다. 롯데피에스넷과 관련, 최근 또 말썽이 생겼다. 롯데피에스넷이 ATM을 구입해오던 협력업체 네오아이씨피의 핵심 소프트웨어 기술을 ‘탈취’했다는 것. 롯데피에스넷과 네오아이씨피 측 주장이 서로 다르고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경찰이 압수수색까지 할 정도라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 롯데브랑제리 홈페이지. |
재벌빵집 논란과 관련, 신영자 전 롯데쇼핑 사장의 차녀 장선윤 씨가 설립한 회사 블리스가 수입·운영했던 프랑스 고급 베이커리 ‘포숑’이 문제가 됐다. 재벌가 딸이 어머니의 배경을 업고 손쉽게 사업을 하면서 중소상인들의 상권을 침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올 초 블리스 측이 ‘포숑’ 사업에서 철수한다고 밝혀 일단락되는 듯 보였지만 롯데는 계열사 롯데브랑제리를 통해 베이커리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롯데 계열사로 등록돼 있는 롯데브랑제리는 롯데의 거대 유통그물인 백화점, 마트, 슈퍼마켓 등을 활용해 140여 매장에서 영업 중이다.
그런가 하면 롯데닷컴은 지난 8월 초 할인율을 허위로 표시했다가 공정위의 시정명령과 함께 과태료 500만 원의 제재를 받았다. 다운점퍼, 여성구두 등 품목 할인율이 실은 0%였음에도 각각 42%, 49%로 대폭 할인되는 것처럼 허위로 표시했다는 것이 공정위 조사 결과다. 롯데닷컴은 이 같은 사실을 롯데닷컴 초기화면에 3일간 게시해야 하는 공표명령도 받아 이미지와 신뢰도가 적잖이 추락했다.
잇단 꼼수 논란 속에서 신동빈 회장은 대내외적으로 ‘비상경영’을 주문했다. 신 회장은 지난 6월 28일 사장단회의에서 “지금은 극도로 불안정한 경제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라며 “불확실성이 제거될 때까지 내실경영을 통한 체질 강화에 들어가는 단계”라며 각 계열사 사장단에 강도 높은 비상경영과 내실경영을 당부했다.
문제는 시점이다. 신 회장이 비상경영·내실경영을 주문한 때는 지난 6월 25일 롯데가 하이마트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직후였던 것. M&A업계뿐 아니라 증권가 등에서도 롯데의 탈락에 큰 아쉬움을 토로하며 입찰가를 적게 써낸 롯데를 질타했다. 하지만 신 회장의 ‘비상경영’ 주문이 나오자 일부에선 “롯데가 생각보다 입찰가를 적게 써낸 이유가 있었다”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롯데그룹 역시 ‘앞으로 M&A에 신중을 기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중소상인과 시민단체에서도 롯데와 신동빈 회장은 규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소상공인연합회,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 등은 ‘롯데 불매운동’을 선포하면서 롯데와 신 회장을 한목소리로 성토하고 있다. 협력업체에 대한 롯데마트의 횡포도 모자라 음식점이나 슈퍼마켓 등에 식음료를 납품하는 도매사업까지 뛰어들어 중소상인과 골목상권을 죽이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롯데카드 거부운동까지 함께 하는 등 여파가 롯데그룹 전체 계열사로 확산되고 있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롯데는 현재 재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런데 5대그룹이 아니라 왜 늘 롯데는 쏙 빼고 4대그룹만 묶이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덩치만 커진다고 능사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