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대한항공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부채가 많은 대한항공의 인수 자격에 대한시비가 일고 있다. |
지난 8월 16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최대주주인 한국정책금융공사는 대한항공 1곳만 KAI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비록 유효경쟁이 성립되지 않아 인수의향서 제출 기한을 8월 31일까지 연장했지만 현재까지 대한항공 외에 다른 기업이 자발적으로 들어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유효경쟁이 성립하지 않으면 KAI 매각은 무산된다. 그러나 정책금융공사가 매각작업을 계속할 경우 대한항공은 수의계약 형태로 KAI를 안을 수 있다. 단, 정책금융공사가 매각 작업을 할 때마다 유효경쟁이 성립되지 않아야 하고 그때마다 대한항공만 유일하게 인수의향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공적자금이 들어간 기업을 매각할 때는 두 차례 유효경쟁 불발 후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
KAI 인수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오랜 꿈이다. KAI 지분 매각 논의가 있었던 2003년과 2006년, 그리고 2009년에도 조 회장은 “KAI를 인수해 항공우주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며 인수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문제는 대한항공이 과연 KAI를 인수할 여력이 있느냐다. 한진그룹은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은 상태인 데다 이마저도 언제 졸업할지 장담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 지분에만 1조 4000억 원가량을 투입해야 할 KAI 인수에 성공할지 의문이라는 것이 업계 관측이다.
대한항공 측은 “현금과 자금 여력이 충분하다”고 밝히고 있다. 대한항공은 현재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1조 원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부채비율이 800%에 달한다. 2009년 말 400% 정도였던 부채비율은 해마다 오르더니 지난해 말에는 700%가 넘었고 지금은 800%까지 치솟았다.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은 대한항공으로서는 부채비율을 낮춰야 하는 것이 먼저 해야 할 일인데 오히려 부채비율은 갈수록 높아져가고 있는 셈이다.
이런 마당에 보유하고 있는 현금과 현금성 자산을 새로운 기업을 인수하는 데 쓴다는 것, 그것을 용인해주고 있는 채권단의 결정을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일각에서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홀딩스 지분을 매각해 자금을 마련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조 회장은 한진해운홀딩스 지분을 팔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 현금이 많기에 굳이 지분을 팔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조 회장의 이 같은 행동에는 한진해운을 계열분리하지 않겠다는 의중이 담겨 있다고 보고 있다.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이 지주회사를 설립하고 한진그룹 관련 지분을 처분하면서 계열분리 준비를 마친 상태임에도 조 회장은 몇 년 전부터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계열분리를 외면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0월과 올 6월 비용절감 차원에서 희망퇴직을 실시한 바 있다. 강제성을 띠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그만큼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직원들의 희망퇴직까지 실시하는 기업이 최소 1조 원 이상 투입해야 할 인수전에 무리가 없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현재 KAI의 주가가 고평가돼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인수 의지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리를 해서, 혹은 무조건 KAI를 인수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인수 여력과 별개로 대한항공은 특혜 의혹에도 시달리고 있다. KAI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항공기를 제조하는 업체로 지난해 매출 1조 2857억 원에 영업이익 1060억 원을 달성한 우량 회사다. 또 적잖은 국가에서 국가산업으로 여기는 항공우주산업이라는 특수성까지 있다. KAI노동조합과 정치권, 시민단체 등이 전부 매각을 반대하고 있으며 ‘매각 고집은 특정기업에 대한 특혜’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공적자금을 퍼부어 만든 KAI를 지금 시점에서 매각하려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정권 말에, 그것도 재무구조개선 약정 기업이 단독 참여해 인수하려는 건 누가 봐도 의혹이 제기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꼬집었다. 대한항공은 또 인천공항 급유시설 운영권 선정과 관련해서도 특혜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KAI의 경우 정식 절차에 따라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것이며 인천공항 급유시설 운영권은 아직 결정 나지 않았다”며 “특혜라고 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억울해했다.
동부그룹이 대우일렉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도 시장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지난 23일 우선협상대상자를 공식적으로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동부그룹 역시 한진그룹처럼 재무구조개선 약정 기업이다. 동부그룹은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동부건설을 중심으로 계열사들이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계열사 지분 등 자산 매각, 유상증자 등의 방법으로 현금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기업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다는 것이 의외라는 반응도 있다.
재무구조개선 약정 기업은 약정을 맺은 채권단이 반대하면 인수전에 뛰어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재무구조개선 약정에서 졸업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재무구조개선 약정 기업이 인수전에 뛰어들지 말라는 법은 없다”면서도 “단, 채권단이 용인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동부그룹 측은 부채비율이 올라가지 않는 선에서 자금을 마련하겠다며 산업은행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현재도 산업은행과 협의는 진행 중”이라며 “중요한 것은 대우일렉을 인수할 경우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이행하는 데 영향을 줄 것인지 여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즉 영향을 주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 부실채권정리기금 운영시한을 코앞에 둔 쌍용건설은 매각시기를 놓쳐 자금난에 빠졌다. |
캠코는 2008년 동국제강에 쌍용건설을 매각하려 했으나 실패, 지금에 이르렀다. 건설경기 침체로 쌍용건설 주가가 좀처럼 기대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자 캠코는 쌍용건설 매각과 관련해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는 답변을 반복했다.
그러나 부실채권정리기금 운용시한이 다가오면서 급해졌고 2008년부터 3년간 별다른 매각작업을 벌인 적이 없던 것을 지난해에는 세 차례나 매각을 시도했다. 결과는 모두 무산. 캠코 관계자는 “시한 때까지 여러 방안을 고민 중이다”라고 밝혔지만 내심 현물 반납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쌍용건설의 주가는 한때 2만 원을 넘은 적도 있다. 8월 24일 종가(4105원)의 5~6배에 달하던 시절이다. 캠코가 열의만 있었다면 좋은 가격에 매각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과욕이 화를 부른 셈. 더 큰 문제는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는 쌍용건설이 부실채권정리기금 운용시한까지 버틸 수 있을지다.
웅진코웨이 매각 과정은 ‘막장 드라마’ 수준이다. 웅진홀딩스는 지난 7월 24일 웅진코웨이 지분 60%를 KTB사모펀드에 매각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지난 8월 16일 30.9% 지분을 1조 2000억 원에 MBK파트너스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웅진홀딩스 관계자는 “KTB와 딜 구조상 자금 유치나 투자 등이 연말께나 가능할 듯했다”며 “자금이 급한 우리로서는 시기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급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경영권이 포함된 가격. KTB사모펀드에 지분을 매각한다고 했을 때 경영권은 유지하겠다던 것도 뒤집은 셈이다. 이 관계자는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자금 확보가 더 급했다”고 토로했다.
회사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홍준기 웅진코웨이 대표를 포함한 웅진그룹 임원들이 웅진코웨이 주식 26만 주(약 63억 원)의 스톡옵션을 행사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들은 행사 기한이 아직 남았음에도 스톡옵션을 행사했다. 회사가 어려울 때 발 벗고 나서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먼저 자기 몫만 챙겼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