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은은 한 탈북자가 추진하고 있는 대구 동화사(사진) 금괴 발굴에 입회하겠다고 통보했다. 한은이 6·25 때 북한군에 빼앗긴 금괴 중 일부일 가능성이 있어서다. |
한은이 금을 매입하는 곳은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금 거래 시장인 런던금속거래소다. 그런데 런던금속거래소에서 사들인 금이 정작 한은에는 한 조각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은 본관 지하에 대형 금고가 있지만 거기에는 시중에 아직 공급되지 않은 원화만 있을 뿐이다. 한은이 보유한 금 70.4톤은 전부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 지하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이 창고에는 영국이나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맡긴 금이 금괴 형태로 보관되어 있다. 여기에 보관 중인 금의 거래는 실물이 아닌 장부상으로만 거래된다.
한은은 설립초기에 금을 한은 지하금고에 보관해놓았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틀 뒤인 27일 한은은 금고에 있던 금 1070㎏과 은 2500㎏을 부산으로 긴급히 후송했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과 운송수단 부족으로 금 223㎏과 은 1만 6000㎏을 옮기지 못했고, 한은 건물이 28일 북한군에 점거된 뒤 남아있던 금과 은은 그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최근 한은이 대구 동화사 금괴 발굴에 입회를 하겠다고 문화재청과 동화사에 통보했는데, 그 이유는 이 금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가져갔던 금 중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 때문이다. 2008년 탈북한 김 아무개 씨(40)는 남한 출신 양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40㎏ 상당의 금괴를 동화사 대웅전 뒤편 기단 부근에 묻었다며 발굴을 추진해왔다. 지난 6월 김 씨는 문화재청으로부터 발굴 허가를 받았고 동화사 측과 발굴 날짜를 협의 중이다.
그런데 김 씨와 함께 발굴계획을 세운 다른 탈북자가 김 씨로부터 양아버지가 인민군이었으며 한은에서 훔친 금을 동화사에 묻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히면서 한은이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참관을 요청한 것이다. 한은 측은 이 금괴가 북한군이 가져간 한은 소유의 금으로 확인될 경우 법적으로 소유권을 다투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당시 부산으로 무사히 후송된 금은 미국으로 옮겨져 미 중앙은행인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지하금고에 보관됐다. 한은은 종전 후 금을 다시 미국으로부터 돌려받아 보관하다 1980년대 말부터 영란은행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 때 매입한 3톤의 금도 바로 영란은행으로 보내졌다. 2004년에는 남아있던 모든 금이 영란은행으로 이전됐다.
▲ 서울 남대문로에 있는 한국은행 본관. |
대개 금 대여 이자율은 연 0.2% 정도. 지금까지 한은은 1.5톤 정도의 금을 이자로 거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국채금리가 떨어지면서 금 대여 이자도 하락했지만 여전히 금 대여거래로 수익을 거두고 있다. 영란은행은 한국 등 다른 나라의 금을 보관하는 대신 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는 금괴 한 개당 하루에 몇 백 원 수준으로, 수수료보다 거둬들일 수 있는 이자가 높아 영란은행에 맡기는 것이 이익이라고 한다.
이처럼 안전자산으로 매력이 높은 금은 세계 대공황이 오기 전까지 세계 화폐의 중심이었다. 세계 각국은 당시 자국이 가지고 있는 금 가치와 연동해서 화폐를 발행하는 금 본위제를 시행했다. 당시에는 화폐를 은행에 가져오면 해당 가치만큼의 금으로 바꾸어줬다.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화폐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세계 대공황에 각국이 경쟁적으로 무역 보호를 위한 평가절하를 실시하고,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가 확장되면서 금을 중심으로 하는 금 본위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 이후 다시 금의 가치가 주목을 받으면서 금을 찾는 국가들이 늘어났다
특히 최근 유럽 재정위기로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앞 다퉈 금을 사 모으고 있다. 올해 들어 매달 금을 사 모은 터키는 총 48.9톤을 매입했고, 필리핀은 35.3톤, 러시아는 35.1톤을 사들였다. 카자흐스탄은 올해 들어 19.6톤, 멕시코는 19.3톤의 금을 매입했다.
이러한 각국의 금 매입은 지난해에도 적지 않게 이뤄졌다. 지난해 멕시코는 무려 98.9톤의 금을 매입했고, 러시아는 94.2톤의 금을 사들였다. 터키는 79.2톤을 샀고, 태국은 52.9톤을 사들였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6월에 25톤, 11월에 15톤을 사들여 총 40톤의 금을 매입, 그 뒤를 이었다. 1년 1개월 사이에 총 56톤의 금을 사들인 것이다.
이러한 수치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금 보유량은 지난해 6월까지 솔직히 별 볼 일이 없었다. 우리나라는 2009년 6월 말 14.4톤의 금을 보유한 뒤 지난해 6월 금 매입을 다시 시작하기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금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달러의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졌던 때였다.
이 때문에 경제 전문가들은 물론 국회에서도 한은이 금을 사들이는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한은은 결국 금값이 거의 고점에 이른 뒤 하락하는 시기에 들어선 지난해에서야 금을 사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금 가격이 이후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고,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다시 상승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이 지난해부터 금 보유량을 급속히 늘리면서 우리나라의 금 보유량 순위도 크게 올랐다. 금 보유량을 늘리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금 보유량은 조사대상 100개국 가운데 57위였다. 하지만 최근 금을 사 모으면서 현재 순위는 40위로 17계단이나 껑충 뛰었다. 세계금위원회에 따르면 금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미국으로 총 8133.5톤의 금을 가지고 있다. 독일(3395.5톤)과 국제통화기금(IMF·2814톤), 이탈리아(2451.8톤), 프랑스(2435.4톤), 중국(1054.1톤), 스위스(1040.1톤)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