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에게 폭행당해 치료비만 1억 2000만 원…“국가 위해 일하다 다쳤는데 돈 걱정까지 해야 하나”
2016 지명수배자 검거 전국 1위로 유공 특진을 했던 최지현 경사 얘기다. 유능한 경찰이었던 최 경사는 다음 해인 2017년 공무 중 사고를 당하면서 고통 속에 빠지게 됐다. 최 경사는 술에 만취한 남성 A 씨가 여자 손님을 희롱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A 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돼 경찰서로 가게 됐는데, 처음엔 순순히 따라오다 갑자기 돌변해 최 경사를 폭행했고, 어깨 관절이 찢어지며 기나긴 투병 생활이 시작됐다(관련기사 [단독] ‘시민 구한 영웅’ 최지현 경사 “감찰 못 믿겠다” 법원 향한 사연).
최 경사는 이때 다친 어깨 관절로 인해 자가면역질환을 겪게 됐고, 이게 CRPS(복합부위통증증후군) 직전 단계까지 진행된 상태다. CRPS는 면역계 이상으로 생긴 옷깃만 스쳐도 칼에 베인 듯하다는 고통을 주는 질병이다. 최 경사는 어깨 관절 부상으로부터 시작된 투병 생활로 인해 1억 2000만 원 이상을 치료비로 낸 상황이다. 하지만 그가 정부에서 받은 돈은 5000만 원에 불과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최 경사는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탐정사무소’에 정복을 입고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요신문은 최 경사를 만나 공무 중 부상으로 인해 끝없는 고통을 받는 현실과 경찰과 정부의 턱없이 부족한 보상 제도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2017년 부상을 당한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
“2017년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와 출동했다. 처음에는 순순히 협조하는 듯했는데, 경찰서로 가는 도중 돌변해 난동을 부렸다. A 씨는 순찰차 안에서 경찰관을 계속 발로 차고, 침을 뱉었다. 나는 어깨를 다쳤고, 동료 경찰관은 입술이 심하게 찢어졌다. 제압 과정이 1시간 정도 걸렸고, 어디를 맞았다고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타격을 당했다. 경찰서 당직실 안에서도 계속해서 행패를 부리고, 당직 형사에게까지 욕을 해 결국 수갑을 채웠는데, 그 과정에서 부상당했다며 나와 동료들을 독직폭행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가장 크게 다친 어깨 부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도저히 낫지 않아 정밀 검진을 받았더니 어깨 연골이 찢어지고 안에 고름이 차 있었다고 했다. 결국 수술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심각성을 깨달았다.”
—수술 결과는 어땠나.
“수술 결과도 좋지 못했다. 수술을 두 차례나 받았지만, 수술 도중 문제도 있었고 통증은 계속됐다. 자가면역질환을 겪으면서 나아지지 않는 고통에 시달렸다. 병원에서는 CRPS 직전 단계라고 한다. 고통이 너무 심해 잠을 잘 수가 없다. 병원에서는 가급적 매일 와야 하고 최소한 일주일에 두세 번은 오라고 하는데 업무상 쉽지 않다. 이제는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다. 사실상 치료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생존 치료인 셈이다.”
—치료가 다 끝나지 않은 채 복직을 했다.
“3년 안에 복직하지 않으면 직권 면직되는 상황이라 치료 중 2021년 2월 현장으로 돌아왔다. 과거 지명수배자를 전국에서 가장 많이 잡아 1년 만에 1계급 특진했던 나지만 도저히 일선에서 근무는 자신이 없었다. 어렵게 후방 지원 근무인 외사계 근무를 발령받아 근무했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치료를 받고 오면 꾀병이라며 따돌리거나, 대놓고 면박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몸이 아픈 것보다 그런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힘들 때가 많다. 2022년 경찰의 날에 그런 스트레스와 몸의 고통이 중첩되면서 뇌출혈이 일어나기도 했다.”
—뇌출혈은 어떻게 발병한 건가.
“몸 상태는 안 좋아졌고, 주변 경찰 동료의 따돌림이 점점 심해졌을 때였다. 경찰의 날에 VIP 경호에 동원되기 위해 새벽에 출근하는데 갑자기 마비 증상이 왔다. 중요 행사를 참석 못 하고 응급실로 갔다. 정밀 검사를 하려면 200만 원을 달라고 해서, 그때 검사를 포기하고 경찰병원을 나중에 가게 됐다. 경찰병원에서 MRI를 찍고, 며칠 뒤 외근 중에 경찰병원 신경외과에서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두통 괜찮냐. 당장 병원에 올 수 있냐’고 해서 갔더니 ‘뇌출혈인 거 같다. 치명적이니까 빨리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때 부서장에게 울면서 ‘이제는 뇌출혈까지 왔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해 사람들이 날 따돌리냐’고 절규하기도 했다.”
—뇌출혈 치료는 잘 끝났나.
“3개월 동안 재활 치료를 병행했지만 부족했다. 그런데 더 휴직을 하고 싶어도 경제적인 치료비 때문에 못 쉬고 2023년 2월에 근무를 계속 이어 나가게 됐다. 쉬면 치료비를 낼 돈이 없다. 경찰 봉급은 수당이 많이 포함되는데 이 돈도 당연히 없다. 질병 휴직은 본봉의 60% 정도를 받는다. 세금, 공제회비 등을 떼고 입금되는 게 90만 원 정도였다. 이 돈으로는 치료비 일부도 부담하기 어렵다.”
—병원비 부담이 심할 것 같다.
“치료비는 억 단위 이상 나가는데 정부가 준 치료비, 위로금, 변호사비 일부 지원금 등 총 5000만 원이다. 공무원 대출에 비싼 고금리 캐피털 대출까지 끌어다 썼지만, 이제는 정말 돈이 다 떨어진 상황이다. 여기다 가해자인 A 씨에게 민사 소송을 통해 1심에서 4500만 원을 받기로 돼 있는데, 결과가 확정되면 이중배상금지에 따라 4500만 원은 토해내야 한다. 매년 갱신해야 하는 공상(공무상 재해 보상) 인정도 복직을 이유로 연장이 불허됐다. 이제 지원금은 없고, 나갈 돈은 쌓여만 간다.”
—경찰병원은 어떤가.
“경찰병원은 무료이긴 하다. 그런데 전국에 서울 한 곳밖에 없어서 예약 잡기도 어렵고, 근무지와 너무 멀다. 일주일에 최소 세 번 이상을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렇게 예약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본가가 제주도인데 제주도에서 요양을 한다면 경찰병원을 위해 서울로 비행기 타고 왔다 갔다 해야 한다.”
—무엇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처음부터 A 씨를 제압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 같다. 누군가는 ‘경찰관이면 취객 한 명은 제대로 제압했어야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아프기 전에는 내 몸 하나 지키는 건 자신 있었다. 그런데 취객이 난동을 부려도 경찰관이 제대로 제압을 할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당한 것이다. 경찰관 독직폭행은 벌금형이 없이 징역형부터다. 그런데 나를 때린 A 씨는 난동을 부리고 경찰 2명을 상해 입혔지만 재판에서 벌금 800만 원에 그쳤다. 이게 균형이 맞냐는 거다. 실제로 경찰관이 난동 부리는 취객을 제압했다가 독직폭행 혐의가 조금이라도 인정될 것 같은 상황이면, 취객은 합의금을 최소 5000만 원부터 부르고 시작한다.”
—독직폭행과 경찰관 폭행 무게를 어떻게 맞춰야 하나.
“경찰은 독직폭행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 된 제압을 못한다. 난동을 피우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구두 경고 몇 차례 했는지, 제압 전 상부 보고를 어떻게 했는지 사후에 따져서 판단을 한다. 지금은 독직폭행으로 거액 합의금을 내야 할 상황이면 경찰 조직에서 십시일반 모금해 준다. 언제까지 모금으로 해결할 생각인가. 지금은 독직폭행에 걸리지 않기 위해 경찰들이 증거 확보 차원에서 보디캠을 차고 다니는 시대다. 예전처럼 시민에게 폭력을 가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독직폭행 관련 법을 현실에 맞춰 개선해야 한다. 반면 경찰관을 폭행하는 사람은 그런 걸 두려워하지 않고 처벌도 훨씬 약하다. 나는 A 씨에게 치료비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A 씨는 현직 경찰관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는데도 어떠한 구금이나 구속조치 없이 단순 벌금형 판결로 종결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경찰관 때리는 걸 두려워할까. 경찰관을 때리면 독직폭행처럼 양형을 강하게 정해 놓든지, 최소한 벌금 액수라도 훨씬 많이 내게 해서 경찰은 때리면 안된다는 걸 알게 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일선에서 시민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는 범죄자를 만나더라도 경찰이 적극적으로 이들을 제압하기는 요원하다고 본다.”
—공상 지급 관련해서도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공상 지급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공상으로 인정돼도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은 30%밖에 지원받을 수 없다. 예를 들어 9월 1일 부산 목욕탕 화재 사건에서 화마와 싸우다 경찰관이 크게 다쳤지만, 병원비나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동료들에게 도움을 호소했다. 화상 관련 질환은 대부분 비급여라 사비로 내야 한다. 전신 35% 이상 화상일 경우에만 간병비가 지원된다고 해서 이것도 받지 못했다고 들었다. 간병비가 나와도 하루에 많아야 6만 7140원이라 실비인 15만 원을 감당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액수다. 장애로 고통받는데 치료비 부담까지 떠안으면 어느 경찰관이 나서서 일을 하겠나. 이중배상금지 조항도 문제다. 1심에서 받게 된 4500만 원은 치료비뿐만 아니라 위자료, 향후 치료비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일괄적으로 국가에 돌려줘야 한다. 국가를 위해 일하다 다쳤는데, 아파서 힘든 것뿐만 아니라 치료비 걱정까지 해야 하는 상황은 만들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투병 중인데 근무는 힘들지 않나.
“아파서 잠을 자지 못하고, 온몸이 아파 일선 근무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현재 CC(폐쇄회로)TV 관제센터 근무 중이다. 몸은 아프지만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다. 2023년 3월 인천광역시 재래시장인 현대시장 방화 사건으로 점포 50곳이 소실되는 큰불이 난 바 있다. 그때 CCTV 모니터링 중 대형 화재를 조기 발견해 화재 진압에 역할을 했다. 또한 강력팀과 현장 소통하면서 새벽 내내 추적해 방화범을 검거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상을 받기도 했다. 후방 근무하면서 국민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다 놓쳤다. 치료비도 없어 캐피털 대출까지 받았고, 이제는 그것도 한계에 부딪혔다. 그렇게 투병 중 힘든 몸으로 일하다 뇌출혈까지 발생했다. 병마와 싸우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계속 이런 상황을 알리는 건 내가 혜택받고자 하는 게 아니라 내 후배들은 이런 환경에서 근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요즘은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너무 몸이 아파서 더 이상 살아 나가기 힘들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약을 먹고 버텨보려 하는 건 변화 과정을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국회와 정부에서 응답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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