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조직생활 ‘썰’, 고소·고발 영상으로 수익…‘참교육’ 콘텐츠 형사법 체계서 잘못된 행태 지적도
조폭 출신 인물을 배우로 섭외하고 조폭 생활을 소재로 하는 웹드라마, 조폭을 저격하거나 참교육(‘정의 구현’과 비슷한 뜻의 은어)하는 콘텐츠도 등장했다. 해당 영상 콘텐츠들이 어린이·청소년에 유해하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이를 규제할 만한 마땅한 장치가 없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슈퍼챗으로 억대 수익도
큰 인기를 끄는 것은 물론 막대한 수입을 벌어들이는 조폭 유튜버도 등장했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 시청자가 일정 금액을 결제해 직접 후원하는 이른바 '슈퍼챗' 기능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유튜브 데이터를 분석하는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조폭 유튜버 중 2015년 1월 1일부터 2023년 10월 12일까지 가장 많은 슈퍼챗 수입을 기록한 유튜브 채널은 ‘명천가족TV’다. 수입액은 무려 5억 5000만 원이다. 전체 순위도 22위나 된다.
다음으로 전체 52위를 기록한 ‘창기TV’는 약 3억 4900만 원을 챙겼다. ‘박훈TV’는 약 1억 8400만 원을 기록했다. 다른 채널·방송 플랫폼이 있거나 후원 계좌 등 다른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실제 수입은 플레이보드에 기재된 것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명천가족TV’를 운영하는 김명천 씨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마약왕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1997·1999년 필로폰 3.6kg을 밀수하다가 발각돼 추징금 30억 원을 선고받았다. 조폭 출신 유튜버끼리 서로를 고소·고발하거나 비난하면서 충돌을 빚는 콘텐츠가 있다. 김명천 씨도 그런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다.
‘박훈TV’ 운영자 박훈 씨는 과거 인천 주안식구파 소속 조직폭력배였다. 박훈 씨는 화가로도 활동 중이다. 그는 자신의 폰트(글씨체)를 개발하기도 했다. 2022년까진 ‘조폭 썰’ 콘텐츠를 제작했다. 현재는 정치이슈 비판 영상 위주로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박훈 씨는 10월 19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조폭에 대해 언론이 정확하게 보도하지 않은 것은 물론 조폭 출신 인터넷 방송인 대다수도 미화한다”며 “조폭 현실을 제대로 전해주고 청소년들이 나 같은 인생을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방송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현재 조폭 관련 영상을 올리지 않는 까닭에 대해 “다른 조폭 유튜버들과 갈등이 있었으며, 시청자들이 조폭 콘텐츠를 원치 않아서”라고 답했다.
현직 조폭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인터넷 방송인도 있다. BJ(인터넷 방송인) 겸 유튜버 A 씨는 자신을 강원도 춘천의 한 폭력조직 현역으로 소개했다. A 씨는 폭행 혐의와 조직 간 흉기 패싸움 등으로 교도소에 복역한 바 있다고 한다. 과거엔 조폭 생활과 교도소 경험담을 올렸다. 현재는 이를 자제하고 개인 일상 위주 영상을 게시한다.
#전직 조폭 출신 웹드라마 출연
10월 2일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유튜버 ‘억달이형’(본명 김태우)은 수원 남문파 조직폭력배로 2년간 활동했다. 억달이형은 유튜브 채널 ‘허세스코’에서 인기를 끈 웹드라마 ‘슬기로운 숙소 생활’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억달이형은 유튜브 채널 ‘LH플렉스’의 웹드라마 ‘비열한 삼거리’ 등 다양한 작품에서 배우로 출연했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12만 구독자를 보유했다. ‘그들이 사는 세계’라는 드라마 시리즈를 제작하고 본인이 직접 배우로 참여하기도 했다.
‘허세스코’는 개그맨 김형인이 2019년 11월 만든 유튜브 채널이다. 이 채널에도 조폭 출신이 직접 출연해 그가 겪은 조직 생활과 교도소 경험담 등을 영상으로 제작해 올렸다. 조폭과 범죄를 소재로 한 각종 웹드라마를 제작하기도 했다.
#저격·참교육…통쾌하지만 보복당하기도
‘조폭 자경단’을 자처해 저격 및 참교육 콘텐츠를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인도 있다.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 유튜버 엄태웅 씨는 전직 조폭 출신과 스파링을 해 화제를 모았다. 엄 씨는 사설 도박장, 성매매 업소 등 불법 업소들을 와해하는 ‘범죄와의 전쟁’ 콘텐츠도 진행한다. 참교육 콘텐츠로 누리꾼 호응을 얻어내는 것은 물론 응원 메시지도 받고 있다.
엄 씨는 경기도 수원의 조직폭력배 남문파와 분쟁을 겪은 적도 있다. 남문파의 한 조직원이 택시 기사와 시비가 붙어 도로 한가운데에 자신의 차량을 주차했다. 이에 화난 엄 씨가 차를 빼달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시비가 붙어 첫 분쟁이 시작됐다. 그 뒤엔 안양역 앞 광장에서 남문파 조직원들이 엄태웅을 향해 기습 공격을 했다. 조직원들은 현장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에 체포됐다.
조폭들에게 심하게 폭행당해 입원한 유튜버도 있다. 9월 26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 안양시의 한 폭력조직 조직원들이 유튜버인 40대 남성 B 씨를 주먹과 발로 여러 차례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B 씨는 현재 입원해 치료 중이다. 해당 사건 피의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평소 조폭 신원을 공개하고 비판하는 방송을 하던 B 씨를 혼내주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B 씨는 실제로 남문파 조폭 신원을 공개하고 비판한 바 있다.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조폭 인터넷 콘텐츠
조폭 출신 BJ가 진행하는 인터넷 방송은 유튜브가 유행하기 이전부터 있었다. 부산에 거주하는 조폭 출신 BJ 겸 유튜버 C 씨는 2015년 이전부터 방송을 진행했다. 그는 방송 시작 이전엔 조폭 생활을 했다. 교도소에 잠깐 다녀온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조폭 생활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C 씨는 조직 경험담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현재 C 씨는 특수폭행, 특수협박, 영업방해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피해자와 합의도 실패해 교도소에 수감됐다. C 씨와 같은 조직 소속이었던 선·후배도 2010년대 중반에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폭 출신 유튜버 활동에 대한 비판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대우 춘천경찰서 형사과장은 과거 유튜브 채널 ‘범죄사냥꾼’을 통해 ‘조폭들 유튜브 진출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방송했다. 이 영상에서 그는 “죗값을 치렀다고 해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과거 나쁜 짓을 무용담 삼아 감성팔이·추억팔이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후원금을 받고 있다”며 “학생이나 청년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떤 걸 배울 수 있겠나. 또한 과거 조폭들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이 영상을 보면 뭘 느끼겠느냐”고 지적했다.
현재 서울 동대문경찰서 형사과장인 그는 일요신문에 “그들은(조폭들) 그들의 범죄 혐의를 감추려고 시청자들을 선동한다. 후원을 끌어내기 위해 어그로(관심 끌기)를 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말했다(관련기사 죗값으로 받는 후원금? 조폭 유튜버 슈퍼챗 수입 ‘억! 헉!’).
박훈 씨는 “2000년대 중반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가 유행했던 것을 기점으로 조폭 문화가 바뀌었다. 조폭들은 그 이전에 위계질서를 중요시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그보단 돈(수익)을 추구한다”며 “조폭 유튜버 대부분이 이런 습성을 아직도 갖고 있다. 조폭에 대해 왜곡되게 전하고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현역 조폭이 이례적으로 유튜버가 된 이유도 수익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현역 조폭 유튜버나 인터넷 방송인이 더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9~10월 전국 시도경찰청이 전수조사를 통해 파악한 조폭 유튜버는 총 12명이다. 조폭 유튜버 수는 2018년 0명, 2019년 3명에 그쳤다. 그러나 그 이후인 2020년과 2021년은 각 7명, 2022년 11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이 2023년 1~7월 동안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물은 총 5546개에 달한다. 영상물 내용은 범죄 무용담이나 조폭 문화 소개, 조폭 입문 방식, 관련자 인터뷰 등이 주를 이뤘다. 경찰은 올해 전국 조폭 담당 경찰관 300여 명을 투입해 영상물에 대한 전수조사를 펼쳤다. 경찰은 “전수조사 결과, 해당 영상들에서 직접적인 불법행위가 발견되지 않아 수사에 착수하거나 입건한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조폭 관련 콘텐츠에 대한 제재는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이에 미성년자들이 모방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박한나 씨(36)는 “(유튜브 등의) 알고리즘이 잘못 작동되면 유해한 동영상이 나올 수 있다. 그걸 본 자녀들이 악영향을 받을까 걱정된다”며 “조폭을 비롯한 유해 콘텐츠에 연령 제한 등 제재가 확실히 이뤄지면 좋겠다. 현재로선 자녀들이 어떤 동영상을 보는지 부모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조폭 관련 콘텐츠는 조폭을 선망의 대상으로 비추는 경향이 있기에 미성년자에게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조폭) 사례처럼 파생범죄가 양산될 수도 있다”며 “조폭 저격·참교육 콘텐츠와 같은 사적인 제재도 형사법 체계에선 잘못된 행태다. 모든 조폭 콘텐츠에 대한 확실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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