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나주에서 7세 여아를 납치해 성폭행한 범인 고 씨. 연합뉴스 |
지난 8월 30일 새벽 전남 나주 영산동의 한 상가 1층, 초등학교 1학년 A 양(7)이 가족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분식집을 개조해 만든 가정집은 거실과 안방, 주방으로 나뉘었다. A 양이 잠들어 있던 거실은 창문을 통해 외부에서도 쉽게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조였다. 또한 바깥과 거실을 연결하는 여닫이문은 평소처럼 잠그지 않은 상태라 외부인의 침입에도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부모와 4남매 등 총 6명이 안방과 거실에서 자고 있었기에 누구도 납치사건이 발생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A 양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어머니 B 씨(37)였으나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29일 오후 11시까지 드라마를 본 뒤 아이들이 잠든 사실을 확인한 B 씨는 집을 나섰다. 컴퓨터 게임을 하기 위해 인근 PC방을 찾은 것인데 집안에 A 양의 아버지가 있었기에 별다른 걱정을 하진 않았다고 한다.
2시간 정도 게임을 즐긴 B 씨가 집으로 돌아온 시각은 다음날 오전 2시 20분경. B 씨는 신고 직후 경찰조사에서 “집에 들어왔을 때 딸이 거실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서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오전 3시경 막내가 오줌을 싼 것 같아 눈을 떴는데 이때 딸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와 함께 안방에서 자고 있는 줄 알고 다시 잠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B 씨는 방 가장 안쪽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 납치당한 초등학생이 잠을 자던 거실. 연합뉴스 |
경찰은 16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 수색에 나섰다. 마침내 이날 오후 12시 55분경 나주 영산강 강변도로에서 A 양을 발견했다. 그곳은 A 양의 집에서 직선거리로 100m에 불과해 평소 같으면 한달음에 달려올 수 있는 위치였다.
하지만 A 양은 성폭행을 당한 충격과 공포, 부상으로 인해 범인이 자리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몇 걸음 못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렸다. 알몸상태로 비에 젖은 이불만이 A 양의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A 양의 몸에는 피의자 정액으로 추정되는 체액이 발견됐으며 인근에서 A 양이 입고 있던 원피스와 팬티도 함께 발견돼 끔찍했던 사건당시를 떠올리게 했다. 얼굴에 멍이 들고 대장 파열 및 주요부위가 5㎝가량 찢어진 A 양은 즉시 인근 병원으로 이송해 응급수술을 받고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병원으로 이송된 A 양은 경찰에게 “집에서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얼굴을 모르는 아저씨가 나를 이불째 안고 걷고 있었다. 너무 무서워서 ‘아저씨 살려주세요. 왜 그러세요’라고 애원했더니 그 사람이 ‘삼촌이니까 괜찮다. 같이 가자’며 끌고 가서 성폭행했다”고 진술했다.
A 양이 발견되면서 경찰 수사는 범인 검거에 집중됐다. 한때 30대 중국인 남성 C 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C 씨는 한국어가 서툴렀고 통역사까지 동원돼 조사를 벌였지만 단순 불법체류자였을 뿐 성폭행 사건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듯 보였던 수사는 곧바로 다른 용의자에 집중됐다. 바로 B 씨와 친분이 있었던 고 아무개 씨(24). 고 씨는 중학교를 중퇴한 뒤 순천을 기반으로 건설 일용직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태풍으로 인해 일거리가 없자 고 씨는 동생과 함께 A 양의 집과 200~300m 떨어진 친척집에 머무르며 생활했다.
사건 당일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던 고 씨는 자정이 넘어 동생과 함께 집을 나섰고 B 씨가 먼저 와 있던 인근 PC방에서 게임을 즐겼다. 평소 PC방에서 자주 마주쳐 B 씨와 친분이 있었던 고 씨는 “아이들은 잘 있느냐”며 안부를 건네기도 했다. 이후 게임을 즐기던 고 씨는 “매형과 한잔 더 해야겠다”며 오전 1시 15분께 자리를 떴다.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한 경찰은 A 양 이웃주민의 제보에 의해 고 씨가 A 양의 가정환경과 집안구조를 잘 안다는 점과 사건 발생 직후 잠적한 사실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잠복을 통해 고 씨를 추적하던 경찰은 31일 오후 1시 20분께 전남 풍덕동의 한 PC방에서 그를 붙잡았다. 고 씨는 경찰서로 이송되는 도중에 “술을 먹고 정신이 없었다. 술김에 그랬다”며 범행 일체를 시인했으나 여전히 동기에 대해선 구체적인 대답을 피하고 있다.
다만 경찰은 범행시점에 대해 고 씨와 B 씨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어 이를 집중적으로 수사할 계획이다. 경찰은 “B 씨가 한창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것을 본 뒤 고 씨 혼자 PC방을 빠져나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정확한 범행 시간에 대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만약 이 부분이 사실로 드러나면 사건발생 직후 B 씨가 경찰에 진술했던 범행 시간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 경찰은 B 씨의 진술을 토대로 30일 오전 2시 30분부터 3시 사이에 A 양이 납치됐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경찰은 “돌연 B 씨가 집으로 돌아왔을 당시 A 양을 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어떠한 이유로 진술을 번복한 것인지도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성범죄 전과가 없는 고 씨(절도 전과 1범)가 대범하게 집으로 들어가 A 양을 납치한 점, 아무리 잠이 들었다지만 아무도 고 씨의 침입 여부를 알지 못했다는 사실 등은 의문점으로 남아 경찰의 추가 조사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