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위 1호안 ‘대사면’부터 갈등, 김기현 험지 출마·불출마 뭉그적…안철수·홍준표 ‘딴 목소리’
#혁신위의 느린 스피드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는 첫 타석부터 기대에 못 미치는 타구를 날렸다. ‘당내 통합과 대화합을 위한’ 이준석 전 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김재원 전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조치 ‘대사면’ 카드는 여론에 감동 점수가 낮은 것은 물론, 당사자들조차 감사 인사가 아닌 맹비난의 화살만 쏘는 형국이 됐다.
이준석 전 대표는 징계 취소 의결이 이뤄진 11월 2일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별로 할 말이 없다”고 답하며 평가절하했다. 홍준표 시장도 최고위 의결 직후 자신의 SNS에 “오늘이 영원한 줄 알지만, 메뚜기 한철인 줄 모르고 하루살이는 내일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며 “하기야 시한부인 줄 모르고 사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이라고 적었다. 당 지도부를 직격한 것이다.
첫 타석이 좋지 않아 두 번째 타석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또다시 신통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 인요한 위원장의 첫 외부 일정은 10월 30일 국립 5·18 민주묘지 참배였다. 호남과 함께하겠다는 연대와 화합의 표시라는 취지는 인정받았지만, 과거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했던 행보 ‘베끼기’라는 지적을 받았다. 정치권의 모든 행위는 국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인데, 과거와 똑같은 반복형이어서 참신함이 떨어진다는 비판이다.
인 위원장의 잦은 말 바꾸기도 혁신위에 대한 매를 부르고 있다. 인 위원장은 10월 28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스타 의원들이 어려운 곳, 서울로 오는 게 상식 아닌가”라며 영남권 중진 의원들의 험지 출마를 요구했다. 그러나 당내 반발이 거세지자 10월 30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인 위원장은 “많은 오보가 나갔다”고 했고, 오신환 혁신위원도 이와 관련해 “인 위원장이 사견을 전제로 말한 것”이라고 말하며 발을 뺐다.
인 위원장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과연 국민의힘을 바꿀 혁신의 결기가 있는지 의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내년 4월 총선 공천을 앞두고 당내 의원들이 사생결단의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데, 이런 강력한 저항을 헤쳐 나갈 의지는 물론, 능력도 과연 갖고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당내 구성원들이 늘고 있는 것.
수평적이고 대등한 대통령실과 여당 관계에 대한 개선 작업도 혁신위가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라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인 위원장은 이에 대해서도 선을 그으면서 뒤로 물러서는 자세를 보였다. 그는 앞서 현충원 참배 직후 ‘수직적 당정 관계’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저는 온돌방 아랫목에서 큰 사람이다. 월권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대통령은 나라를 이끄시는 분이고 당대표도 당을 이끄시는 분인데 내가 관여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인 위원장의 던져놓고 논란이 되면 뒤로 빠지는 행태에 대해 당내 ‘친윤그룹’조차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유상범 의원은 10월 3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인 혁신위원장이 ‘영남 중진 수도권 출마론’을 암시했다가 부인하는 행태를 이어가는 데 대해 “‘특정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또는 ‘농담도 못 하냐’는 식으로 반복하면서 ‘히트 앤 런’을 한다”며 “벌써 두 번인가 세 번 번복했다. 조금만 더 반복되면 자칫 말씀의 무게가 너무 가벼워진다. 굉장히 조심스러워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자리 못 잡는 김기현 리더십
인 위원장의 혁신위가 흔들리는 것은 혁신위 뒤에서 여전히 권한을 발휘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김기현 대표와도 연결돼 있다. 보궐선거 참패 이후 김 대표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곧장 비대위 체제로 갔다면 분란의 소지가 적었지만, 김 대표는 자리를 지키고 당 지도부의 다른 구성원들만 일괄적으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김 대표 체제 존속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결국 이 연장선에서 울산 지역구 4선 김 대표가 ‘수도권 험지 출마’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최근 김 대표에게 ‘수도권 출마 결단을 내려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의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 출마 결심이 어렵다면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이라도 해야 한다는 한층 수위 높은 얘기도 나온다.
김 대표가 두 가지 중 하나의 결단을 내리더라도 시기적으로 지금은 너무 빠르기에 결정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당 대표의 전격적인 불출마 선언이나 험지 출마는 숨겨진 카드로 남겨놓고 표를 모으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에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병민 최고위원은 10월 3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총선까지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기에 마지막 순간에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게 될지는 김 대표의 고독한 결단”이라며 “그런데 이렇게 등 떠밀 듯하면 대표 권위도 서지 않고 감동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의 결단을 비장의 무기화하자는 의견도 없지는 않지만, 현재 당이 죽어가는데 지금 당장이 아닌 몇 달 뒤 수술 결정을 공포하자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눈을 흘기는 당내 구성원들도 적잖다. 혁신위가 띄워지면 국민이 생각하는 것보다 2~3배는 강한 카드가 쏟아져 나와야 하는데, 지금 여당의 상황은 국민의 기대치보다 오히려 더 낮은 수준의 치유 카드만 도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험지 출마나 불출마 카드를 만지작거리기만 하면서 결국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실제 2020년 초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서울 종로 출마 요구가 당내에서 나왔지만 머뭇거리다 2월에야 종로 출마를 선언, 먼저 치고 나온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선수를 뺏기고 말았고, 결국 선거에서 패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당내에서는 김 대표의 험지 출마·불출마 카드가 이미 거론된 이상 여론에 미치는 효용을 상실했고, ‘전격 퇴진’이라는 초강수를 둬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김 대표 당권주자 때 후원회장을 지낸 신평 변호사조차 김 대표 퇴진론을 들고 나왔다. 신 변호사는 10월 27일 본인의 SNS에서 김 대표에 대해 “그의 수많은 인간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당대표를 하기에는 그릇이 너무 작은 셈”이라며 “그가 버텨나가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은 11월 2일 총선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윤핵관’ 이철규 전 사무총장을 임명했는데, 이 인선 역시 김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용산 대통령실에 휘둘리는 ‘약체 리더십’을 지니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질타로 이어졌다.
#쇄도하는 당내 훈수정치
당 대표·혁신위원장 당내 투톱의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훈수 정치가 난무하고 있다. 혁신위 기조와 정반대로 가는 언행도 나오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준석 전 대표 제명운동을 펴온 안철수 의원이다.
안 의원은 10월 3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주도한 ‘이 전 대표 제명 징계 서명 운동’에 모두 4만여 명이 참여했다며 당의 제명 결정을 촉구했다. 이 전 대표 징계 서명운동을 위한 전용 홈페이지를 개설하기도 한 안 의원은 “이 전 대표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유세에서 내 ‘욕설’ 논란 관련 가짜뉴스를 유포한 데 이어 최근 나의 ‘건강 이상설’도 퍼트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고위가 11월 2일 이 전 대표에 대한 징계 취소 결정을 의결하자 안 의원은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 사건으로 징계 받아 당대표를 내놓은 이준석의 징계가 취소됐으면 당대표를 복원시켜 주는 것이냐”며 “혁신위의 오진”이라고 발끈했다.
이어 홍준표 대구시장은 김기현 지도부가 야심작으로 내놓은 ‘김포시 서울 편입’ 계획에 대해 제동을 걸고 있다. 홍 시장은 11월 1일 SNS를 통해 “이미 메가시티가 된 서울을 더욱 비대화시키고 수도권 집중 심화만 초래하는 서울 확대 정책이 맞느냐”며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는 “지방 시·도를 통합해 메가시티로 만드는 것은 지방화시대 국토균형 발전을 위해 바람직할지 모르나 (윤석열) 대통령께서도 지방화시대 국토균형발전을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삼고 연일 회의를 열고 있다”며 “뭐가 뭔지 어지럽다”고 지적했다. 명분도 없고 실현 가능성도 낮은 ‘졸속 정책’이라고 꼬집은 것.
용산의 그림자가 당에 어른거린다는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혁신위나 지도부 리더십이 빨리 제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실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확인됐듯 무너진 민심 복원을 위해서는 속도감 있는 행동이 중요한데 지금 국민의힘은 리더십 부재로 인해 사공 많은 배가 돼버려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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