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일 민주통합당 광주·전남 경선은 안철수 원장 측의 ‘대선 불출마 협박’ 기자회견으로 축제 분위기가 묻혀버렸다. 사진은 같은 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후보가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서 열린 비엔날레 개막식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
금 변호사의 기자회견이 있던 날은 문재인 후보가 호남의 ‘추인’으로 사실상 야권의 대선후보 자리에 등극하던 날이었다. 지지율도 안 원장을 추월하기 일보직전이었다. 하지만 기자회견 한방에 묻혀버렸다. 안 원장은 자신의 검증 문제를 사찰의 피해자 프레임으로 돌리며 자칫 변방으로 밀려날 수 있었던 존재감을 박근혜의 유일 대적자로 끌어 올렸다. 안철수 원장 측 협박 파문으로 점점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대권구도 급변 정국을 들여다봤다.금태섭 변호사의 ‘9·6 기자회견’은 2012 대선 정국에서 상당히 중요한 장면이 될 것이다. 먼저 안철수 원장 입장에서 왜 이 시점이 중요한지 따져보자. 금 변호사의 기자회견이 있기 바로 전날 발표된 리얼미터-중앙일보 정기 여론조사에서 안 원장의 지지율은 하락 추세에 있었다. 심각한 추락은 아니었지만 아파트 딱지 매매 의혹과 ‘대통령이 목표가 아니다’ 발언으로 지지율에 금이 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특히 ‘대통령이 목표가 아니다’ 발언은 ‘상황이 불리해지니까 불출마 변명거리를 찾고 있다’ ‘권력의지가 약한 데서 오는 기회주의적인 발언’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급기야 이 말은 안 원장의 오락가락 행보의 하이라이트로까지 평가되면서 테마주가 급락하는 등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반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지지율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기자회견이 있기 바로 전날 문 후보는 7연승을 달리며 사실상 야권의 대권주자 대관식을 앞두고 있었던 터라 지지율은 더 치솟고 있었다. 안 원장 측이 조바심을 낼 만한 민감한 시점이기도 했다.
바로 이때, 안 원장 측의 기자회견이 터져 나왔다. 안 원장이 기자회견을 직접 지시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6면 기사 참조). 금태섭-정준길 변호사 간 전화통화가 있고 이틀 후에 기자회견이 전격 이뤄진 점에서도 ‘전략적 고심’의 흔적이 묻어나온다. 안 원장 측은 불법사찰의 배후로 정부와 함께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를 지목하면서 대선 구도를 일거에 ‘박근혜 대 안철수’의 양자 대결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안 원장 측의 기자회견은 박근혜를 겨냥한 게 아니라 문재인의 추락을 노렸다’는 평가가 가능해진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안철수 원장의 지지율을 지난해부터 주간 단위로 면밀하게 관측해오고 있는 몇 안 되는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안 원장의 지지율을 항상 문재인이라는 ‘라이벌’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분석해오고 있다. 그는 이에 대해 “기자회견 전날 밤 10시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안 원장이 아파트 딱지 매매 의혹 여파로 확실히 지지율이 빠지고 있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내가 주목하는 것은 안철수-문재인 야권단일화 양자구도 지지율 조사인데 이날 조사에서 문 후보 지지율은 가파르게 오른 반면 안 원장은 더 많이 빠졌다. 그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안 원장에게는 대단히 치명적인 것이다. 두 사람의 양자 대결에서 문 후보가 앞서면 안 원장의 정치적 존재감은 없어지는 것 아니냐. 그래서 항상 안 원장은 문 후보를 의식하며 정치적 행보를 해왔다. 안 원장이 문 후보를 굉장히 예민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안 원장이 대담집을 예상보다 빨리 냈을 때도 안-문의 양자 지지율 격차가 좁혀질 때였다. 그리고 이번 기자회견도 마찬가지다. 문 후보가 사실상 민주당 후보로 확정될 국면이 조성되면서 지지율도 더 탄력을 받을 때였다. 이때 공교롭게도 안 원장 측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기자회견은 문 후보를 견제하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정치행위로 본다. 이런 공세적 대응은 상당부분 성공했다. 기자회견 다음날 문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했고 호남에서의 승리도 묻혀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안 원장 측의 기자회견은 기존 대선구도를 1.문재인-안철수의 야권 단일화 2.박근혜와의 본선 양자 대결 순서로 잡고 있다가 첫 번째 단일화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박근혜 후보와의 양자 대결 구도로 건너뛴 전환점이라고 할 만하다. 안 원장이 이렇게 서두르는 배경에는 문재인 후보가 전당대회 효과로 점차 지지율이 올라가는 상황과 무관치 않다. 안 원장이 문 후보의 지지율 견제에 실패할 경우 대권행보도 접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후보와의 1차 예선전을 사실상 결승으로 생각하고 예상보다 반 박자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안 원장은 앞으로도 계속 문 후보를 ‘죽이기’ 위한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향후 전당대회 효과가 또다시 나타나 문 후보의 지지율이 높아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안 원장은 출마선언 시기를 앞당기는 등 기민하게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에서는 안 원장 측의 전격 기자회견을 두고 “문재인을 잡기 위해 박근혜를 치는 안철수의 성동격서 전략”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지금까지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정치적 효과를 보고 있다. 안 원장 측은 기자회견을 통해 문 후보의 지지율을 낮추는 동시에 박근혜의 유일 대적자로 우뚝 서는 드라마틱한 전기를 마련했다. 또한 안 원장에 대한 검증공방이 사찰 피해자 프레임으로 옮아가면서 대선 출마의 사전 정지작업 효과를 보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동안 안 원장에 대한 ‘묻지마 검증’의 ‘광기’를 진정시키는 동시에, 국민들에게도 일부의 편향된 검증 시도에 대한 객관적 시각을 유지시켜 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1야당 민주당의 처지는 안쓰러울 정도로 급전직하하고 있다. 안 원장의 불법사찰 의혹에 대해 국정조사 추진으로 화답했지만 자칫 안철수만 띄워주고 자신들은 지붕만 쳐다 보는 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4-5면 기사 참조).
하지만 안 원장의 전격 기자회견 대응은 장기적으로 ‘자신의 칼을 자신이 무는’ 위험한 승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먼저 안 원장 측이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당을 자신들의 우군이 아닌 ‘복속’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전략을 노골화시킨 것이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우월한 지지율(어찌 보면 거품일 수도 있는)을 바탕으로, 민주당 후보를 힘으로 제압해서 대선 구도를 ‘박근혜-안철수’ 양자대결로 급격하게, 인위적으로 만들려다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당의 지원 없이 선거를 이길 수 없다는 점은 이미 박원순 서울시장이 안 원장에게 실무적으로 경험하고 충고한 사안이다. 민주당의 최대 잔칫날이나 다름없는 광주·전남 경선 당일에 금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연 것에 대해 전통적인 야당 지지자들이 상당히 불쾌해하고 자존심 상해했다는 반응을 안 원장 측이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너무 욕심 부려서 급하게 먹으려다 지금까지 먹은 것도 전부 토해내는 수가 있다”라며 싸늘하게 반응했다.
이번 ‘9·6 기자회견’ 공방은 일견 안 원장 측의 승리로 비쳐진다. 안 원장은 구태·공작정치의 피해자로 자신을 자리매김해 ‘박근혜 후보 때문에 할 수 없이 대선출마를 하게 되었다’(문재인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대선 판에 할 수 없이 나섰다는 논리처럼)는 대선 출마 명분도 축적한 셈이 됐다. 하지만 자신들이 던진 여자문제 등과 같은 말초적인 소재가 부메랑이 돼 꽂힐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2012 대선이 제2의 김대업 논쟁으로 끝날 것”이라는 일부의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9·6 기자회견’은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 사이 정책이나 인물 검증은, 여자보다 재미없는 소재라는 이유만으로 유권자의 시선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여자문제 공론화’로 부메랑
안철수 원장 측의 ‘9·6 기자회견’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그를 아마추어로만 얕잡아 보다가 크게 한방 먹은 모습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여자문제 쟁점화 유도’ 낚시에 안 원장 측이 낚였다는 상반된 주장도 나온다.이번 기자회견이 문재인 후보 견제와 박근혜 후보와의 양자대결 조성 등 ‘일타이피’의 효과를 거두었지만 안철수=여자문제가 대선의 공식 검증 소재가 됐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패착이라는 해석이 그것. 이는 주로 새누리당의 네거티브 전문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분석이다. 이런 주장의 기저에는 안 원장의 여자문제가 소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상당한 팩트가 담보돼 있다는 새누리당 관계자들의 확신 속에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안 원장의 여자문제와 관련한 구체적 숫자까지 나오는 등 향후 이 사안은 진실게임 공방으로 번지며 최대의 핫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새누리당의 한 네거티브 대응 전략가는 “금태섭 변호사가 당장 웃을지는 몰라도 내가 보기에 그는 안철수 원장의 약점을 전 국민에게 널리 알려준 최대의 X맨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 캠프에서 네거티브 전담마크맨으로 큰 활약을 했다. 그는 금태섭 변호사의 전격 기자회견에 두 가지 맹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그는 ‘네거티브 전에서 방어의 첫 번째 원칙은 자신에게 불리한 소재는 스스로 입에 올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는 이에 대해 “안 원장측은 여자라는 검증 소재의 금도를 자신들 스스로 깨버렸다. 왜 먼저 그들 입으로 안 원장의 약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여자문제를 꺼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것도 상대가 바라는 방식으로 가장 (기자회견으로) 극대화시켜 공론화시켜 버렸다. 여기서 정치공작이 있다면 안 원장에게 출마하지 말라고 협박하며 공작을 한 게 아니라 ‘너희들이 이 문제 가지고 떠들어줘라’는 공작에 걸려든 것이다. 앞으로 안 원장은 이 문제로 굉장히 큰 손해를 많이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관계자가 지적하는 또 다른 문제는 친구 간의 사담을 협박으로 몰아간 게 전략적 실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협박에 지위와 위치, 관계가 있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안 원장 측이 상식선에서 이해되어야 할 친구 간 사담을 정치공학적으로 해석해 협박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이 역시 무리수였다는 지적이다. 안철수 원장의 여자 문제는 향후 국정조사 실시 여부와 맞물려 추석 대선 정국의 최대 이슈로 부상할 전망이다. [성]
홍준표 사석폭로까지…‘안철수 여자’ 파장
지난해에 이미 의혹 ‘삐죽’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안철수 원장이 목동에 거주하는 음대 출신의 30대 여성과 최근까지 사귀고 있었다”라는 의혹 제기 대목이다. 안철수 원장의 ‘여자문제’는 대선 정국에서 어떤 사안들보다 폭발력이 크다.
이와 관련, 지난 7일 <오마이뉴스>에서도 “지난해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기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안철수의 여자 문제를 알고 있다. 요즘 워낙 SNS가 발달돼 있어 기사가 어떻게 나오든 그것 하나로 안철수는 죽는다’라고 말했다”라고 밝혔다. 특히 <오마이뉴스>는 “홍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 전에 (안철수 씨가 후보로 거론될 때) 누가 와서 (안철수의) 여자 이야기를 하는데, 그 여자의 인적 신원까지 정확하게 이야기했다’ (중략) (제보의 원 출처에 대해서도) ‘그 여자가 직접 들고 온 것 같다. 안철수는 출마 못 한다’고 단언했다”라고 전했다.
해당 기사가 나간 직후 홍준표 전 대표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와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했던 말이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당에 안철수 원장 관련 제보가 많이 들어왔고 이를 사석에서 주고받은 걸 기사화했다”며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홍 전 대표는 “그야말로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라 헛소문일 수도 있고 사실일 수도 있지 않느냐. 그런 걸 가지고 당에서 안철수 원장을 뒷조사했다는 식으로 보도하면 되겠느냐”며 전화를 끊었다.
금 변호사의 기자회견 직후 SNS 상에서는 새누리당에 대한 거센 비난의 목소리와 더불어 정확한 사실관계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향후 안 원장의 대응도 주목된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