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원장 측 금태섭 변호사가 6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후보 진영 정준길 공보위원이 뇌물과 여자 문제를 거론하며 안 원장 대선 불출마 협박을 했다고 주장했다. 최준필 기자 |
이처럼 양 측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폭로전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장외에 머물던 안 원장이 사실상 박 후보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배경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안 원장이 대권 출마 선언을 앞두고 자신을 향한 네거티브 공격을 차단하는 동시에 향후 야권 단일화까지를 염두에 둔 승부수를 던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권 정국을 술렁이게 하고 있는 안 원장의 메가톤급 폭로 이면에 감춰진 속살을 들춰봤다.
금태섭 변호사가 주장하고 있는 핵심 요지는 정준길 새누리당 공보위원이 전화를 걸어와 안 원장의 뇌물 공여와 여자 문제를 폭로하겠다며 불출마하라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금 변호사는 “안 원장이 1999년 안랩 투자를 받기 위해 산업은행 투자팀장 강 아무개 씨에게 주식을 줬으며, 또 목동에 거주하는 음대 출신의 30대 여성과 최근 사귀고 있다”는 내용을 정 위원이 거론했다고 밝혔다. 이어 금 변호사는 “(안 원장에 대한) 사정기관의 뒷조사가 이뤄지고, 또 (거기서 수집된) 정보들이 새누리당에 전달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강한 의문이 든다”며 불법 사찰 의혹도 제기했다.
금 변호사의 폭로에 박근혜 후보 측은 ‘발칵’ 뒤집혔다. 범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에게 ‘불출마’ 협박을 했다는 것이 ‘팩트’로 드러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박 후보 캠프는 금 변호사의 기자회견 전날(9월 5일) 이미 폭로 내용에 대해 대략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캠프 관계자는 “금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가질 것이란 보고가 있었다. 정준길 위원과의 통화가 문제가 됐다는 것까지 알았다”면서도 “지금까지 나온 의혹들을 해명하는 수준 정도로 생각했는데 협박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줄은 전혀 몰랐다. 지금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 정준길 공보위원이 6일 금태섭 변호사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몇 시간 뒤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은숙 기자 |
박 후보 측은 “개인 차원의 통화였지 상식적으로 협박은 말이 안 된다”며 정 위원과 선을 긋는 모습이다. 박 후보 캠프가 정 위원으로부터 진위를 보고받은 뒤 언론에 직접 해명하도록 지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박 후보 역시 “정 위원이 협박을 하고 말고 할, 그럴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캠프 일각에서는 “어찌됐건 통화를 한 건 사실 아니냐. 빌미를 줘서 안 됐다. 대검 중수부 출신인 정 위원을 공보파트에 배치한 것 자체가 실수”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사실 금 변호사의 폭로 직후 정치권에서는 “안 원장 측이 ‘오버’했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금 변호사와 정 위원 간의 관계를 잘 아는 한 검찰 고위 인사는 “정 위원이 미치지 않고서야 금 변호사를 협박했겠느냐. 또 둘은 그럴만한 사이도 아니다. 서로가 다른 캠프에 몸담고 있는 만큼 조심은 했어야 했겠지만 정 위원이 적정선을 넘진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 위원 역시 지인들에게 “(금)태섭이가 그럴 줄 몰랐다”며 정치권 입문 자체를 후회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가 안 원장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박 후보 측의 주장대로 금 변호사가 정 위원과의 대화 내용을 부풀렸다는 것이 입증될 경우 안 원장도 그 역풍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특히 그동안 여러 차례 새로운 정치 개혁을 외쳐왔던 안 원장이 정치권의 고질적인 병폐인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를 했다는 것을 국민들로선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치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금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강행한 것을 놓고 정치권에선 여러 가설이 나돌고 있다. 단지 정 위원의 발언을 문제 삼기 위해 금 변호사가 폭로한 것만은 아닐 것이란 얘기다. 박 캠프 관계자도 “차라리 둘 사이의 대화 녹취록이 있었으면 좋겠다. 금 변호사 정도 되는 법률가가 왜 녹음을 안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불법사찰이나 협박 등과 같은 얘기들은 입증도 힘들뿐더러 시간도 상당히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아마 안 원장 캠프의 또 다른 전략이 숨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폭로 과정에 안 원장의 의중이 얼마나 투영돼 있는지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요신문>이 접촉한 안 원장 측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금 변호사는 정 위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직후 그 내용을 안 원장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폭로는 염두에 두지 않았고, 정 위원이 말한 여자와 뇌물 문제 등에 대한 안 원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안 원장이 정 위원과의 통화에 강하게 화를 내며 해명 차원을 넘어선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면서 상황이 급반전하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안 원장의 한 측근은 “그 의혹들이 허무맹랑한 것이기도 했지만 안 원장은 박근혜 캠프 쪽으로부터 그런 얘기를 듣고 가만있는 것 자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서 방어하고 역공을 취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고, 결국 금 변호사의 기자회견이 잡힌 것”이라고 털어놨다.
어찌됐건 딱지(전세권) 매입, 포스코 사외이사 거수기, 부인 김미경 씨의 교수 임용, 룸살롱 출입 등 최근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오는 의혹들로 인해 바짝 움츠렸던 안 원장 진영도 활기를 띠고 있다. 안 원장이 공식 출마 선언을 앞두고 사전 정지작업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폭로를 기획했을 것이란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측근들에 따르면 안 원장은 민주통합당 경선을 전후해 출사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진위 여부를 떠나 지금까지는 기존의 상황을 이용했던 안 원장이 이제는 스스로 판 자체를 만들어간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안 원장이 진화하고 있는 셈”이라고 진단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