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박계 권력구도가 영입파와 기존 실세들의 절묘한 조합으로 재편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대통령 만들기’ 프로세스는 파르테논 신전 세우기와 흡사하다고 보면 된다. 단단한 기초를 만든 뒤 몇 개의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는, 어찌 보면 간단한 원리다. 지난 8월 20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확정되자 박 후보는 기둥 세우기, 일종의 축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그 축의 핵심 중 핵심으로 평가받고 있는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이 발탁되기까지의 배경을 박 후보 캠프 한 관계자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박 후보를 두고 그 주변에 사람이 참 많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속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 도와주겠다는 사람, 이런저런 내용을 조언해주는 사람, 보고서까지 써서 전달해달라는 사람까지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하지만 대부분 게이트 키핑 되거나 취사선택당하면서 제외된다. 박 후보와 직접 접촉해 박근혜 의중에 무게를 실을 수 있는 사람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그는 혼잣말로 손가락을 세어 보았다. ‘열 손가락에 누가 있냐’고 물으니 “알만한 분들도 있고, 모를 분들도 계시고…”라며 얼버무렸다.
“안대희 씨는 그 중 몇 사람이 동시에 이야기한 케이스다. 박 후보 캠프 실무진들이 어느 정도 의사를 타진했는데 그의 반응이 ‘절대 안 한다’는 아니었다. 그래서 박 후보가 직접 나서 접촉했다. 처음부터 삼고초려한 것은 아니고…. 야권에서도 안대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단 ‘안대희 영입은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안 위원장의 검찰 후배인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이 영입된 것(정치쇄신위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그 역시 안 위원장과 함께 대선자금 사건을 수사했다. 중수1과장이었다. 별명은 ‘남 검객’. 한 정치권 인사는 “안 위원장이나 남 위원이 앞으로 공식적으로 영입하거나 비공식적인 루트로 쓸 율사 출신들은 박 후보를 공식·비공식적으로 도울 ‘박근혜의 법사’들이 될 것”이라며 “이른바 신 친박이자 차기 섀도캐비닛(예비내각) 멤버로 눈여겨봐야 할 사람들이 대거 생길 것이란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많이 나온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안 전 대법관이 ‘정치검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이나, 대법관까지 지낸 인물이 차기 법무부 장관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앞선 이야기까지 정치권에서는 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둥을 축으로 표현하면 박 후보는 명실상부 ‘수직적 분할 통치’ 내지는 ‘직할통치’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그가 있고 그 아래에 축이 횡렬로 놓인 꼴이다. 그 중간에 다른 사람은 없다. 각 사안마다 직접 보고받고 지시한다. 좌장을 두지 않는 통치 스타일은 주지의 사실이다. 필요한 일이 생기면 적합한 사람을 찾고 직접 보고받는 박 후보는 대선 준비기구도 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자칭 타칭 ‘경제통’이자 스스로 ‘박근혜 경제과외교사’라는 이 원내대표로서는 느닷없이 등장한 ‘경제민주화 브랜드’ 김 위원장이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다. 라이트윙이 두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일종의 ‘파워게임’으로 보며 주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박 후보보다는 박 후보의 부친인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깊다. 인연의 세월로 보면 현재 박 후보 곁에 있는 그 누구보다 오래됐다고 한다. 1970년대 당시 서강대 교수였던 김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 시절 외곽의 경제 브레인으로 경제분야를 보좌했고, 노태우 정권 때 청와대 경제수석, 청와대 경제특보, 교수로 구성된 금융회라는 청와대 비공개 위원회에 속해 있었다. 나이차는 많지 않지만 박 후보와의 세월로 보면 이 원내대표는 까마득한 후배다.
새로운 기둥의 등장, 즉 박 후보를 둘러싼 권력지형의 변화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인물은 김병호 공보단장이다. 원래 공보단은 대선기획단 산하에 설치될 것으로 알려졌는데 별도의 독립기구로 만들어졌고 그 수장에 김 단장을 앉혔다. 김병호는 어떤 인물일까.
그는 1961년 육사 21기로 입교해 3학년 때 중퇴,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기인 1968년부터 1980년까지 부산 국제신문에서 일했고 1981년 KBS에 입사, 정치부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등을 지냈다. 2007년 12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지만 2007년 경선 때 박 후보 캠프에서 미디어홍보본부장을 맡은 바 있다. 하지만 그는 박 후보가 이명박 당시 경선 후보에게 패한 뒤에도 박 후보를 물밑에서, 또는 정치권 울타리 밖에서 계속 도왔다. 박 후보가 이번에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로 등록할 때 그가 대리인으로 대신했을 정도다.
최근 친박계 인사들과 점심을 함께 하며 들은 이야기다.
“10·26이 일어나고 청와대에서 나온 뒤 박 후보가 시내에 한 호텔에 갔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때 박 대통령 시절에 요직에 있던 한 사람과 같이 타게 됐다. 박 후보가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그 사람이 고개조차 돌리지 않더란다. 그때 박 후보가 일종의 ‘배신감’과 ‘권력무상’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런데 김병호 단장은 그런 사람과 다르다는 것이다. 박 후보가 김 단장을 ‘무한신뢰’하는 것도 어려울 때 자신을 챙겨준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공보단장 아래에는 현역 의원이 4명(김태흠, 박대출, 서용교, 홍지만)이나 있다. 박 후보가 “공보단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라”고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것을 보면 김 단장이 박 후보로부터 어떤 크기의 신임을 얻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며칠 전 김 단장과 식사를 했다는 한 정치부 중진 기자는 이에 대해 “김 단장이 공보단을 맡을 깜냥이 될까 하는 시각으로 바라봤는데 그가 이렇게 말하더라. ‘안철수 측에서 박 후보 측이 불출마를 종용했다고 폭로했는데 그렇다고 박 후보가 안철수 원장 검증에 즉각 나서라고 하겠나. 아직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링 위에도 오르지 않은 사람에게 칼을 드리울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 이 말을 들으니까 ‘이게 바로 박근혜의 본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박 후보 곁에 있는 많은 정치인들은 어떤 현안이 생기면 ‘박 후보의 심중은 이럴 것이다’ 또는 ‘이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선 안 된다’ 등등 자신의 생각이나 입장, 견해를 덧붙이기 마련인데 김 단장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박심’보다 뒤에 있거나 앞서 있는 것이 아닌 동일선상에 있다는 느낌이었다”라고 덧붙였다.
박 후보는 소위 친박계 전·현직 의원에게 ‘부채의식’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정치판에 등장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당을 위기에서 구출해내면서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쟁취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누구의 도움을 청하거나 받지 않고 홀로 정치인으로서 중량감을 높였다. 친박계는 그 뒤 생성된 계파이지 그를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어준 구원자들이 아닌 것이다. 한 인사는 “박 후보는 친박계 국회의원들을 손끝만큼도 생각 안 한다. 오히려 권력에 기생하는 들쥐로까지 생각할 수도 있다”며 “그래서 할 말은 하고, 자를 사람은 자르고 부릴 사람은 마음껏 부릴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를 떠받치고 있는 ‘신전 기둥’은 또 새로 생길 것이다. 박혀 있던 기둥들이 노쇠하거나, 부실하거나, 질량과 밀도가 떨어지면 바꿔 낄 스페어가 발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 후보 스스로도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중요한 일과 중 하나”라고 밝히고 있지 않았던가. 이른바 신주류의 탄생은 구주류의 퇴장과 함께 권력의 성쇠를 불러오고 있다.
선우완 언론인
▲ 최경환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이 박근혜 후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 비서실장은 박 후보를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실세 중의 실세로 알려지고 있다. 연합뉴스 |
‘만사환통’…실세 중의 실세
박근혜 후보는 좀처럼 현역의원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경환 대선 후보 비서실장만은 다르게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일각에서는 2007년 한나라당 박 후보 경선 캠프에서 종합상황실장을, 지난 경선 캠프에서는 총괄본부장을 맡은 최 의원이 이번에 비서실장에 발탁되면서 “역할이 줄어들었다”고 해석하지만 실무 캠프 내에서는 오히려 최 의원의 입지가 더 커졌다고 입을 모은다. 정책, 메시지, 홍보, 조직 파트까지 최 의원을 통하지 않고는 박 후보에게 전달될 수 없는 구조가 됐다는 이야기다. 박 후보가 최 의원을 가장 옆에 둔 이유는 무엇일까.
“솔직히 지금으로선 최 의원이 실세 중의 실세가 맞다.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시기와 질투가 많아도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 일한 우리로서는 최 의원은 ‘좋은 형님’이다. 누가 가서 화를 내거나 목소리를 높여도 묵묵히 경청해주는 편인데 솔직히 의원 중에는 그런 사람이 잘 없다. 실무진이 ‘최경환 라인’으로 짜여져 있다고 하는데 최경환 라인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같이 일하다보니 최 의원과 일하는 것이 좋다고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보는 게 더 사실에 가깝다.”
정치권에서는 박 후보의 실무 캠프에서 최고의사결정기구는 박 후보의 ‘보좌진 넷’이라고 한다.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 이춘상 씨가 그들인데 일명 ‘실무 소회의’는 이들이 이끈다. 그들 밑에 몇 명 내지는 십수 명씩 실무진이 있다. 그야말로 의원급 보좌진이지만 최 의원이 신뢰하고 그들도 최 의원을 믿고 있다고 하니 최 의원이 실세 중의 실세가 되는 것이다.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