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 ‘알바 여대생’이 만취한 상태로 가게 선배와 소개팅남 등에 끌려 들어간 수원 인계동 모텔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사건이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유가족은 약물 사용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국과수 공식 발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일요신문>은 사건 현장 취재와 담당 경찰을 만나 사인과 관련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추적해봤다.
수원시 장안구에 거주 중인 여대생 A 씨(21). 그는 지난 7월 12일경, 수원 인근의 한 호프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밤늦도록 쟁반에 담긴 무거운 음식과 술병을 날라야 하는 고된 일이었다. 부모님은 한밤 중 고된 일을 해야 하는 딸을 생각해 아르바이트를 극구 말렸지만 그는 고집을 부렸다. A 씨는 집안 사정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평소 관심이 있었던 미용학원 수강료를 제 손으로 벌고 싶었다.
일은 힘들었지만 친한 사람도 생겼다. 주방에서 일하던 가게 선배 고 아무개 씨(27)는 A 씨를 살뜰히 챙겨줬다. 고 씨는 친절하게도 한창 연애에 관심 많을 나이인 A 씨에게 소개팅까지 제안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 씨가 ‘짐승의 탈’을 썼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 8월 28일 새벽에 있었던 소개팅 자리는 ‘한여름 밤 악몽’의 시작이었다. 그날은 A 씨의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고 씨는 평소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후배 신 아무개 씨(23)를 A 씨에게 소개시켜줬다. 두 살 터울인 A 씨와 신 씨는 말이 잘 통했다.
세 사람이 동석한 술자리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셋은 소주 6병에 맥주도 이미 많이 마신 상태였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A 씨는 과음 탓인지 아니면 뭔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점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고 씨와 신 씨는 그 순간 악마로 돌변했다. 술 마신 장소에서 멀지 않은 모텔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A 씨를 강제로 끌고 간 것. 당시 모텔 CCTV에 찍힌 시간은 범죄 취약 시간대인 새벽 4시 35분이었다. 기자의 현장 확인 결과 모텔은 수원 유명 유흥가인 인계동 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오래전부터 사건이 빈번히 일어났던 성범죄 취약 지역이었다.
고 씨와 신 씨는 번갈아가며 A 씨를 무참히 성폭행했다. 신 씨가 범행을 저지르고 있는 동안 고 씨는 자리를 비켜줬고 다음으로 고 씨가 일을 치렀다. 새벽 7시경 고 씨는 모텔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렇게 끔찍한 일을 당한 A 씨는 싸늘한 모텔 방에 홀로 뉘어진 채 하루 동안 방치됐다.
고 씨는 그날 아침부터 홀로 모텔 방에 두고 온 A 씨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뭔가 꺼림칙한 마음이 엄습했다. 고 씨는 부랴부랴 사건 발생 장소인 모텔로 찾아갔다. A 씨는 여전히 모텔 방에 있었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무리 깨워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고 씨는 급한 마음에 119구급대를 불러 A 씨를 병원에 후송했다. 하지만 A 씨는 이미 뇌사 상태였고 인공호흡기를 이용해 겨우 생명을 부지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5일이 흘렀다. 지난 9월 4일 A 씨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경찰은 지난 9월 3일, 피의자 고 씨와 신 씨를 검거했다. 그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준강간’ 혐의였다. A 씨가 반 의식불명 상태였지만 서로 동의하에 술자리를 가진 후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피의자들은 지금까지 강제 성폭행 혐의와 계획적 사전 공모 사실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동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진술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다. A 씨의 사망이 미궁 속으로 빠진 것이다. 그가 사망한 병원에서는 그의 사인을 두고 ‘사인불명’ 판정을 내렸다. 시신에는 사인과 관련한 아무런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던 것.
기자와 통화한 한 내과 전문의는 “특이체질이 아닌 이상 그 정도 주량 때문에 사망에 이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군다나 그들이 주문한 소주 6병과 맥주 2000cc 중 A 씨가 술자리에서 마신 주량은 소주 한 병에 폭탄주 한 잔 정도였다. 물론 A 씨가 45kg의 연약한 체구였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일반적인 치사량은 아니었던 것이다.
시신부검을 의뢰받은 국과수는 현재 공식 발표를 앞두고 있다. 몇몇 언론들은 사건 직후 “국과수 1차 부검결과 아직까지 명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보도한 바 있다. 기자와 만난 수원남부서 남우철 형사과장은 “언론에 의해 ‘1차 부검’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부검의의 외과적 소견과 관련해 우리 경찰에 구두로 몇 가지 사실을 전달했을 뿐이다.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기 위해서는 국과수의 최종 결과가 나와야한다. 그 전까지는 뭐라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A 씨의 명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유가족 등 일각에서는 A 씨의 사인을 두고 ‘타인에 의한 약물중독’ 가능성을 조심스레 제기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그 정도의 주량 때문에 사망에 이르렀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찰 역시 이에 대한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남 형사과장은 “약물중독 및 독극물중독과 관련해 아직까지 표면적 반응이 나오진 않았지만 가능성을 아예 덮지는 않고 있다. 만약 그럴 경우 약물의 종류에 따라 피의자들은 현재의 ‘준강간’에서 ‘강간죄’로 혐의가 가중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피의자들이 사망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강간을 목적으로 일부 약물을 사용했다고 가정한다면 약물 부작용으로 A 씨를 사망에 이르게 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 예로 시중에서 불법적인 통로로 유통되고 있는 GHB(일명 물뽕-본지 976호 기사 참조)의 경우 많은 남성들이 성폭행 등에 사용하고 있다. 여성이 GHB를 복용할 경우, 정신이 혼미한 상태가 수시간 동안 지속되며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는 등 A 씨의 당시 증세와 유사하다. 전문가에 따르면 GHB를 잘못 복용할 경우, 심장마비사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용사를 꿈꿨던 한 여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 세간의 눈은 국과수 정밀부검결과에 쏠리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