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가 나간 후 CJ는 기사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최근 기각됐다. <더 스쿠프> 측은 얼마 전 후속보도를 통해 CJ 측의 부적절한 행위를 폭로, 후폭풍도 예고되고 있다. CJ가 자사에 불리한 보도를 막기 위해 <더 스쿠프> 측에 금전적으로 회유를 하는가 하면, 심지어 다른 기업의 일인 것처럼 해줄 것을 요구했다는 주장이다.
<더 스쿠프>는 지난 8월 9일 ‘CJ 폭행 미스터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조직폭력배를 사주해 고교 동창인 이성기 씨를 여러 차례 폭행한 의혹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이성기 씨는 CJ 이재현 회장과 경복고등학교 동문이다. 이 씨는 <더 스쿠프>와의 인터뷰에서 “이재현 회장이 지난 1998년경 자신의 친부인 이맹희 회장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돌자 그 출처가 나인 것으로 오해하고 조직폭력배를 사주해 폭행했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이재현 회장에게 전화를 걸면 혀를 잘라 버리고 불구로 만들겠다’는 협박을 당했다”고도 주장했다. 이 씨는 집단폭행을 당하는 과정에서 “이재현 회장님 잘못했습니다”라는 내용의 각서를 강제적으로 써야만 했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1998년 말부터 2000년 초까지 6차례에 걸쳐 집단폭행을 당했고 이와 관련된 경찰출동 및 병원 기록을 증거로 갖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2003년에는 이 씨를 집단폭행했던 이들 중 한 명이 폭행혐의로 300만 원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만약 이 회장이 폭행을 사주한 게 사실이라면 이 씨가 삼성가 불미스러운 소문의 근원지라는 확신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일까. 이 씨는 5일 <일요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재현이와도 그렇고 집안끼리도 절친했다. 1989년 춘천에 위치한 고 이병철 회장의 별장 근처 ㅅ 리조트에서 사장으로 일할 당시 삼성가 별장 직원들이 우리 리조트로 자주 찾아와 식사도 하는 등 서로 한 식구처럼 지냈다. 이런 정황 때문에 일가의 흉흉한 소문을 알고 있을 외부인으로 내가 지목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이재현 회장이 조폭에게 폭행을 지시한 적 없다”며 무혐의 처리했다. 결국 이 씨에 대한 폭행을 사주한 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13년 동안 밝혀지지 않았다.
당초 CJ 측은 재판부에 낸 성명에서 “이재현 회장과 이성기 씨가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라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이는 비영리언론매체 ‘팩트올’(factoll) 8월 10일자 보도에 의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팩트올’은 이재현 회장과 이성기 씨의 친분을 입증하는 비디오 영상을 단독으로 입수했고 이날 일부를 온라인에 공개했다. <더 스쿠프>는 CJ 측이 낸 가처분 소송을 반박하기 위해 ‘팩트올’ 측에 협조를 구해 재판부에 이 비디오 영상의 캡쳐 자료를 제출했다.
6일 ‘팩트올’ 관계자를 만나 <더 스쿠프>를 비롯해 여타 언론매체에서 확인하지 못한 문제의 이 비디오 영상을 직접 시청했다. 1987년 촬영된 것으로 확인된 이 비디오 영상에는 이재현 회장과 이성기 씨가 친분있는 사이였음을 나타내는 장면이 들어있었다.
이성기 씨가 서울마포 구 서교동 ‘규수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때 이 회장이 직접 찾아와 축하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영상에서 이 씨는 이 회장에게 “재현이 왔구나”하며 친근하게 이름을 부른다. 이에 이 회장이 이 씨와 가볍게 악수하고 껴안는 모습이 이어진다. 이 회장은 이 씨의 부모님에게도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고교 동창인 두 사람이 졸업 후에도 꾸준히 교류를 해왔다는 이 씨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자료인 셈이다.
이 비디오는 CJ 측이 낸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 스쿠프>의 보도가 나간 뒤 CJ는 <더 스쿠프>를 상대로 출판물 배포 등 금지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8월 29일 서울중앙지법 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이 기사는 일정 부분 사실에 부합하는 정황을 토대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제보자와 그 밖의 관련자들 진술을 인용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의혹보도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더 스쿠프>는 9월 6일 “가처분 신청 과정에서 CJ 측이 불리한 보도를 막기 위해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후속 기사를 내보냈다.
또한 8월 7일 1차 보도가 나간 후 CJ 측은 8월 10일 CJ 출판물배포금지등 가처분 신청을 했으나 신청 직후 CJ 측 한 관계자가 경인방송 본사로 찾아가 “방송만큼은 막아 달라”고 애원했다는 후문이다.
앞으로 민형사 관련 CJ 측이 추가적인 소송을 제기할 것인지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선 회의적인 입장이다. 이미 가처분 소송에서 사실상 패소한 정황이 2차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편 <더 스쿠프>의 주장에 대해 CJ 홍보실 고위관계자는 “금전적 회유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 관계자는 “1차보도가 인쇄된 당일 자사 대표가 <더 스쿠프>에 찾아간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광고’의 ‘광’자도 꺼내지 않았다. 우리 홍보팀 역시 홍보실로서 할 수 있는 활동 범위 내에서 형식적인 어필만 했을 뿐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대기업도 공적 존재’ 판단 재판부 결정 의미 있어
사실 유무를 떠나 오너에 대한 불미스러운 의혹이 기사화됐다는 점만으로도 CJ한테는 대형 악재였다. 그래서일까. CJ의 대응은 신속하고도 강경했다. “더 스쿠프의 ‘CJ 폭행 미스터리’ 기사는 이재현 회장에 대한 허위사실로 CJ의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더 스쿠프와 경인방송 홈페이지에 게시된 기사를 삭제하고, SNS에 게재하거나 라디오ㆍ인터넷방송매체를 이용해 관련 내용을 방송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또한 CJ는 “더 스쿠프와 경인방송 홈페이지에 기사를 게재하거나 카카오톡ㆍ페이스북ㆍ트위터 등 SNS에 게재 또는 업로드하면 1일당 5000만 원, 출판물이나 라디오ㆍ인터넷방송매체에 관련 내용을 게재 또는 방송하면 1회당 5000만 원을 지급할 것”도 가처분신청 내용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지난 8월 29일 재판부는 <더 스쿠프>의 손을 들어줬다. 다음은 <더 스쿠프> 이남석 사장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 재벌기업을 상대로 기사를 준비하면서 부담이 컸을 것 같다.
▲ 그렇다. 이 사건은 무려 수십 개 언론이 달라붙었다. 생긴 지 한 달 반 밖에 안 된 신생 매체가 이 사건을 기사화하기까지 차마 말 못한 애로사항과 엄청난 심적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팩트와 확신, 진실 알리기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다.
- 기사화를 결심한 이유가 뭔가.
▲ 언론 본연의 기능을 찾고자 했다. 그간 수많은 기자들이 이성기 씨에게 접근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기사화되지 못했다. 기업의 광고나 협찬 등을 고려해야 하는 언론사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 기사를 준비하면서 CJ 측으로부터 압력이 있었다고 들었다.
▲ 다 그런 것 아니겠나. 회유와 설득이 심했다. 해당 호수의 거의 전량을 회수해간 것도 기업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기사가 나간 후에도 CJ의 가처분 신청으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 CJ의 가처분신청이 기각됐는데.
▲ 기사를 빼달라는 대기업의 요청에 응하지 않고 팩트와 정확한 자료에 근거해 작성된 기사를 존중한 상징적인 결정이라고 본다. 기사작성과 재판부의 판단은 노블레스오블리주 차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CJ는 기사와 관련 ‘공공의 목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재판부는 “CJ는 공공기관은 아니지만 사회ㆍ경제적 영향력으로 볼 때 공적존재에 해당한다. 기사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공적 관심사안에 속한다”라고 결정했다. 이번 사법부의 판단은 13년째 풀리지 않고 있는 ‘CJ 폭행 미스터리’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기사가 나간 후 이성기 씨의 반응이 있었나.
▲ 고맙다는 말부터 하더라. 자신이 CJ와 힘겨운 싸움을 하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니며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기사가 나간 후 CJ한테서 연락이 왔다고 하더라.
- 사건 관련해 아직 밝혀져야 할 부분이 많다고 들었다. 후속보도도 준비 중인가.
▲ 밝혀질 내용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구체적 내용은 함구하겠다. 추후 상황을 봐서 결정할 생각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