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권의 한 원외 관계자는 “여권 내부에서조차 ‘고인물’이라고 불리는 일부 중진과 윤핵관으로 분류되는 핵심 인사들에 대해 희생과 헌신을 강조한 용산발 시그널일 가능성이 제기된다”면서 “인 위원장이 요구한 2호 혁신안이 윤심인 것인지, 아니면 인 위원장의 독자 행동인지를 두고 눈치싸움이 치열한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도 “윤핵관이라 불리는 중진들은 다음 총선에서 ‘4번 타자’ 역할을 기대했을텐데, 인요한 혁신위가 ‘희생번트’ 사인을 냈다”면서 “이 사인이 혁신위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실에서 나온 사인인지 여부에 따라 윤핵관들이 밟는 스텝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일단 영남 중진 및 윤핵관들은 ‘버티기’에 돌입하는 양상이다. “내가 어떻게 이곳을 떠나느냐”는 메시지를 지지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장제원 의원은 여원산악회 창립 15주년 기념행사에서 ‘살아도 사상에서 살고, 죽어도 사상에서 죽는다’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장 의원 지역구는 부산 사상이다. 여원산악회는 장 의원이 자랑하는 외곽 후원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11월 13일 장 의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여원산악회 창립 15주년 기념행사에 관광버스 92대가 동원돼 4200명이 운집했다고 알렸다. 친윤 중진 용퇴론을 세 과시로 맞받아치며 지역구 사수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에 앞서 TK(대구·경북) 중진급 간판으로 꼽히는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갑)도 험지 출마론에 대한 거부 입장을 명확히 했다. 11월 8일 대구 수성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의정보고회에 등장해 “걱정하지 마라”면서 “서울로 가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주 의원은 “대구에서 정치를 시작했으면, 대구에서 마치는 것”이라면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40년째 미국 상원의원을 했는데 지역구를 옮겼느냐,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지역구를 옮겼느냐”고 반문했다.

인요한 혁신위원장도 물러서지 않으며 강대강 전략으로 맞섰다. 인 위원장은 11월 15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그분들(친윤계)도 그렇고, 지도부도 굉장히 고민이 많은 것 같다”면서 “설득하고 같이 옳은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은 맞다”고 했다. 친윤 중진 용퇴론을 띄우기에 앞서 대통령실과 교감이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인 위원장은 “소신껏 맡은 임무를 끝까지, 당과 우리가 필요한 것을 거침없이 하라는 신호가 왔다”고 했다. ‘윤심’이 있었다는 취지다.
2호 혁신안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한 현역 의원은 일찌감치 서울 출마를 선언했던 3선 하태경 의원(부산 해운대갑)이다. 하 의원은 인 위원장이 내놓은 2호 혁신안을 ‘대통령의 혁신 의지’라고 했다. 11월 14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하 의원은 “당내 다수 중론은 (친윤 중진 용퇴론이) 대통령 주문”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대한민국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감독 출신으로 제21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 수행실장을 지내며 윤 대통령을 밀착 수행했다. 최근 당 안팎에서 ‘신윤핵관’으로 거론되는 인물 중 하나다. 하 의원은 이 의원을 ‘원내 대통령 소통채널’로 지목했다. 인요한 혁신위 혁신안과 대통령실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연결고리로 이 의원을 꼽은 셈이다.
혁신위 뒤에 윤 대통령이 있다면, 그 노림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총선 전략을 넘어, 여권 지형을 새롭게 짜려는 구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친윤 의원은 사석에서 “윤 대통령은 박근혜 탄핵 때 여당의 행태를 목격했다. 대선 기간, 그 후에 이준석과 갈등을 겪으면서 곤욕을 치렀다.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른다’는 불신이 여의도를 바라보는 윤 대통령 시선에 깔려 있다”면서 “당을 전면 재편해서 친정체제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정가 시선은 인 위원장 향후 거취에도 모아진다. 인 위원장은 혁신위원장 발탁 후 꾸준히 서대문갑 출마설에 연결돼 왔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 지역구로, 인 위원장이 교수로 근무 중인 세브란스 병원이 소재한 곳이다. 인 위원장 수행실장이 ‘우상호 라이벌’로 유명한 이성헌 서대문구청장 아들인 것도 지역 정가에선 묘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자신의 출마가 논란이 되자 인 위원장은 서대문갑 불출마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권 고위 인사는 통화에서 “인 위원장이 자신은 서대문갑에 출마하고 다른 친윤, 중진 의원들을 험지로 몬다면 당내 비판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인 위원장이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대통령실이 ‘윤핵관 프레임’을 타파하기 위한 청소부로 인 위원장을 등용한 것이란 의견도 많다”고 말했다.

이런 당내 기류에 긴장하고 있는 ‘총선 출마군’은 또 있다. 국무위원을 비롯한 대통령실 참모 출신과 검찰 출신 친윤 인사들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실 참모와 검사 출신 친윤 인사들이 향후 공천 국면에서 ‘친윤’으로 분류돼 험지로 출마해야 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12월을 기점으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원외 출마군 입장에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흐름”이라고 바라봤다. 윤핵관을 빼낸 자리에 또 친윤을 공천하기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전 대표는 “인 위원장이 최근 중진들과 윤핵관을 압박하는 모양새 이유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앞에 카펫을 깔려는 것”이라면서 “1~2주 시한 내에 김기현 대표가 쫓겨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이 인 위원장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했거나 혁신안이 본인 의중인 것을 강조하려 했다면 인 위원장을 만났을 것”이라고 했다. 인 위원장 뒤에 윤심이 있는지 여부는 아직 결론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정치는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보여줘야 하는 것”이라면서 “사실 대통령이 인 위원장을 만나도 큰 문제는 없는데, ‘소신껏 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만 두고 대통령 의중이 실려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