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사형수 59명 “늘 두려움 속에 살아”…재개 가능성 낮지만 윤 정부 행보 예측 어려워
약 25년의 공백기를 깨고 사형집행이 재개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 8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형집행 시설 점검을 지시했다. 관련 시설을 갖춘 교정기관은 서울구치소, 부산구치소, 대구교도소, 대전교도소 등 4곳이다. 당시 법무부는 “우리나라는 사형제가 존속되고 있어 시설 점검은 통상 임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9월에는 사형수 유영철과 정형구가 대구교도소에서 서울구치소로 이감됐다. 정형구는 1999년 1월 강원도 삼척에서 신혼부부를 엽총으로 살해한 인물이다. 유영철은 21명을 연쇄살인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이 이송된 서울구치소에는 강호순과 정두영 등 연쇄 살인을 저지른 사형수들이 수용돼 있다.
#“사형 여부, 빨리 결정해 줬으면…”
법무부 장관은 사형집행명령을 내릴 수 있다. 장관 허락이 떨어지면 5일 안에 사형이 집행된다. 이때 피고인은 재심 청구 등을 통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형 집행이 확정되면 수용소 소장이 사형수의 인적 사항과 관련 서류들을 검토한다. 교도소장은 집행에 필요한 포승, 관, 수의 등의 물품을 준비한다. 사형 당일 허가를 받은 의사와 종교인이 입장한다. 형법 제66조에 따라 사형은 교수형으로 집행된다. 사형집행일은 예고되지 않는다.
사형 당일 사형집행 담당교도관은 사형대 앞에 선 사형수의 발을 묶는다. 죄수번호, 이름, 주소, 죄목 등이 차례로 불린다. 이후 종교의식과 유언절차가 진행된다. 이 절차가 끝나면 교도관은 죄수의 머리에 흰색 용수를 씌운다. 올가미를 목의 동맥에 닿도록 걸어둔다. 그리고 사형수를 교수대에 세운다. 집행단추를 누른다. 사형수의 몸이 사형대 아래로 떨어진다. 교도소장이 직접 사망 여부를 확인한다. 형집행법 시행령 제111조에 따라 5분 뒤 올가미를 푼다. 친족이 있다면 그들에게 시신을 인도한다. 무연고 시신은 화장 후 매장한다.
이날이 오기 전까지 사형수들은 지극히 단조로운 생활을 이어 나간다. 사형수들은 일찍 일어난다. 눈을 뜨면 보통 오전 5시, 이르면 4시다. 그들은 이 시간을 아침 식사 전까지 일과를 준비하는 데 쓴다. 아침 기도를 하는 이도 있다. 사형수 A 씨는 “여기 오래 살다 보면 귀가 많이 예민해진다. 작은 발소리에도 깬다”며 “(교도소) 직원들이 5시 반에 야간근무자하고 교대하다 보니 (사형수들) 대부분 그 소리에 깬다”고 했다.
오후에는 운동을 한다. 운동이 끝나면 보통 1시 30분이다. 샤워하고 나오면 2시가 된다. 이때부터 TV가 나온다. 3시까지 드라마를 본다. 3시부터 4시까지는 성경을 읽는다. 4시부터 4시 30분까지는 커피물이나 식수를 받고 빨랫감을 처리한다. 4시 40분에는 개인점검을 받는다. 5시에 다시 방으로 돌아온다. 방에 돌아오면 TV를 켠다. TV 프로그램이 재미없으면 책을 편다. 그리고 잠을 잔다.
노역은 바깥세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사형수들은 ‘사형확정자’로 분류된다. 사형확정자는 사형 선고를 받아 그 형이 확정돼 교정시설에 수용된 사람을 말한다. 원래는 미결수처럼 노역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2008년 노역에 나가는 것이 허용됐다. 이들은 쇼핑백 접기 등 단순한 노동을 한다. 월 10만~20만 원의 돈을 받는다.
사형에 대한 공포가 엄습할 때가 있다. 한국은 실질적 사형폐지국이지만, 사형제는 유지하고 있다. 사형집행을 찬성하는 여론도 높다. 흉악범죄가 터질 때마다 사형집행이 재개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이러한 보도를 접할 때마다 사형수들은 사형집행이 재개될까 봐 걱정한다.
사형수 B 씨는 “아침에 눈을 뜨면 ‘아, 이게 사는 게 아닌데…’ (이러한) 하루를 반복해야 하는가. 빨리 (사형집행 여부를) 결정해 줬으면”이라며 “아니면 나 스스로 결정을 해야 하는가. 이 생각이 들다가도 다 잊는다. 문득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지 이러면서”라고 말했다. 사형수들은 독서나 운동 같은 소일거리로 사형집행에 대한 공포를 잊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2019년 12월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사형확정자의 생활 실태와 특성’에 기록된 사형수들의 증언을 재구성한 내용이다. 박형민 선임연구위원과 김대근 연구위원은 10개월 동안 사형수 33명을 심층 인터뷰해 이 보고서를 작성했다. 김대근 연구위원은 일요신문 통화에서 “(사형집행 재개 가능성에 대해 사형수들이) 굉장히 두려워하고 있다”며 “(사형수들은) 늘 두려움 속에서 삶의 계획을 세우지 못한 채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사형집행 재개 가능성은 낮아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사형집행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드러낸 바 있다. 2021년 9월 윤 대통령은 홍준표 대구시장과 사형제도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당시 두 사람은 국민의힘 대선주자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 의원 신분이던 홍 시장은 페이스북에 한 남성이 20개월 아이를 성폭행하고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사건을 언급하며 “제가 대통령 되면 반드시 이런 놈은 사형시킬 것”이라 했다.
이에 대해 경선 후보자 신분이던 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형사처벌과 관련한 사법 집행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좀 두테르테식”이라고 맞받았다.
한동훈 장관의 법무부는 2022년 12월 15일 유엔총회에서 ‘사형제 모라토리엄’ 결의안에 찬성했다. 문재인 정부 이후 두 번째다. 이날 총 184개국이 표결에 참여했다. 독일, 프랑스, 한국 등 125개국이 찬성했다. 미국, 북한, 일본 등 37개국은 반대표를 던졌다. 타이, 모로코 등 22개국은 기권했다.
사형집행 모라토리엄 결의안은 △사형제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 △사형집행 점진적 제한 △사형이 부과되는 범죄 수 축소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사형제 폐지를 목표로 한다. 유엔은 2년에 한 번씩 사형집행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데, 한국 정부는 줄곧 기권하다 2020년 처음으로 찬성표를 던졌다.
국제적인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점도 사형집행의 걸림돌이다. 이미 외교적 마찰이 벌어진 전례가 있다. 2007년 EU와 FTA 체결을 준비하던 인도는 사형집행을 중단하라는 유럽연합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2013년 이후 협상이 중단됐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21년에야 협상이 재개됐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사형집행을 실제로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며 “한국은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인데 그것과 관련해서 얻는 것이 분명히 있다. 이런 것을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이어 김 평론가는 “한동훈 장관은 스트롱맨 이미지는 아니다. 나름대로 인권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유화적인 메시지를 내고 있다”며 “엘리트 이미지를 포기하고 전형적인 스트롱맨으로 가는 길은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사형집행 찬성 여론이 높아지면서 이번 정부 임기 내에 사형을 집행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보좌관은 “이번 정부는 예측 불허다.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사형집행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형사정책 전문가도 “다른 정부였다면 사형집행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정부는 예측 불허의 행보를 보일 수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11월 20일 성명을 통해 “당정은 이 사안에 대해 일체 논의한 바 없다”며 선을 그었다. 다만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은 사형집행을 주장했다. 줄곧 사형집행이 필요하다고 밝힌 조경태 의원(부산시 사하구을)은 페이스북에 “극악무도한 흉악범은 하루빨리 사형집행을 실시해야 하며,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11월 24일 법무부는 사형제 재개 여부를 묻는 말에 대해 “지난 25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지만, 어떤 정부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며 “제도가 있는 한 여러 고려할 상황이 있다”고 답했다. 이어 법무부는 “다만 사형집행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란, 사형의 형사정책적 기능, 국민 여론, 국제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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