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이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생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
“조희팔!” 지난 8월 초 중국 청도의 한 구멍가게 앞. 한때 조희팔 씨 측근으로 불렸던 유 아무개 씨는 조 씨와 인상이 흡사한 중년 남성을 발견하고는 이름을 불렀다. 순간 유 씨와 눈이 마주 쳤던 그 남성은 갑자기 가게 옆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유 씨는 즉시 뒤따라갔지만 조 씨로 추정되는 남성은 이미 인파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유 씨는 조 씨의 다단계 사업이 한창이던 2005년부터 2007년 초까지 함께 일했던 직원이었지만 투자를 했다가 사기를 당한 이후 피해자 중 한 명으로 조 씨를 쫓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8월말경 국내로 다시 돌아온 유 씨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내가 조 씨 밑에서 2년을 일했다. 조금 살이 붙고 머리 스타일이 바뀌긴 했지만 조 씨 얼굴이 분명하다.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근방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씨는 “경찰의 조 씨 사망 발표를 믿을 수 없었다. 조 씨라면 죽음도 사기를 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라면서 “조 씨가 올 여름 청도 부근에서 목격됐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가 며칠을 돌아다닌 끝에 발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씨 말이 사실이라면 조 씨 죽음은 위장인 셈이다. 또한 조 씨가 죽었다고 발표한 경찰 역시 비난을 면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유 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조 씨가 중국으로 밀항한 2008년 12월 이후 자체적으로 정보를 수집해 조 씨를 추적해 왔다.
유 씨 등은 경찰이 밝힌 조 씨의 공식 사망 날짜(2011년 12월 19일) 이전부터 조 씨가 중국 현지에서 죽은 것처럼 꾸미기 위해 전문 브로커들과 접촉하고 있다는 첩보를 확보했다고 한다.
유 씨는 “중국에서는 멀쩡한 사람의 사망진단서 끊는 게 일도 아니라고 하더라. 조 씨를 찾기 위해 나름대로 수소문을 하는 과정에서 조 씨가 그러한 일을 해주는 브로커들과 만났다는 것을 들었다. 그 브로커를 직접 만나 조 씨 사진을 보여줬더니 대뜸 알아봤다”고 전했다. 유 씨는 “원래 이런 일은 수사 기관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오죽 답답했으면 우리가 사비를 털어서 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피해자들이 이렇게 발품 팔아서 알아내는 동안 경찰은 뭐했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 조 씨의 사망을 증명하는 화장증과 사망의학증명서로 위조됐을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KBS뉴스 캡처 |
검찰 내부에서도 지난 5월 21일 경찰이 발표한 조 씨의 사망을 믿지 않는 기류가 강했다고 한다. 통상 피의자가 사망하면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리지만 조 씨의 경우 ‘기소중지’를 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검 중수부 고위 인사는 “장례식 동영상과 사망 진단서만으로는 조 씨가 죽었다고 단정하기 힘들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었다. 또 신분 세탁이나 위장이 용이한 중국에서 조 씨가 죽었다는 점도 고려됐다”면서 “경찰 발표 직후 중국 공안에 협조를 요청했다”고 털어놨다. 검찰은 7월 말~ 8월 초 사이 조 씨의 생사 여부 등에 대한 질의를 담은 공문을 중국 측에 정식으로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경찰이 확실하지도 않은 조 씨의 사망 소식을 서둘러 발표한 배경을 놓고서 “조 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척을 보이자 조바심을 낸 나머지 설익은 결과를 발표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경찰 발표 며칠 전 인터폴과의 공조 수사를 통해 조 씨의 핵심 공범 두 명을 국내로 송환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오랫동안 조 씨를 추적해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해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경찰로서는 다급했을 것이란 얘기다. 상당수 검찰 관계자들은 “일반인들이 봐도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 많았는데 왜 경찰이 그렇게 성급히 발표했는지 모르겠다.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조 씨가 2008년 12월 중국으로 달아나 유유자적하게 생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분명 경찰의 비호가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란 의혹을 감추지 않았다. 이미 조 씨의 밀항을 도운 혐의로 일선 경찰관이 직위 해제됐을 뿐 아니라 고위급 경찰 인사도 조 씨와의 친분관계 등으로 인해 파면된 바 있다. 얼마 전엔 조 씨의 인터폴 수배 신청을 직접 했던 경찰관이 지난 2009년 5월 수배 중이던 조 씨로부터 골프 접대를 받은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해당 경찰관은 조 씨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정황도 포착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사정당국 주변에선 조 씨가 체포될 경우 초대형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사실 올해 초부터 현 정권 실세 몇몇이 조 씨의 도피 행각을 도와주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검찰의 조 씨 수사가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에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