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보험에 가입할 때 약관을 다 읽어보지 않는다. 상품을 보지도 않고 구매하는 셈이다. 보험사가 판매를 위해 장점만 내세운 안내장이나 판촉자료, 보험설계사의 말만 듣고 구매하게 된다. 불리한 내용은 일부러 크게 알릴 리가 없다. 그래서 보험약관은 ‘지구상에서 최고로 많이 팔리는 책이지만, 가장 읽히지 않는 책’이라는 말이 있다.
지난 2009년 9월 이전 보험사들이 판매한 실손의료보험의 보상한도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의료실비를 1억 원까지 보장해준다고 했다가 5000만 원으로 줄였다는 민원이다. 무려 67만 명이 여기에 해당된다. 3년 전 보험사들은 ‘지금이 100% 보장받을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며, ‘절판 마케팅’을 전개했다. 이때도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약관을 읽어보지도 않고 가입했다.
이 상품의 보상한도가 줄어든 것은 당시 금융당국이 실제로 1억 원의 의료비를 탈 확률이 희박한 점과 다른 보험과 중복으로 가입하고 있는 소비자가 많고, 쓸데없이 보험료가 낭비된다는 문제가 있다며, 규정을 2009년 9월 말에 개정해서 한도를 낮췄기 때문이다.
해당 보험 약관과 안내장에는 ‘계약을 갱신할 때 보상내용과 가입금액이 바뀔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다. 보험사들은 이를 근거로 3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갱신시 상품은 보장한도를 1억 원이 아닌 5000만 원으로 상품을 변경한 것이다. 물론 보험료에도 당연히 보상한도가 축소된 내용이 반영되었다.
의료비 1억 원 보장은 거의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허황된 보장’이다. 즉, ‘벼락을 맞아 사망할 경우 100억 원을 지급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러한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보험료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다. 1억 원 보상이나 5000만 원 보상이나 보험료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보장 축소 논란은 ‘축소’ 자체보다는 오히려 ‘허황된 보장’이 더 큰 문제다.
어쨌거나 ‘보장 축소’도 약관이나 안내자료에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가입 당시 작은 글씨의 내용들을 일일이 확인한다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불가능 했을 것이다. 판매자 입장에서도 설명을 해야 하나 불리한 내용으로 판매를 위해 설명하지 않고 계약을 체결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해도 소비자가 보상받을 수는 없다.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데다 약관 등에 명시되어 있어 법원에 간다 해도 이기기 어렵다.
보험은 가정에서 주택, 자동차 다음으로 고가의 상품이다. 자동차를 구매 할 때는 유지비, 연비, 디자인, 편리성 등등을 따져보고, 인터넷을 뒤져 사용 후기를 읽거나 사용하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고 심사숙고해서 고심 끝에 사지만, 이에 버금가는 가격의 보험은 물건을 보지도 않고 구매한다. 약관을 읽어보지도 않고 계약한다는 것이다.
본인에게 필요한 건지, 최소한 보험보장 내용은 무엇인지는 약관을 찾아 읽어 봐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보험사 잘못만 탓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소비자들의 구매 행태부터 바뀌어야 한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상임대표 www.kfco.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