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관 후 연락두절” 투자자 250명, 갤러리 대표 고소…미술품 투자금 부동산 개발업체에 가져다 쓴 정황도
미술과 재테크를 결합한 아트테크(Art-tech) 운용사를 표방한 J 갤러리는 미술품 투자자에게 투자 원금 1% 이상을 매달 저작권료로 지급하겠다고 홍보했다. 투자자에게 받은 돈으로 미술품을 매입한 뒤 전시회 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겠다고 했다.
J 갤러리는 투자 원금을 3년 동안 보장한다는 점도 적극 홍보했다. 투자자가 구매한 미술품 가치가 하락하더라도 J 갤러리에서 투자 원금으로 재매입하겠다는 보증서를 발급했다. J 갤러리는 지난 10월 블로그를 통해 "은행권의 안정성과 주식 투자로 얻을 수 있는 높은 수익성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재테크"라며 "원금 손실 및 저작권료 누락 0%를 자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J 갤러리는 지난 7월부터 투자자가 요청해도 투자 원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부터는 저작권료 지급마저 중단했다. J 갤러리는 투자자에게 돈을 주지 않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도 않았다. 데이터베이스 오류, 행정안전부 민원서비스 오류 등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었다가 오히려 투자자들 원성을 샀다.
J 갤러리는 투자 원금 및 저작권료 지급 일정을 11월 20일, 11월 22일, 11월 이내 등으로 차일피일 미뤘다. 12월 6일 공지에선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금주 안에 확정 기한을 말씀드리겠다"며 날짜조차 특정하지 않았다.
결국 투자자들은 J 갤러리 대표 정 아무개 씨를 사기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투자자들은 여러 법무법인을 통해 집단소송에 나서고 있다. 12월 8일 현재까지 집단소송 참여자는 250명 이상, 소송 금액은 약 150억 원이다. 집단소송 참여를 원하는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어 소송 규모는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투자자들은 J 갤러리가 돈만 받아가고 미술품을 실제로 매입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한 투자자는 일요신문과 전화통화에서 "투자자들이 모여서 확인해보니까 그림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경기도 하남에 수장고가 있다고 해서 가봤더니 포장된 그림이 있기는 있었다. 그런데 고가라는 그림이 너무 형편없이 처박혀 있었다"고 말했다.
J 갤러리는 유튜브 영상에서 QR코드를 통해 투자자의 미술품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정보를 제공한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에 따르면 QR코드가 작동하지 않은 지 2년이 넘었다.
J 갤러리가 작가들로부터 미술품을 매입하지 않고 대여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J 갤러리 홈페이지에 전속작가로 소개된 A 씨는 일요신문에 "J 갤러리에 작품 판매를 한 적은 없다"며 "J 갤러리와 작년(2022년)에 계약이 만료됐다"고 밝혔다.
투자자 20여 명 집단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기성 김진만 변호사는 "J 갤러리가 그림을 제대로 산 적은 있는지, 그림으로 수익을 발생시킬 사업 아이템은 있었는지 불확실하다"며 "J 갤러리에 수익이 발생할 수 있는 사업 구조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폰지 사기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J 갤러리 자산 규모와 매출액 등은 베일에 가려 있다. J 갤러리는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는 법인이지만 감사에 응하지 않았다. J 갤러리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은 2022년 4월 J 갤러리 감사보고서를 공시하면서 감사 의견을 거절했다. 회계법인은 "회사(J 갤러리)는 본 감사인에게 재무상태표, 손익계산서, 자본변동표, 현금흐름표 등 중요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감사 절차를 취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J 갤러리는 지난 7월부터 서울 강남구 청담동 5층짜리 건물 갤러리 월세와 전기세를 못 내는 등 경영난을 겪고 있다. 투자자에게 돈을 주지 못하기 시작한 시점과 비슷하다.
급기야 지난 8월엔 건물주가 J 갤러리를 상대로 건물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건물주는 밀린 월세를 받아내고자 J 갤러리가 보유한 채권 가압류도 법원에 신청했다. 그런데도 J 갤러리는 투자자에게 경영난을 알리지 않은 채 "내부 사정으로 휴관한다"고만 했다. 지난 10월 신규 투자자에게도 경영난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11월 23일 찾은 J 갤러리 앞엔 투자자 2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굳게 닫힌 출입문엔 법원 등에서 보낸 등기우편 도착 안내서 여러 장이 붙어 있었다. 바닥엔 우편물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한 투자자는 "마음이 답답해서 일단 찾아왔다. 저작권료가 안 들어와서 담당자에게 연락했더니 계속 받지 않았다. 심지어 내 연락처를 차단했다. 몇 달 전 계약할 때만 해도 10년 이상을 바라보며 사업을 하고 있다더니…"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J 갤러리는 투자금을 미술품 구매가 아닌 다른 용도로 썼다는 의심을 받는다. J 갤러리 대표 정 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J 건설은 2021년 2월 74억 2000만 원에 전남 목포에 있는 건물을 매입했다. J 건설이 자본금 5억 원으로 2020년 11월 설립된 뒤 석 달 만이었다.
J 갤러리는 정 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부동산 개발업체 H 사에 2021년 90억 원, 2022년 16억 원을 빌려주기도 했다. H 사가 J 갤러리에 갚지 않은 돈은 2022년 말 기준 51억 원이다. H 사는 J 갤러리로부터 돈을 빌리기 전인 2018년부터 부채가 자산보다 많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
H 사는 전남 나주에 지하 3층, 지상 12층 규모로 2022년 6월 완공된 오피스텔 신축공사 시행사였다. 그런데 해당 오피스텔은 흥행에 참패했다. 2020년 2월 청약에서 총 506실 공급에 단 3건이 접수되는 데 그쳤다.
H 사 경영 상황은 J 갤러리로부터 돈을 빌린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았다. H 사는 2022년 말 기준 부채가 자산보다 373억 원 많다. 2022년 순손실 규모는 134억 원에 달했다. H 사 감사보고서엔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에 중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킬 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함을 의미한다"고 적혀 있다.
정 씨는 J 갤러리 투자자 모집을 본격화한 2019년 이후 J 갤러리와 무관한 여러 법인을 만들기도 했다. 일요신문이 확인한 법인 5곳 자본금 총액은 15억 1000만 원에 이른다. 정 씨는 2020년 11월 J 건설(자본금 5억 원), 2020년 11월 J 엔터테인먼트(자본금 3억 원), 2021년 4월 블록체인 기반 개발 및 공급업체 I 유한회사(자본금 3억 1000만 원), 2021년 7월 J 산업개발(자본금 2억 원), 2023년 7월 부동산 개발업체 J 주식회사(자본금 2억 원)를 연이어 설립했다.
정 씨는 횡령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적이 있다. 정 씨는 J 갤러리를 운영하기 전인 2018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횡령 혐의로 벌금 3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정 씨는 부동산 개발사업 동업자로부터 받은 1억 원 중 2123만 원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동업자와 무관한 정 씨의 다른 공사 현장에 공사대금으로 썼을 뿐 아니라 생활비와 주택 매매 계약금 등으로 사용했다.
일요신문은 정 씨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정 씨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정 씨는 "투자자 돈으로 미술품을 산 건 맞느냐"는 문자메시지는 읽은 것으로 표시됐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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