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거주비 3000만 원 ‘성공 이미지’ 심어 투자 권유…“두 사람만 모아도 본전” 상상초월 강의료 받아
시그니엘에 거주하는 A 씨의 말이다. 최근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 씨 재혼 상대였던 전청조 씨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전 씨는 남 씨에게 부를 과시해 신뢰를 형성했다고 알려졌다. 전 씨는 벤틀리 보유와 함께 시그니엘 거주 사실을 강조했다.
서울 잠실에 위치한 롯데월드 타워 시그니엘 레지던스 아파트(시그니엘)는 2017년 준공된 최고급 주거시설이다. 이곳은 국내 최고층인 123층 건물의 42~71층에 223세대가 거주하도록 설계됐다. 그런데 최근 시그니엘이 '사기꾼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시그니엘 거주민들은 이곳에 사기꾼이나 투자를 받길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로 최고급 이미지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시그니엘에 살며 사기로 문제가 된 건 비단 전청조 하나만이 아니다. 2020년 6월 시그니엘에서 체온을 재고 마스크 착용을 확인하려고 한 경비원에게 입주민이 갑질을 해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이때 갑질을 해 논란이 된 여성 김 아무개 씨에게도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바 있다.
이처럼 알려진 사기 사건 외에도 '시그니엘'을 강조했던 크고 작은 사기 사건이 터지고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를 보면 시그니엘을 태그 걸고, 그곳에 살고 있음을 강조하는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국내 최고급 레지던스에 산다는 것으로 믿음을 준 뒤 대개 강의를 하거나 투자를 권유한다.
이처럼 시그니엘에 거주하는 것만으로 ‘성공 이미지’를 주는 건 일반 직장인은 한 달 살기도 버거운 월세와 관리비 때문이다. 시그니엘 월세는 전용면적 약 206㎡ 기준 약 2500만 원에 달한다. 여기에 관리비도 250만~500만 원 정도 나오기 때문에 한 달에 3000만 원가량을 내야 거주할 수 있다.
시그니엘 레지던스는 같은 건물에 위치한 시그니엘 호텔과 동일한 호텔식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다만 이 서비스 비용이 엄청난 것으로 유명하다. 입주민은 전화나 메신저를 통해 음식도 주문해 먹을 수 있는데 갈비탕이 5만 5000원, 삶은 계란 2개가 1만 8000원인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 씨가 시그니엘을 내세운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인다. 10월 28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전 씨는 지난 7월 15일 자신이 살던 롯데 시그니엘에서 자기 계발을 주제로 특별 유료 강연을 열었다고 한다. 전 씨가 강의했다고 알려진 곳은 시그니엘 42층이다. 시그니엘에 거주하는 B 씨는 “전 씨가 강의했다고 알려진 42층에는 시그니엘 입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파티룸이나 미팅룸 등이 있다. 이곳에서 강연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B 씨는 “전 씨가 굳이 시그니엘에서 강의를 개최한 건 결국 시그니엘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우러러보기 때문 아니겠나”라면서 “본질 없는 사람들이 신뢰를 얻는 방법이다”라고 지적했다.
이곳에 사기꾼이나 강의 구매자, 투자자가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결국 그만큼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A 씨는 “유튜버는 시그니엘에 거주하는 것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강의를 하는 사람들은 시그니엘을 앞에 내세우며 ‘당신도 이곳에 살 수 있다’고 홍보한다”면서 “강의료를 보니 상상을 초월한다. 한 명당 1000만 원, 1500만 원짜리 강의도 있다. 이거 두 개만 팔면 월세가 나오는데 충분히 남는 장사 아니겠나”고 설명했다.
사기꾼을 여럿 만나본 변호사 C 씨는 “사기꾼은 기본적으로 보이는 게 중요하다. ‘당신 돈을 떼어먹지 않아도 난 부자’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면서 “과거에는 그래서 사기꾼들이 타워팰리스를 선택하기도 했다. 실제 가격이 제일 비쌌던 건 아니지만 가장 고급 이미지였기 때문에 타워팰리스를 선택했는데, 이제는 시그니엘로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고급 거주 시설에 미국 거주지처럼 배경 확인(백그라운드 체크)을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미국에 거주했던 D 씨는 “미국은 거주지 입주하기 전 백그라운드 점검을 받아야 한다. 리스 회사 등에서 관리하는 건물이라면 이를 전문적으로 해주는 회사가 껴 있는 경우가 있다”면서 “최소한 전청조 씨처럼 사기 전력이나 신용불량 상태 등을 걸러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배경 확인이 의무화되면 월세를 내는 게 지금보다 어려워질 수 있어 반발이 있을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시그니엘 거주민들은 ‘이런 제도도 없는 마당에 고급 주거지에 산다는 것만으로 믿을 필요가 전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앞서 B 씨는 “집안에서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이나 고층 뷰를 찍어서 SNS에 올릴 때도 있지만, 굳이 널리 알리지 않는다. 돈이 있다는 걸 자랑해서 얻을 게 없기 때문”이라면서 “분양받은 사람보다 월세로 사는 사람이 더욱 드러내길 좋아하는 것 같다. 시그니엘 사는 사람 대부분은 지금 눈에 띄는 사람과 달리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시그니엘에 거주하는 실제 입주민 생활은 어떨까. B 씨는 모든 생활이 하나의 건물에서 해결된다는 점을 꼽았다. B 씨는 “집에서 내려가면 롯데월드타워에 있는 극장부터 롯데마트, 각종 편의 시설을 즐길 수 있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시그니엘 입주민만 갈 수 있는 스시집, 바 등도 있다. 여기에 주변 지인을 초대하면 반응이 매우 좋다”고 말했다.
반면 불편한 점이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A 씨는 “보안이 거의 완벽하다는 것, 주차 공간이 넉넉하다는 것 등이 장점”이라며 “그보다 큰 단점이 많다. 엘리베이터를 3번 타야 집에 갈 수 있다는 게 매우 귀찮다. 더군다나 입구 담당 직원이 퇴근한 밤 10시 이후엔 배달 음식을 시켜도 내가 3번 갈아타고 내려가서 다시 그렇게 집으로 와야 한다”고 말했다.
초고층이기 때문에 창문을 열 수가 없어 환기가 어렵다는 것도 단점이다. 자동 환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창문을 열 수 없어 그 자체로 답답함을 유발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바닥 난방이 되지 않고, 히터 방식이라는 점도 불만 대상이다. B 씨는 “개인적으로는 만족하지만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시그니엘이 가격도 가격이지만 이런 점 때문에 초기 분양에 애를 먹었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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