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서 문 정부 3총리 연대설 “이해관계 달라 쉽지 않아”…‘병립형’ 회귀 땐 창당 난망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쏠리기 시작한 것은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발언을 쏟아내면서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1월 18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제까지 국민이 봐왔던 민주당과 다르고, 국민 일반이 가진 상식과 거리가 있다”며 “(이재명 대표 리더십에서 발생한 문제) 영향이 크다고 봐야 한다. 본인의 사법 문제가 민주당을 옥죄고 그 여파로 당 내부의 도덕적 감수성이 퇴화했다. 당내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억압되고 정책이나 비전을 위한 노력이 빛을 잃게 됐다. 사법적 문제가 다른 것을 가리는 현상이 장기화하고 있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고 있다. 굉장히 심각하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11월 30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서는 “현재 민주당은 면역체계가 무너져 회복능력을 상실한 상태”라고 혹평했다. 이어 ‘당내 의원들이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 대표가 당장 일주일에 몇 번씩, 며칠씩 법원에 가는데 이 일을 어떻게 할까, 이런 상태로 총선을 치를 수 있을까 하는 (말을) 당연히 함직한데 나오지 않는 것은 이상한 침묵”이라며 “공천이 걸려있거나, 강성 지지자들로부터 혼날까봐 그러는 것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 거취에 대해 “당에서 중지를 모으고, 결단할 것은 결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 전 대표는 신당 창당 계획에 대해 “무엇이 국가를 위해 내가 할 일일까 하는 것을 늘 골똘하게 생각한다”고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정가에선 이 전 대표 선택지에 신당 창당이 포함된 것으로 해석했다.
이재명 지도부가 ‘친명’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도 이낙연 신당 창당에 무게를 더하는 대목이다. 민주당은 12월 7일 중앙위원회를 열고 대의원제 축소와 하위 평가 현역 의원의 감산 페널티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의결했다. 전체 중앙위원 605명 중 490명이 투표에 참여해 투표율은 80.99%를 기록, 찬성 331명(67.5%)에 반대 159명(32.45%)로 가결됐다.
이번에 의결된 당헌 개정안에는 현역 의원 평가 하위 10%에 포함된 의원들에 대한 감산 비율을 현행 20%에서 30%로 높이는 안과, 전당대회 투표에서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비중을 현행 60 대 1에서 20 대 1 미만으로 줄이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이 안건을 두고 비명계에서는 강한 반발이 나왔다. 친명 성향의 당원이 대거 유입된 현 민주당의 당원 구조상 개정안이 도입되면, 차기 총선 공천에서 비명계 인사들의 대거 학살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에서였다.
‘비명계’가 주축이 된 모임인 ‘원칙과 상식’ 소속 이원욱 의원은 대의원제 권한 축소와 관련해 “직접 민주주의가 정치권력과 결합할 때, 포퓰리즘과 정치권력이 일치화할 때 독재권력이 된다는 것을 최근에도 봤다”며 “이 대표가 말하는 국민 눈높이라고 하는 게, 그 국민이 과연 누구인지 굉장히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낙연 전 대표의 뒤를 이어 국무총리를 지냈던 정세균 김부겸 전 총리 측도 이재명 지도부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비명계’이자 ‘SK(정세균)계’로 알려진 이원욱 의원은 12월 7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정세균 전 총리가 민주당의 최근 상황에 대해 “본인이 여태까지 정치를 해오면서 가장 민주주의가 실종된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걱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 전 총리) 본인이 당대표 할 때도 정말 괴롭히는 사람들 몇 명 있었다. 그 당시에도 비주류라고 하는 이종걸 의원 등 있었는데, 그 분들을 만나 하나하나 설득하고 ‘같이 가자’고 했지 내치려고 했던 적은 없었다고 했다”며 “(정 전 총리는) ‘당은 원래 비주류가 항상 존재하는데, 그렇게 무시하고 짓밟으려고 하는 모습이 당의 민주주의냐’라는 생각을 갖고 계신다”고 덧붙였다. 정 전 총리는 직접 입장을 내지는 않고 있다.
김부겸 전 총리는 11월 28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정치 재개 선언은 아니지만 “내가 기여할 상황이 되면 움직이겠다”며 역할론을 부인하지 않았다. 김 전 총리는 이 대표 체제에 대해 “이 대표가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데, 더 포용적인 리더십을 보이면 당의 단합도 잘될 거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의 힘은 다양성 존중, 역동성에 있는데, 최근 이런 모습이 위축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강성 지지층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을 공격하는 건 백색 테러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세 명의 총리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문재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구심점을 잃긴 했지만, 친문계는 친명 못지않은 세를 갖고 있다. 친문계 의원 모임인 ‘민주주의 4.0’과 문재인 청와대 출신·고위직 모임인 ‘포럼 사의재’도 여전히 활동 중이다. 친문계 의원들이 현재 비주류인 비명계 의원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이 대표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친문 좌장’ 격인 전해철 의원은 12월 7일 자신의 SNS에 “총선 승리에 매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총선과 직접 관련 없는 대의원제 관련 논란을 만들어 당의 단합을 저해하는 것 역시 부적절하다”고 공개 비판에 나섰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이 차기 총선을 앞두고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정가의 중론이다. 문재인 청와대에서 일했던 민주당 한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1년 반 동안 윤석열 정부와 민주당 내에 수많은 일이 있었다. 다시 정치에 나서고 목소리를 낼 생각이었으면 이미 움직였을 것”이라며 “문 전 대통령 성품상 이재명 지도부 흔들기에 나서지 않으실 거라 본다”고 했다. 이어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친문계도 많은 분화를 거쳤다. 친문계였지만 현재는 친명계·범친명계로 분류되는 의원들도 많다. 따라서 친문계가 다시 나선다고 당내 큰 영향력을 발휘할 거라고 보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세 명의 전직 총리가 친문계를 규합할 구심점이 되지 못할 거라는 분석도 있다. 친문계 사정을 잘 아는 야권 관계자는 “이낙연 정세균 김부겸 전 총리가 문재인 정부 때 국무총리를 역임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친문계는 아니다. 다들 각자 계파를 보유한 정치인들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세 총리의 연대에 따른 신당 창당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쉽지 않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12월 7일 YTN ‘뉴스라이더’에 출연해 ‘문 정부 3총리 연대설’에 대해 “아직 셋이 함께 만날 계획은 없다”며 “억지로 두 분을 얽어가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원욱 의원 역시 앞서 인터뷰에서 “최근 이 전 대표가 굉장히 성급한 모습으로 언론 인터뷰나 강연에서 굉장히 센 발언들을 많이 말씀하시는데, 오히려 3총리의 연대 가능성이 더 줄어드는 것 아니냐”며 “만약 행동까지 같이 하시려고 한다면 이 전 대표가 조금 더 차분한 상황에서 세 분의 의견을 모아가는 것이 훨씬 더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표는 이낙연 전 대표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대표는 12월 5일 자신의 SNS에서 강성 당원들을 향해 “배제의 정치가 아니라 통합과 단결의 정치가 필요하다”며 “무너진 민주주의를 살리고 민생을 회복하려면 가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음날에는 “우리 당의 단합, 소통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누구나 열어놓고 소통하고 대화하고 협의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홈페이지에 올라온 ‘이 전 대표 출당을 요청하는 청원’ 게시물을 삭제하라고도 지시했다. 이 게시물은 12월 3일 당 홈페이지에 올라와, 5일 오후 7시 기준 2만 2100여 명이 동의하는 등 호응을 얻었다.
이어 이 대표는 이 전 대표와 직접 만나는 이른바 ‘명낙 회동’ 가능성을 열어두고, 양측이 실무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명낙 회동’에 회의적 입장을 밝혔다. 이 전 대표는 YTN ‘뉴스라이더’에서 “민주당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확인되면 오늘이라도 만나겠다”면서도 “사진 한 장 찍고 단합한 것처럼 보이는 만남이라면 의미가 없다. 아무 말 말고 그냥 따라오라는 건 진정한 단합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정가에선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 여부는 선거제 개편 결정에 달렸다는 평이 나온다. 내년 총선을 4개월여 앞두고 아직 비례대표 선출 방식 관련 선거제 개편은 확정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하자는 입장이고, ‘준연동형’으로 치러질 경우 위성정당 설립을 예고한 상태다. 반면 민주당은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런 와중에 이 대표가 11월 28일 라이브 방송에서 “선거는 승부인데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고 사실상 ‘병립형제’로 회귀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관련기사 ‘연동형’ 명분이냐 ‘병립형’ 실리냐…민주당 ‘선거제 개편’ 뒤숭숭한 이유).
현재 우후죽순 고개를 들고 있는 신당들은 상당수가 ‘연동형제’를 기반으로 비례대표 당선을 노린다. 하지만 거대 양당이 ‘병립형제’로 회귀를 결정하면 제3지대 신당들은 사실상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앞서 이원욱 의원은 BBS라디오 인터뷰에서 신당 창당에 대해 “(문 정부 세 총리뿐 아니라) 권노갑 전 고문, 유인태 전 의원조차 지금 당의 모습을 굉장히 안 좋게 생각하신다. 그분들이 전체적으로 연대하고 나온다면, 그것이 민주당이고 오히려 지금 남아있는 이재명의 민주당은 ‘개딸당’으로 전락한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비명계 신당’이 비례대표 선거에서 민주당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려 한다는 것으로 읽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한 전략통은 “이준석 전 대표, 이낙연 전 대표, 김부겸 전 총리, ‘원칙과 상식’ 등은 겉으로는 ‘이재명 대표의 약속’을 명분으로 준연동형제 유지를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 자신들의 제3지대에서 공간을 확보하려는 계산”이라며 “이러면 총선 승리가 절실한 이 대표 입장에서는 떠밀려서라도 병립형제 회귀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결국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앞서 민주당 전략통의 말이다. “선거법은 ‘개선’이 아니라 ‘개편’이라는 표현을 쓴다. 좋아지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바꾼다는 의미다. 연동형제의 도입 취지는 ‘다양한 이념을 가진 군소정당의 국회 입성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위성정당이 생기면서 그 목적은 이미 퇴색됐다. 병립형제로 돌아가면 정치개혁이 후퇴하는 거라는 비판도 나오는데, 실패한 제도를 왜 계속 가져가야 하느냐. 지금 불안정한 ‘위성정당 금지법’을 입법해 연동형제를 유지하면 또 선거에 혼란을 가중할 뿐이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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