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분당·TK·PK 등 보수 우위 지역 출마 원해…“당 선거까지 망칠라” 국민의힘 내부 시선 곱잖아
#보수 우위 지역 찾는 장관·참모들
12월 4일 윤 대통령은 19개 중앙 부처 중 6개 부처 장관을 교체했다. 취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연말 원포인트 인사가 유력하다. 이 밖에 박진 외교부 장관도 교체될 것으로 알려졌다.
수석 비서관급 교체도 단행됐다. 이진복 정무수석, 김은혜 홍보수석,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최상목 경제수석, 안상훈 사회수석이 교체됐다. 한국거래소 차기 이사장 물망에 오른 이진복 전 수석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지명된 최상목 전 수석을 제외한 나머지 장관과 수석은 총선에 나갈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 장관들 ‘총선’ 앞으로…윤석열 정부 개각 관전 포인트).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지역구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을이다. 분당을은 김은혜 전 수석과 박민식 장관이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장관은 12월 6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서 “(분당을 출마는) 사실”이라며 “20년 넘게 여기에 거주하고 있다. 분당을이 저한테 명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박 장관은 4차례 부산 북구·강서구 갑에 출마했다. 21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전재수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다. 2022년 5월에는 분당구갑 보궐선거에 도전했지만, 안철수 의원이 출마하자 포기했다.
김 전 수석은 명확하게 분당을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국회의원 시절 김 전 수석 지역구는 분당갑이었다. 그러다 8회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면서 지역구를 떠났다. 현재 분당갑 현역은 안철수 의원이다. 정가에선 김 전 수석이 이번에 지역구를 바꿔 분당을에 도전장을 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영 장관도 분당구을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은 12월 11일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3 전국 여성 CEO 경영연수’에 보낸 영상 축사에서 “국회로 돌아가기 위해 이번에 직을 내려놓게 됐다”며 출마를 공식화했다. 전날인 12월 10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초을에 갈지, 분당을에 갈지 또 다른 을을 갈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퇴임 후에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한다”고 적었다. 이를 두고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 글은 삭제된 상태다.
분당을엔 오랜 기간 지역구를 다져온 김민수 국민의힘 대변인도 경선에 나올 예정이다. 이 때문에 당 지도부가 교통정리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12월 6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김은혜 전 수석이 수원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배 소장은 MBC 출신인 김 전 수석이 같은 MBC 출신인 박광온 의원(수원시정)과 맞붙는 그림을 만들려는 여권 내부의 움직임이 있다고 전했다.
분당을 현역 의원인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누구든지 와도 좋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김 의원은 3선에 도전한다. 대통령실 주요 참모들이 잇달아 분당을을 노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김 의원은 12월 7일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분당을 지역이 만만한 건지 김은혜 수석에, 박민식 장관에, 이제 이영 장관까지 (출마자로 거론된다)”며 “저는 준비됐으니, 본인들끼리 기 싸움 마시고 누구든 나오길 바란다”고 밝혔다.
강승규 전 수석은 자신의 고향이 있는 충청남도 홍성군·예산군 출마를 공식화했다. 이 지역구는 보수 철옹성으로 꼽힌다. 강 전 수석은 12월 16일 충남 예산군에 있는 한 리조트에서 북 콘서트를 열며 총선 몸풀기에 나선다. 이 지역구도 교통정리가 불가피해 보인다. 지역구 현역 의원은 4선 홍문표 의원이다. 홍 의원은 선거 출마 의지를 꺾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수석은 사전 선거운동 의혹을 받기도 했다. 5월 23일 SBS 보도에 따르면 강 전 수석은 3월 홍성군과 예산군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장을 찾아 자신의 명함을 돌렸다. 당시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린 상황에서 시민사회수석이 업무에 집중하지 않고 지역을 찾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강 전 수석은 “시민사회수석으로서 본연의 업무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다른 인사들도 주로 보수 우세 지역구 출마를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경호 부총리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대구 달성군 출마가 확실시된다. 조승환 장관은 부산 지역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조 장관은 12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오징어 생산업계 지원을 위한 민·당정협의회’에서 ‘부산 출마가 거론된다’는 기자의 질문에 “뭐 그렇다. 부산이 연고 지역이니까”라고 답했다.
안상훈 전 수석은 서울 강남구갑 출마설이 돌고 있다. 부친인 안병구 전 의원의 지역구인 경상남도 진주시에 출마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두 지역구 모두 보수 강세지역이다.
정황근 장관은 고향인 충남 천안시을 출마가 예상된다. 천안을은 현역인 박완주 민주당 의원이 보좌관 성 비위 사건으로 민주당에서 제명됐다. 지역 민심이 민주당에 등을 돌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보수 진영 후보에게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박 의원은 2024년 1월 중으로 총선 출마 여부를 밝힐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희룡 장관의 인천 계양구을 출마 여부는 총선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계양을에 출마할 경우 ‘대장동 1타강사’를 자처하는 원 장관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맞대결이 성사된다. 원 장관은 12월 5일 국토교통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한 다음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떤 헌신과 희생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솔선수범하는, 다른 사람들이 하기 힘든 일이라면 더 앞장설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험지 출마를 시사했다. 다만 ‘계양을 출마설’에 대해서는 “특정 지역이나 특정 형태를 지금 정해놓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며 말을 아꼈다.
비서관급과 행정관급에서도 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을 대선 도전 초기부터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주진우 비서관은 부산시 수영구 출마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강명구 국정기획비서관은 경상북도 구미시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도 서승우 전 자치행정비서관(충북 청주·청원구)과 전희경 전 정무1비서관(경기도 의정부시갑) 등은 출마를 공식화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손자인 김인규 전 행정관은 김 전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부산 서구·동구에 출마를 선언했다.
내각과 대통령실 인사들이 격전지가 아닌 보수 우위 지역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여권 일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12월 8일 홍준표 대구 시장은 페이스북에 “천당 아래 분당이라더니 분당에 몰려드는 사람들 면면을 보니 총선 이기기는 힘들게 생겼다”며 “대통령이 어려우면 대통령의 은혜를 입은 그런 사람들이 자진해서 험지로 가야지 너도나도 양지만 찾아 자기라도 살겠다는 모습만 보이는 것은 총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경기도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여권 후보는 “(용산에서) 당내 중진들에게는 가혹할 정도로 불출마나 험지 출마를 압박하면서 내각이나 용산 출신은 지역구를 쇼핑하듯 행동하면 안 된다”며 “(대통령실과 당의) 윗분들끼리 경쟁하는 모습이 유권자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의문이다. 총선 패배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변수
변수는 대통령 지지율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 사례를 보면 대통령 지지율이 대통령실 출신들의 당락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볼 수 있다. 21대 총선 때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출마자는 30명(수석비서관급 4명, 비서관급 13명, 행정관급 13)이다. 이 중 19명이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 평가는 56%를 웃돌았다.
정태호 전 일자리수석(서울 관악을), 한병도 전 정무수석(전북 익산을), 윤영찬 전 국민소통수석(성남 중원을), 이용선 전 시민사회수석(서울 양천을) 등 민주당 우세 지역에 출마한 수석비서관급은 모두 당선됐다. 나머지 당선자들도 김영배 전 민정비서관(서울 성북갑), 민형배 전 사회정책비서관(광주 광산을), 신정훈 전 농어업비서관(전남 나주·화순) 등 당선자 대다수는 민주당 우세 지역인 수도권과 호남권에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낙선한 이들은 대부분 TK·PK 등 민주당 약세지역 출마자였다. 박수현 전 대변인(충남 공주·부여·청양), 오중기 전 균형발전선임행정관(경북 포항 북구), 허소 전 국정기획상황실 행정관(대구 달서을), 박남현 전 제도개선비서관실 행정관(경남 창원 마산합포) 등 11명은 고배를 마셨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노무현 탄핵 역풍’을 등에 업고 노무현 청와대 출신 인사 13명이 출마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이광재 사무총장,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등 8명이 당선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 종료를 10개월 앞두고 치러진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청와대 참모 출신들이 대거 낙선했다. 당시 이 전 대통령 지지율은 저조했다. 이때 청와대 출신으로 국회에 입성한 인물은 윤진식 전 정책실장, 김희정 전 대변인, 정문헌 전 통일비서관 등 3명뿐이다.
경기도의 민주당 강세지역에서 출마를 준비하는 여권 후보자는 “(지역구에) 해볼 만하다는 기대심리를 가지고 (대통령실 사람들이) 나오는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낮기 때문에 대통령실 경력 가지고 나오게 되면 (당이 선거에서)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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