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철곤 오리온 회장.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2012년 3월 아이팩은 200억 원 규모의 현금 배당을 통해 전체 지분의 약 53.33%를 보유하고 있는 담 회장에게 106억여 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약 2121%에 달하는 전례 없는 고액 배당이 이뤄진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아직도 뒷말이 가시지 않고 있다. 전체 배당 규모가 10억 원 안팎에 불과하던 회사가 어떻게 1년 만에 그와 같은 초고액 배당이 가능했냐는 것이다. 아이팩은 제과 포장재 등을 인쇄하는 일을 하는 소규모 업체에 불과했기 때문에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아이팩은 1981년 12월 2일 설립된 회사로 자본금 17억 2500만 원, 종업원 106명 규모의 회사다. 1988년 4월 오리온그룹에 인수된 이후 현재까지 주요 거래처는 오리온그룹 계열사들이다.
아이팩의 지분은 원래 박병정(전 대표이사), 박래균(전 대표이사), 음광진(전 전무이사), 이제춘(현 상무이사), 이영자(박병정의 처) 등 아이팩의 전 현직 임원들과 그 가족이 보유한 것으로 등재돼 있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법원(1심)은 사실상 이들은 차명주주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동양창업투자와 김용율의 지분합계 23.34%를 제외한 76.66%가 담철곤 오리온 회장과 그의 처 이화경 씨의 소유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담 회장이 뜬금없이 PLI를 설립해 지분을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재계의 한 인사는 “아이팩의 명의상 최대주주였던 박병정은 1932년생으로 고령이라 사망할 경우 차명주식과 관련된 상속 등에서 복잡한 법률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담 회장 측이 이 부분을 걱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당사자 외엔 정확한 진실을 알 수 없지만 1심 재판부도 담 회장이 ‘차명주식 명의 이전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담 회장은 2006년 12월 1일 조경민(당시 오리온그룹 전략담당 사장), 김승열(당시 아이팩 대표이사), 신은호(당시 아이팩 북경대표처 대표) 씨 등에게 자본금 1만 홍콩달러(약 120만 원)를 들여 홍콩 현지법인 형태로 PLI(Prime Link International Investment Limited)를 설립하게 했다. 설립 당시 상호는 ‘New Step Asia Limited’였고 2008년 3월에 현재 상호인 ‘PLI’로 변경했다.
1심 재판부는 PLI에 대해 아이팩 차명주식의 이전만을 목적으로 설립된 이른바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로 판단했다.
자본금 120만 원으로 시작한 PLI의 이후 행보는 놀라울 지경이다. 우선 PLI는 아이팩의 중국 자회사인 우량기업 ‘랑방애보포장유한공사’를 인수했다. 2002년 11월 1일에 설립된 랑방애보포장유한공사는 오리온그룹의 중국 현지 계열사를 대상으로 제과류 포장재 등을 인쇄 납품하는 중국판 ‘아이팩’이라고 할 수 있는 업체다.
2005년 매출액 80억 3879만 원, 당기순이익 6억 7537만 원 규모인 이 업체는 PLI에 매각되던 2007년 1월 26일 경엔 현재 장부상 기업가치가 53억 3410만 원에 달할 정도의 우량기업으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매년 약 10억 원 규모 주주배당금을 지급한 바 있다. 상당한 알짜배기 업체란 뜻이다.
PLI는 2007년 1월 이 회사를 총 220만 달러에 인수하고,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총 3회에 걸쳐 박병정 명의로 돼있던 아이팩 주식 22만 3000주 중 16만 1000주를 인수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아이팩의 지분구조는 담철곤 오리온 회장 53.33%, PLI 46.67%로 조정됐다. 여기서 PLI는 아이팩이 사실상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아이팩의 자회사이기 때문에, 아이팩은 담 회장 개인회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때부터 아이팩의 매출액은 2009년 513억, 2010년 586억, 2011년 602억 원 규모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아이팩은 2009년 19억, 2010년 338억, 2011년 9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유독 2010년도에만 아이팩의 흑자폭이 비정상적으로 컸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재계의 한 인사는 “대부분 같은 그룹 계열사들 간의 내부거래로 이뤄지는 회사라 수익에서 이 정도로 큰 차이가 나진 않는다”며 “여기엔 특별한 것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서울 논현동에 소재한 ‘916빌딩’. 아이팩은 2009년 말 이 건물 매각을 바탕으로 2010년 최대 흑자를 기록했고 2011년 200억 원의 현금배당을 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
이 건물 매각을 바탕으로 아이팩은 2010년 최대 흑자를 기록했고, 2011년 사상 최대 규모인 200억 원의 현금 배당을 실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담 회장과 아이팩 측은 왜 이 같은 무리한 배당을 추진했을까? 여기엔 담 회장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법적인 상황과 관련 있어 보인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당시 검찰수사를 받던 담 회장은 횡령, 배임 의혹을 받고 있던 160억 원에 대해 2012년 초 개인재산으로 변제한 바 있는데 이 돈에 아이팩 배당금이 포함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일요신문>은 아이팩과 담 회장 측의 지분이동 및 고액배당과 관련해 오리온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오리온 측은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 담철곤 회장이 지난해 성북동 자택 인근에 매입한 건물.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자택 인근 단층건물 수사 들어가자 서둘러 매입 왜?
담철곤 회장이 아이팩 소유의 성북동 건물을 매입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성북동에 자택이 있는 담 회장이 굳이 수십억 원을 들여가며 이 건물을 매입한 배경은 뭘까.
취재 결과, 2011년 5월 아이팩은 성북구 성북동 330-341에 위치한 지상 1층 지하 2층 건물을 담철곤 회장에게 64억 388만 4000원에 매각했다. 이 건물은 체력단련장, 주차장 등으로 사용되는 제2종근린생활시설로서 담 회장의 성북동 자택 인근에 있다.
이 건물은 당초 아이팩 서울영업소 및 아이팩의 자회사였던 갤러리해봉(2008년 9월 10일 아이팩에 흡수합병) 건물이었다. 그러나 검찰에 따르면 지하 1층은 담 회장의 딸 경선 씨를 위한 체력단련실 및 미술품 보관소, 지하 2층은 주차장 및 사진작업실로 사용돼왔다고 한다.
원래 이 건물 부지는 담 회장의 이웃인 정대호 등 3명이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3년 7월 11일 담 회장이 개인자금 39억 원을 들여 부인 이화경 씨와 공동명의로 매입했다가 2004년 4월 23일 42억 원을 받고 아이팩 측에 매도했다.
이후 아이팩은 2004년 9월 이 토지 위에 서울영업소 건물 신축공사에 착수해 2005년 12월 하순 지상 1층, 지하 2층 연면적 1358.5㎡의 서울영업소 건물을 완공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팩 회사자금으로 공사비용 18억 원, 이후 조경공사비용 9100만 원, 건물 개보수 비용 1억 3000만 원 등이 집행됐다.
담 회장이 이 건물을 매입하기 직전인 2010년 6월경엔 딸 경선 씨의 사진작업 스튜디오, 야외촬영실, 개인 서재, 휴게실 등 구조변경과 인테리어 공사비용으로 2억 9000만 원이 추가로 지출됐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또한 담 회장은 매입 전에도 이 건물에 평소 자신의 차량들을 주차해 두거나 자택에서 사용하지 않아 필요 없게 된 물건들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이러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며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담 회장은 울며 겨자 먹기로 위 건물과 토지를 매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오리온 측 관계자는 “회장님 일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만 답하며 자세한 해명을 기피했다.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