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일가 사익추구로부터 소액주주 보호해야”…정부 상법 개정 추진 의지 눈길
국내 주식이 외국의 주식보다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것을 의미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용어는 2000년대 초 처음 등장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내 주식이 저평가된 사실은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지난해 5월 발행한 이슈보고서에 따르면 2005~2021년 45개국(3만 2428개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주가-장부가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주가-장부가 비율이 1.2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평균 2.2에 비해 뚜렷하게 낮은 수치다. 세부적으로 선진국 2.2, 신흥국 2.0, 아시아태평양 1.7을 기록했다. 한국 증시는 조사 대상국에 견줘 31~48% 저평가됐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연구 결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존재함을 명확히 보여준다”며 “분석 기간 전반에 걸쳐, 비교 대상에 관계없이, 그리고 대부분 섹터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관찰된다”고 설명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후진적 기업지배구조 △회계투명성 문제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 △낮은 기관투자자 비중 등이 거론되고 있다. 특히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후진적 기업지배구조를 코리아 디스카운트 주요인으로 지목한다. 나머지 요인은 후진적 기업지배구조에서 발단됐다고 보는 것이다.
후진적 기업지배구조는 오너일가로 불리는 지배주주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액주주를 포함한 일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 구조를 의미한다. 지배주주가 일반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과정에서 회계시스템이 불투명하게 작동하고,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는 데 소홀하기 쉽다. 이런 문제가 고착화된 기업은 기관투자자의 외면을 받아 주가가 상승하기 어렵다. 김우찬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기업 지배구조 문제로 귀결된다”고 설명했다.
지배주주가 구조적으로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방식이 ‘터널링’이다. A 기업의 지배주주 일가가 자신의 개인회사 B 사를 따로 차려 A 기업에 높은 마진을 붙여 매출을 올리는 방식이다. 상품 거래뿐 아니라 합병, 지분 출자 등의 거래에서도 소액주주의 이익 침해가 의심되는 경우가 많다.
지배주주 일가가 별다른 검증 없이 그룹 계열사 상장사의 경영진으로 참여하면서 고액의 보수를 챙기는 것도 자본시장이 선진화된 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이다. 이들 지배주주 일가 경영인은 전문경영인보다 빠른 승진을 하는 경우가 특징이다. 이들 지배주주 일가 경영인들은 경영적인 판단을 내릴 때 모든 주주에게 이익이 되는 결정보다 지배주주 일가에 유리하도록 경영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지배주주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폐해를 막기 위해 이사회가 존재하지만 이들이 독립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는지 여부는 물음표가 찍힌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이사회 및 이사회 내 위원회에 상정된 안건 대부분(99.3%)이 원안 가결 되는 등 이사회 견제 기능도 여전히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국내 주요 그룹에서 지주사가 그 밑 계열사들과 지분 관계가 100%로 엮여 있는 경우는 드물다. 계열사들이 기업 공개 등을 통해 외부 투자자를 유치하기 때문에 고착화된 구조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국내 재계 순위 10위 그룹 가운데 지주사가 모든 계열사의 지분을 100% 확보한 경우는 없었다.
지배주주 일가와 무관한 외부 지분이 그룹 계열사에 있는 경우 이해상충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주사 입장에서 두 계열사가 거래할 때 지주사가 확보한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를 유도할 수 있어서다. 특히 계열사 가운데 지배주주 일가 지분 비중이 높은 계열사와 전혀 없는 계열사 간 거래가 진행되면, 지배주주 일가 지분이 높은 계열사에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한다는 의혹의 시각에서 자유롭긴 어렵다. 특히 지배주주 일가가 경영에 참여해 전 계열사의 경영적인 판단을 조율할 수 있는 경우 자신에게 유리한 경영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 재계 주요 그룹은 상당수가 이런 구조를 갖추고 있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 회장(변호사)은 “모회사 혹은 지주회사가 아닌 자회사, 계열사에 지배주주 개인 지분을 보유해서는 안 된다”며 “자회사, 계열사에 지배주주 개인 지분을 보유하면 이해충돌이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구조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지분구조가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며 “자회사, 계열사 동시상장을 아무 제약 없이 허용하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소액주주 권리 강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일 한국거래소가 진행하는 증권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을 여럿 제시했다. 이 가운데 투자업계의 눈길을 끈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사회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점이다.
한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는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밝힌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 가운데 유일하게 현실성 있는 것이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상법 개정안이었다”며 “개정안 추진 의지가 내년에 있을 총선 전 선거를 위한 것인지는 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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