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대화 감독이 시즌 중에 갑작스럽게 물러나자 자진사퇴인지 경질당한 것인지를 두고 논란을 빚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 이종범이 은퇴식에서 선동열 감독과 포옹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
3월 31일 프로야구계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이날 KIA 이종범이 전격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야구계는 그의 은퇴 선언에 한결같이 고개를 갸웃했다. 은퇴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2011시즌 이종범은 97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7푼7리, 3홈런, 24타점으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여기다 시즌 종료 후 마무리 캠프와 스프링캠프에 빠짐없이 참여한 터였다. 무엇보다 선동열 감독은 KIA 사령탑으로 부임하며 “이종범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천명했다. 이즈음 항간엔 ‘이종범의 갑작스런 은퇴가 이순철 KIA 수석코치의 작품’이란 이야기가 퍼졌다. 정황만 보자면 그런 오해를 살 만했다. 이 수석이 총대를 멨기 때문이다.
이종범이 은퇴를 발표하기 이틀 전. 대구에서 삼성과 시범경기를 마친 뒤 이 수석은 이종범에게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됐다”고 통보하며 “해태 우승 주역들이 죄다 초라하게 유니폼을 벗었다. 너만은 명예로운 마무리를 했으면 좋겠다”고 플레잉코치를 제안했다. 이종범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고서 31일 선 감독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면담에서 선 감독은 “나도 코치진과 같은 생각”이라며 플레잉코치를 재차 제안했다. 구단 역시 이종범의 은퇴 결심에 대비해 화려한 은퇴식과 국외 코치 연수 지원안을 준비했다.
그러나 이종범은 한창 새 시즌을 준비하던 자신에게 갑작스레 은퇴를 제안한 코칭스태프와 구단이 야속했다. 결국 전격 은퇴를 발표했다. 이종범을 사랑했던 팬들은 구단의 처사를 맹비난했고, 야구계도 “은퇴를 시키려고 작정했으면 뭐하러 시범경기까지 뛰게 했느냐”며 너무 늦은 은퇴 권유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특히나 이 수석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셌다. 은퇴와 플레잉코치직 제안이 순전히 이 수석 머리에서 나왔다고 믿은 까닭이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사실 이 수석은 전달자 역할만 했다. 시즌 전 KIA 코칭스태프는 개막전 엔트리를 짜면서 이종범의 거취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 이때 대다수 코치가 이종범의 개막전 출전에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선 감독은 코치진의 의견을 받아들여 심사숙고 끝에 이종범을 개막전 엔트리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플레잉코치 제안도 이 수석이 생각해낸 게 아니라 구단과 코칭스태프의 의중이 일치한 결과물이었다.
이 수석이 선 감독에 앞서 이종범을 면담한 것도 절차상의 문제였지 임의로 진행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이 수석은 이종범과의 면담에서 코칭스태프의 생각만을 전달하고, 이후 선 감독이 직접 이종범을 만나 담판을 지을 예정이었다.
이종범 같은 슈퍼스타의 거취를 수석코치가 결정한다는 건 프로야구의 생리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야구계의 중평이다.
▲ 6월 19일 열린 한국야구위원회 임시 이사회. 이날 이사회에서 제10구단 창단을 당분간 유보하기로 했다. 일요신문 DB |
프로야구는 시즌 전부터 벌통을 쑤신 듯 시끄러웠다. 프로배구의 승부조작 불똥이 야구계로까지 튄 까닭이었다. 지난해 12월부터 불법 사설 인터넷 프로츠포츠 베팅사이트를 조사하던 검찰은 프로야구에서도 승부조작이 횡행한다는 단서를 잡고 수사를 펼쳤다. 당시만 해도 야구계는 “다른 종목과 달리 야구는 경기조작이 어렵다”며 검찰 수사가 아무 소득 없이 끝나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LG 투수 박현준과 김성현이 경기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며 야구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결국 두 선수는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영구제명됐다. 당시 야구계는 두 선수의 경기조작 참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러나 두 선수의 소속구단 LG에 대해선 “더 큰 몸통은 잡히지 않고, 애꿎은 LG만 희생양이 됐다”는 동정론을 제기했다. 실제로 야구계엔 “경기조작 의혹 선수가 더 많은 구단 A, B 구단은 검찰의 수사망에서 벗어났다”며 “특히나 A 구단은 모그룹 차원에서 전방위적인 로비를 펼친 덕에 무사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과연 소문은 사실일까. 일단 소문의 실체는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 먼저 검찰은 두 구단을 수사한 적이 없다. A 구단이 전방위적 로비를 펼쳤다는 증거도 확인되지 않았다. 박현준, 김성현의 재판과정에서도 두 구단 선수들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심증마저 없는 건 아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두 구단 선수들이 경기조작에 관여했다는 소문은 이미 1, 2년 전부터 야구계에 떠돌았다. 현역 선수들이 더 잘 안다. 경기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 선수들이 “누구누구는 살아남기 힘들겠네”하고 예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모 야구인은 “경기조작 사건이 터지자 국외 전지훈련장에 있던 A 구단 단장이 급거 귀국했다”며 “그가 자기 팀 선수들의 구명을 위해 법조계 안팎을 바쁘게 뛰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심증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도 속출했다. 그 가운덴 A 구단 선수가 언제 어떻게 경기조작에 관여했는지를 밝히는 불법 사이트 관계자의 증언도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경기조작 파문이 사회적 이슈로 변질될까 우려해 박현준, 김성현을 사법처리하는 수준에서 수사를 매듭지었다. 경기조작 사건은 훗날 실체가 밝혀질 전망이다.
# 10구단 창단 불발은 모 대기업의 방해공작 탓?
6월 중순 야구계는 10구단 창단을 둘러싼 논란 때문에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야구계 발전을 위해 10구단 창단이 필요하다’는 쪽과 ‘아직 10구단은 시기상조’라는 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며 10구단 창단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다.
가뜩이나 6월 19일 KBO 임시 이사회에서 ‘10구단 창단 유보’를 결정하며 야구계엔 탄식과 안도의 한숨이 교차했다. 당시 이사회에서 내건 유보 배경은 ‘10구단 창단을 충분한 준비 없이 진행하면 현재 53개에 불과한 고교야구팀으론 선수 수급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프로야구의 질적 가치가 급격히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유보 배경이라 믿는 야구인은 거의 없었다. 숨겨진 배경은 따로 있었다. 모그룹 몸통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10구단 창단 논의가 전개됐을 때 구단 사장들 가운데 전면적으로 반대 의사를 펼친 팀은 롯데밖에 없었다. 롯데는 9구단 창단 때부터 “리그 확장은 시기상조”라는 뜻을 밝혀왔다. 10구단 창단 논의 때도 롯데는 일찌감치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하지만, 정작 10구단 창단을 무산시킨 건 다른 구단이었다. 이 구단은 NC 창단 때만 해도 ‘리그 확장’에 무척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10구단 창단 논의가 본격화하자 갑자기 롯데보다 더한 반대 투사가 됐다.
야구계엔 “이 구단 모그룹 최고위층이 구단에 ‘10구단은 절대 안 된다’라는 오더를 내린 다음부터 구단 사장의 입장이 돌변했다”며 “한술 더 떠 이 최고위층이 다른 구단 모그룹의 최고위층에 ‘10구단 창단을 반대하는 우리의 뜻을 지지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드라마 같은 이야기지만, 이는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났다. 구단 사장들과 KBO 내부에서도 이 같은 소문이 일정 부분 사실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그룹이 10구단 반대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세간엔 “이 그룹과 법정 분쟁 중인 모 기업이 이 그룹의 텃밭에서 10구단을 창단한다는 소문이 나돌자 아예 10구단 창단 싹을 자르려 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퍼졌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KBO는 이 그룹에 이미 “당신들이 우려하는 모 기업은 10구단 창단 의사를 밝히지도 않았고, 설령 밝힌다손 쳐도 창단을 허락할 계획이 없다”는 의사를 전달한 터였다. 이 그룹도 10구단 창단을 원하는 기업이 어딘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럼 이 그룹이 계속 10구단 창단을 반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모 야구인은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준비 당시 롯데의 창단 소식을 듣고 당시 이 그룹에서 했던 말을 소개했다.
“이 그룹은 롯데의 참여를 듣고 ‘그런 조무래기 기업이 프로야구판에 뛰어든다고? 우리와 격이 맞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지금도 비슷하다. 모그룹 최고위 실세들은 외형적으로 작은 기업이 자신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걸 싫어한다. 단순한 자존심, 그게 바로 10구단 창단 반대의 결정적인 이유다.”
▲ 김시진 전 감독과 정민태 코치. 현재 정 코치는 넥센 차기 감독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뉴시스 |
“요즘은 태풍만 불면 목이 허전해져.” 모 감독이 먹구름이 잔뜩 깔린 하늘을 보며 말했다. 언뜻 농담처럼 들렸지만, 농담 안엔 뼈가 있었다.
8월 27일 태풍 볼라벤이 전국을 강타하던 무렵, 한화 이글스 한대화 감독은 잔여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전격 경질됐다. 7월 중순 전반기가 끝날 무렵 구단 사장이 나서 “시즌 중 경질은 없다”고 선언했던 한화는 “성적 부진에 괴로워하던 한 감독이 자진사퇴했다”고 주장했다, 9월 17일 태풍 산바가 전국을 휩쓸던 즈음 이번엔 넥센 김시진 감독이 시즌 중 경질됐다. 넥센은 “전반기 승차 없는 3위로 끝나 포스트 시즌 진출에 기대감이 컸지만, 후반기 팀 성적이 추락하며 특단의 조치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한 감독의 경질은 과연 구단의 주장대로 자진사퇴일까. 김 감독은 갑작스럽게 경질을 통보받았을까.
먼저 한 감독이다. 구단은 자진사퇴를 주장했지만, 정작 한 감독은 해임이 결정된 날 “구단이 경질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한 감독은 “시즌 종료 때까지 팀을 이끌고 싶었지만, 구단의 입장은 달랐다”며 “자진사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감독이 갑작스럽게 경질 통보를 받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넥센 구단 수뇌부는 8월 말부터 김 감독에게 “팀 성적이 계속 하락하면 안 된다”는 우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 감독도 이를 알아 9월 들어 총력전을 펼쳤다. 하지만, 성적은 개선되지 못했고 구단은 보다 적극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경질 통보를 접하고 김 감독이 담담하게 구단의 결정을 받아들인 것도 사전에 이미 경질 언질을 받은 까닭이었다.
# 정민태 코치가 사퇴하려 했던 까닭?
김시진 감독이 전격 경질되고 하루 뒤였던 9월 18일. 넥센 정민태 투수코치가 구단에 사퇴를 통보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야구팬들은 “정 코치가 스승으로 모시던 김 감독이 경질되자 이에 반발해 동반 사퇴를 결심한 게 아니냐”며 정 코치의 의리(?)에 박수를 보냈다.
정 코치 역시 “김 감독을 모시며 젊은 투수들을 성장시키지 못해 늘 죄송했다”는 말로 자신의 사퇴 배경에 김 감독에 대한 미안함이 숨어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정 코치는 김 감독의 경질과 자신의 사퇴는 큰 연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코치는 구단에 사퇴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다. 마음 속으로 사퇴를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사표를 내는 등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정 코치 자신도 “생각만 있었다”고 말했다. 넥센 내부에선 “정 코치가 김 감독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겠지만, 투수 기용을 둘러싸고 김 감독에게 불만이 있었던 게 사퇴를 생각한 결정적 계기”라는 소리가 들린다.
실제로 김 감독과 정 코치는 투수기용과 경기 중 교체를 둘러싸고 생각이 달랐다. 대표적인 예가 선발 김영민 기용이다. 시즌 초 역투했던 김영민은 후반기 들어 줄곧 부진했다. 정 코치는 김영민을 2군으로 보내 컨디션을 재점검하는 게 낫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김 감독은 1군에서 계속 기회를 주라고 명했다. 투수 교체 때도 김 감독과 정 코치는 미세한 야구관의 차이를 보였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정 코치는 사퇴를 결심했고, 17일 구단 측에 사표를 제출하려 했다는 게 넥센 내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그러나 공교롭게 그날 김 감독이 경질되며 정 코치는 자신의 뜻을 관철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정 코치는 김 감독과 한배를 타려고 사퇴를 결심한 게 아니라, 김 감독한테서 떠나려 사퇴를 생각했다는 것이다.
현재 정 코치는 넥센 차기 감독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구단 수뇌부가 ‘팀을 잘 아는 젊고 역동적인 지도자를 원한다’고 천명했기에 정 코치의 감독 등극은 매우 유력해 보인다. 하지만, 정 코치가 감독이 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다. 정 코치야말로 김 감독의 적자 중의 적자이기 때문이다. 여기다 넥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많은 투수 유망주가 있음에도 그들의 성장이 더디다는 것이다. 야구계는 “정 코치가 이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