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17일 법무법인 바른에서 삼성 vs 애플 특허전쟁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좌담 시간을 가졌다. 왼쪽부터 김현석 미국변호사, 김상헌 대표이사, 하종선 변호사, 좌담을 진행한 기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일요신문: 지난 8월 24일 미국에서 애플-삼성전자 특허소송 배심원 평결이 있었습니다. 국내에선 대부분 예상치 못한 결과로 받아들이며 충격이 꽤 컸는데요, 어떻게들 보셨습니까.
하종선 변호사: 다들 좀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셨을 것 같아요. 배심재판에 가는 건 폭풍 속으로 배를 몰고 들어간다고 할 정도로 예측하기 어렵고 힘든 상황으로 가는 거거든요. 그래서 삼성 측이 어느 정도 좋은 결과 기대하고 들어갔으리라 생각했는데, 1조 2000억 원 배상 평결이 나왔으니….
김상헌 대표: 저희도 특허 관련 제소를 미국에서 한두 차례 당한 사례가 있어서 관심 있게 봤습니다. 보통은 합의로 종결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게 예상했었는데 굉장히 큰 액수 배상 평결을 받는 것을 보고,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구나 하며 아주 놀랐고 경영자로서 좀 당황스러운 면이 있었습니다.
김현석 변호사: 평결이 좀 충격적이긴 했지만 그다지 예상을 못했던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1조 원대의 데미지로 그날 삼성전자가 주가가 7% 정도 빠지더라고요. 그렇지만 그 이후에 금세 다시 회복을 했고, 시장에서 봤을 때는 오히려 좋은 광고효과가 있지 않았나, 결국은 지금 애플을 견제할 만한 데가 삼성밖에 없다는 얘기잖아요. 애플이 삼성밖에 신경을 안 쓰는 상황이고. 그런 메시지가 전세계로 나간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김상헌: 이 사건이 아마 시간이 지난 다음에 돌이켜보면 하나의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이런 쪽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대기업에서 사내변호사로 일했던 경험이 있어서 비교적 다른 경영자보다 덜 당황스러울 텐데요, 그래도 실제로 특허가 가장 어려운 분야입니다. 특허를 가지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추세라고 본다면 경영자로서는 분명히 이 점에 대해서 좀 더 인식하고 미리 대책을 잘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시사점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일요: 말씀대로 애플-삼성전자 외에 현재 듀폰-코오롱, 신일본제철-포스코 등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화로 대형 국제소송이 늘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에게 어떤 예방 정책이 필요할까요?
김상헌: 큰 규모 기업은 지적재산권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팀도 있고 경험이 쌓여있어 어렵지 않을 텐데, 저희 회사 정도만 돼도 해외에서 소송이 제기됐을 때 막막한 점이 있어요. 현지에 사무소도 없고. 이걸 응소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송달을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해외에선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비용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비용의 효율성을 고려하지 않고 조직을 구축하기는 참 어려운 것이 현실이죠. 경영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특허는 절대로 경영자 개인적인 능력으로 커버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조직보다도 첫째, 능력과 자격이 잘 갖춰진 사람을 쓸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같은 맥락인데,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다시 한 번 체크할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합니다.
하종선: 저도 공감합니다. CEO(최고경영자) 입장에선 제2, 제3의 조언을 받는 등 모든 단계에서 다각도의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무엇보다 초기부터 그런 걸 갖는 게 중요합니다. 많은 CEO들이 소송이 한참 진행된 다음에, 조금 어려워지거나 잘 안될 것 같을 때 담당자로부터 보고를 받게 되는데, 그러면 너무 늦다는 거죠.
일요: 경영적 측면에서 법무팀 구축 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어느 정도가 최적일까요?
김상헌: 좀 어렵습니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적어도 최소한의 담당자 정도는 꼭 필요한 비용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하종선: 대기업들의 경우에는 그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겠죠. 그런 대기업도 비용절감을 한다고,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소송인데도 불구하고 비용을 아끼려는 경향도 있어요. 중소기업들은 내부에 사람이 없으면 외부 로펌 중에서 그래도 적은 비용에 베스트 어드바이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는 것도 방법이겠죠.
김상헌: 조금은 다른 측면이지만 정부 관련 부처의 해외 사무소에서 작은 기업들에게 특허 소송과 관련해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건 어떨까 합니다.
일요: 그러한 예방에도 소송이 시작되면 각 단계에서 오너 회장, 전문경영인 CEO, 법무책임자 등 회사 내부 관계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김상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아야 합니다. 굉장히 억울하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소송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럴 때 윗사람의 감정적인 판단에 따라서 사건이 진행되기보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1차, 2차 다른 사람 걸 들어가면서 냉정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하종선: 오너나 CEO가 ‘그거 말도 안 돼’라고 얘기하면 밑에서는 끝까지 가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서 져도 좋다는 방향감을 가지고 소송을 진행하게 되죠. 우리나라에서는 괜찮을지 몰라요. 배상액이 크지 않기 때문에. 그런데 미국같이 배심제나 징벌적배상이 있는 나라에서는 배상액이 좀 크게 판결이 나올 수 있죠. 그래서 CEO가 초기에 화해냐, 소송이냐는 방향을 냉정하게 결정할 수 있는 구조를, 회사의 특성에 맞게 갖춰 놓아야 합니다.
김상헌: 실무진이 빠른 시일 내에 합의해서 종결하자는 보고를 하기 어려운 현실도 문제죠. 이제 화해나 합의 같은 것을 인정하는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해외 소송 같은 경우 소송비용도 그렇지만 지난한 과정에서 업무에 집중을 못하는 비용도 굉장히 크거든요. 화해도 하나의 합리적 대안이라는 점을 CEO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종선: 대기업이라면 소송팀하고 화해팀을 별도로 운영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합니다. 소송하는 사람이 세틀(Settle·화해)도 같이하려면 방향을 왔다갔다해야 되거든요. 별도 운영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양팀 간 서로 긴밀한 협의는 해야 되겠지요.
김상헌: 실체는 동일하게 보되 한 쪽은 좀 더 강한 포지션을, 다른 쪽은 유화적인 걸 보여준다는 의미에선 아주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됩니다. 대기업에서 일할 때 큰 국제소송 두 건을 합의로 끝냈는데, 같은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저는 법무책임자로서 굉장히 강력하게 소송을 고집하고 실제 소송에 응하면서 싸우는 이미지를 보여줬고 더 높은 경영자는 항상 상대방 경영자와 연락, 달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화해를 지향했습니다. 결국 저희가 목표했던 범위 내에서 화해를 이뤘지만 당시엔 다들 이런 큰돈을 물어줘야 되느냐고 할 정도로 받아들이기엔 큰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간이 지나고 평가해보면 굉장히 적은 금액으로 끝냈다고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 사업이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입니다.
일요: 이번 애플-삼성전자, 듀폰-코오롱 사건에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 배심원이 특허 관련 사건을 평결한 부분이 논란이 됐습니다. 국내 여론처럼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보시는지요.
김현석: 배심제는 미국 헌법상 보장이 돼있죠. 과연 이를 IP(Intellectual Property·지적재산권) 특허 다툼에까지 도입이 필요한가, 예외규정을 둬야 하지 않느냐, 이런 주장이 있습니다. 저도 특허만 다루는 재판부가 따로 필요하다는 생각은 합니다. 배심제를 채택한 나라에서도 IP 소송만큼은 대개 배심제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지만요.
하종선: 우리가 배심제를 전제로 하고 대응을 할 수밖에 없죠. 그런 얘기도 있잖아요. 배심원 선정이 승패의 85%를 좌우한다고. 때문에 배심원 선정 단계부터 성향파악과 배제 등 철저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목 트라이얼(Mock Trial·모의 배심원 재판)을 해보는 등 여러 준비를 해야죠.
김상헌: 이런 문제를 애국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미국에 배심제가 존재하고 거기서 재판이 이뤄지고 있는 거니까, 그걸 기본으로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일요: 가정이지만 삼성전자가 평결까지 가지 않고 초기에 화해에 중점을 뒀다면 이번 사건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하종선: 제가 듣기에는 디스커버리(Discovery·증거개시) 제도에 의해 삼성에 불리한 결정적인 이메일들이 애플에 넘어갔다고 하는데, 단순히 이 소송건만 국한해서 볼 때는 삼성이 세틀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야 했다고 생각되네요. 스티브 잡스가 죽은 지 얼마 안됐잖아요. 애플 자체도 미국의 아이콘인 데다, 스티브 잡스도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인물이라 평결까지 가면 불리했다는 거죠. 아마 삼성도 세틀하려고 노력을 했을 겁니다. 애플의 조건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단을 했겠죠. 그리고 장기적이고 더 큰 틀에서 종국적인 승리를 위해 이 소송건에서는 깨져도 좋다고 판단한 것일 수도 있고요.
김상헌 : 최근 해외에서 미국이 아닌 나라의 경영자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삼성에 우호적인 얘기들을 많이 해요. 평결에 대해서도 잘못된 거 아니냐고들 합니다. 다소 뜻밖이었어요. 그런 점은 충분히 삼성에서 고려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기업들에게는 걱정스럽게 비칠 수 있었다는 거죠.
일요: 앞서 언급됐지만 소송 당사자끼리 관련 서류와 증거를 공개하는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는 우리에게 좀 생소한데요, 이에 대비해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상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했던 게 내부 이메일이다, 그런 게 왜 나갔느냐? 디스커버리 제도 때문이라는 거죠. 제가 대기업에서 일할 때 제일 신경을 썼던 부분 중에 하나인데, 사내 메일이 프리빌리지(Privilege·비밀유지권) 보장이 안 되잖아요. 상대방이 소송 걸렸을 때 내놓으라고 하면 다 내놔야 한다는 게 미국 법에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땐 솔직히 놀랐습니다. 적어도 해외에서 주력사업을 하고 있고 소송에 항상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런 류의 것들을 빨리 회사 업무에 반영시켜야 합니다.
하종선: 미국 소송을 많이 하게 되면 당연히 느끼게 되는 건데요, 회사의 문서관리규정을 잘 만들어서 그 규정에 따라 관리해야 합니다. 설계, 상품기획 단계의 문서를 보면 경쟁 제품과 비교, 문제점 등에 대해 다 토의되거든요. 이들 단계가 마무리됐을 때 그런 이메일이나 내부 문서 등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 그리고 이메일을 평소에 쓸 때 어떻게 써야 할 건지. 이 문구 하나하나가 나중에 소송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하기에 초등학교에서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가르치는 것처럼 교육해야 되는 거죠. 문서제출 명령에서 결정적인 서류가 안 나가도록 미리 창고정리를 잘 해놔야지, 막상 소송이 시작되면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
김상헌: 비단 이번 사건만이 아니라 국내 소송이나 여러 절차에서도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되는 것들은 보통 내부문서거든요. 압수수색이 됐을 때도 치명적 결과가 있어서 개인적으로 많이 교육하고 신경 쓰는 것들은 사내 문서나 이메일 작성 요령입니다. 실제로 본의 아니게 남이 볼 때 오해하거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식의 글이 많아요.
김현석: 한 가지 더 얘기한다면 문서 관리도 중요하지만 소송이 제기됐을 때 문서를 훼손하면 더 불리해진다는 겁니다.
일요: 애플-삼성전자 소송에서 돌이켜보면 전략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을 듯합니다.
하종선 : 소송 전에 스티브 잡스가 “카피캣”이라는 말을 했죠. 그 말을 들었을 때 삼성으로서는 곧 애플로부터 소송이 제기될 거라고 생각하고 곧바로 대응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 삼성 내부적으로는 그렇게 움직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 명예훼손 소송을 할 것이냐, 소송은 안하더라도 최소한 소비자한테 카피캣이 아니라는 강력한 메시지는 내놓는 방안 등을 검토했어야 했다는 거죠.
김상헌: 그 부분은 굉장히 마케팅적인 요소가 있고 아주 전략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문화가 웬만하면 참는 성향이 있죠. 이런 일 갖고 미국까지 쫓아가서 명예훼손 소송하기 참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만, 결과적으로 보면 거기서부터 뭔가 약간 소송이 불리해졌나? 라는 생각도 할 수 있겠네요. 앞으로는 정말 경영의 범위 내에서 이런 형태의 전략적 행동, 아주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줬습니다.
하종선: 모든 글로벌 기업, 특히 미국과 유럽의 큰 회사들은 전략적인 검토를 한 후에 대외적 발언을 한다는 전제하에서 그 발언 뒤에 숨어져 있는 걸 예민하게 느끼고 이에 대비하는 전략적 기민성이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커졌기 때문에, 이제 우리만의 리그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 하종선 변호사 |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변호사(사법연수원 11기). 미국(캘리포니아) 변호사이기도 하다. 서울과 미국 LA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그는 1986년부터 10년간 현대자동차 상임법률고문으로 미국 PL(제조물책임) 소송 등을 방어했고 2004년 현대해상화재보험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하 변호사는 2008년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으로 영입돼 지난해 현대건설 인수전을 진두지휘한 바 있다.
▲ 김상헌 변호사 |
NHN 대표이사인 그는 사법연수원 19기로 1996년 서울지방법원 지적소유권전담부 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고 (주)LG에 입사, 부사장을 역임하는 등 10년간 LG그룹에 몸담았다. 하버드대 로스쿨(석사)을 졸업하고 미국변호사(뉴욕) 자격을 취득한 김 대표는 2007년 네이버로 유명한 NHN(주)의 경영고문으로 자리를 옮겼고 경영관리본부장(부사장)을 거쳐 현재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김현석 변호사 |
연세대 상대, 캐나다 오스굿 홀 로스쿨 출신인 김현석 미국변호사(뉴욕)는 자본시장 및 M&A(인수·합병) 전문으로 1997년부터 뉴욕 및 홍콩에서 활동, 현재 클리포드 찬스(Clifford Chance) 홍콩사무소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그가 소속된 클리포드 찬스는 영국계로 전세계 24개국 34개 지사에 3400여 명의 변호사를 둔 세계 3대 로펌 중 하나. 지난 7월 법무부로부터 외국법자문사 승인을 받아 한국사무소 개설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