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가 뭐지” 혼잣말에 1년 동안 억측·비방…일각 ‘아이돌에게 과한 도덕적 잣대’ 지적도
현재 국내서 가장 뜨겁게 사랑받는 그룹 뉴진스가 멤버 개인의 이름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것도, 문제가 될 만한 행동으로 빈축을 산 것도 아니다. 오직 칼국수를 몰랐기 때문이다. 아이돌 역사를 통틀어 ‘초유의 사과문’이라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춘천 출신인 민지가 어떻게 칼국수를 모르냐’ 비난 속출
‘칼국수 논란’의 시작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진스는 2023년 1월 유튜브 채널 침착맨의 라이브 방송에 출연했다. 유튜브 채널 특성상 가감 없는 대화가 오갔고, 라이브 방송인 만큼 팬들의 반응도 실시간으로 오르내렸다. 당시 방송에서 음식과 관련한 이야기가 대화 소재로 오르면서 칼국수가 언급됐고, 민지는 평소 새로운 음식에 낯가림이 있다고 말하면서 “칼국수가 뭐지?”라고 물었다.
전무후무한 ‘칼국수 논란’은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라이브 방송에 참여하던 일부 팬들과 누리꾼은 민지가 칼국수를 모른다고 말한 장면을 포착해 강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성인인 민지가 칼국수라는 흔한 음식의 존재를 모른다는 걸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한쪽에선 ‘모를 수 있다’는 반응도 나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론은 악화됐다.
특히 일부 극성 팬덤은 민지가 일종의 ‘아이돌 콘셉트’에 과도하게 빠져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짜 놓은 설정 등에 맞춰 진솔하지 않은 태도로 이야기를 했다는 지적이었다. 심지어 민지가 강원도 춘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실을 끌어내 ‘강원도 지역에서 특히 유명한 칼국수를 모를 수 없다’는 거센 공격까지 일어났다.
‘칼국수 논란’은 장장 1년 동안 계속됐다.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허위사실과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게시물까지 확산했다. 민지의 칼국수 관련 발언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유포하는 시도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민지와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는 이렇다 할 입장을 내지 않았다. 팬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논란이었기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칼국수 논란’의 2라운드가 시작됐다. 역시 민지의 발언이 시작이었다. 1월 2일 뉴진스는 팬 플랫폼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라이브 방송에 참여했다. 실시간으로 팬들의 의견을 확인할 수 있고, 멤버들의 이야기를 여과 없이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날 방송에서 민지는 1년 동안 자신을 괴롭힌 ‘칼국수 논란’에 다소 억울하고 답답한 듯 “이제는 뭘 먹지 않는다는 말은 그만하려고 한다”고 입을 열었다. 칼국수를 모른다는 한마디가 촉발한 논란과 억측을 의식한 발언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민지는 팬들을 향해 “모르니까 모른다고 했다”며 모든 사람이 칼국수의 종류와 자료를 다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듯 재차 되물었다.
민지의 이 발언은 ‘칼국수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라이브 방송에 참여한 일부 팬들은 민지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팬들과의 소통에 임하는 자세로 부적절하다는 날 선 비판도 제기됐다. 여론이 악화하면서 확인되지 않은 추측도 난무했다. 뉴진스의 다른 멤버가 “먹어봤다”고 밝힌 한 라면 종류를 두고, 민지가 먹어보지 않았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자 이번에는 ‘어떻게 OO면을 안 먹어볼 수 있느냐’는 억지 반응까지 쏟아졌다. 이어 멤버 사이의 관계를 의심하는 악플까지 쏟아지자 결국 소속사는 민지의 사과문 발표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민지는 1월 16일 발표한 사과문에서 “지난 2일 버니즈(뉴진스 팬덤 이름) 분들과 소통하는 라이브에서 저의 말투와 태도가 보는 분들께 불편함을 드렸다”며 “버니즈 분들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소통하는 라이브에서 좋지 못한 태도를 보여드린 것 같아 놀라고 상처 받았을 버니즈 분들께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또한 1년 전 ‘칼국수를 모른다’는 발언이 몰고 온 ‘파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민지는 “지난해 겨울 칼국수가 뭔지 모른다는 제 말에 어떤 반응들이 있었는지 저도 알고 있었다”며 “제가 편식이 심해 칼국수를 먹어본 적이 없다. 칼국수의 종류와 맛을 생각하다가 저도 모르게 ‘칼국수가 뭐지?’라는 혼잣말이 나왔다”고 돌이켰다. 이후 해명하고 싶었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점차 세력화하는 팬덤, 파워 집단화
보통 아이돌 스타나 연예인이 사과문을 발표하는 경우 대체로 여론은 ‘그럴 만하다’는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민지의 사과문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후폭풍을 만들고 있다. 대체 칼국수를 모른다는 이유로 사과까지 해야 하느냐는 근원적인 문제 제기다. 연예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사과 사건’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아이돌로 살기 어렵다’거나 ‘험난한 아이돌의 길’ 등의 목소리도 쏟아진다.
팬덤의 여론에 누구보다 예민할 수밖에 없는 뉴진스와 소속사가 사과문을 발표한 데는 팬들과의 소통 방식이 점차 중요해지는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 ‘여론 악화’와 ‘악의적인 공격의 확산’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사과문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팬덤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부분은 ‘칼국수를 모른다’는 민지의 발언 그 자체에 국한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소통하길 바라는 팬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민지가 지나치게 짜 맞춘 듯한 아이돌 스타일에 몰입한 것 아니냐는 지적, 팬들과 소통하는 민지의 태도에 불쾌함을 나타내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세력화하고 집단화하는 팬덤의 막강한 파워’를 엿볼 수 있는 사건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팬들과 아이돌 스타의 교감은 갈수록 거리를 좁히고 있다. 실시간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팬들의 의견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환경에 ‘칼국수를 모르니까 모른다고 했다’는 발언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태도가 됐다. ‘가깝게 소통한다’는 전제 아래, 아이돌에게 더욱 견고한 도덕적인 잣대를 강요하는 팬덤의 파워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으로 씁쓸함을 남기고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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