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임 11개월을 맞는 박원순 시장의 정책 행보에 서울시민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시민들은 다수를 위한 정책을 펴달라고 주문한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서울시는 지난 2월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중교통 요금을 150원이나 인상한 데 이어 상하수도 요금 등 각종 공공요금을 올렸다. 이에 시민들은 가뜩이나 물가가 비싼 데다가 서민경제와 직결돼 있는 공공요금이 잇따라 인상된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최근 박 시장을 두고 “무상 포퓰리즘이 지나치다” “서울만의 특성을 간과한 시정도 보인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노숙인 상대 정책은 그 중 하나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서울역 파출소 앞 지하보도에 온돌방을 가동했다. 또 6월에는 중고 스마트폰을 무료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역 인근의 직장인 김정호 씨(34)는 “황당했다. 노숙인들의 행태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감할 것이다. 온돌을 제공하고 스마트폰을 준다 해서 그들의 자활의지를 독려한다는 생각은 누구 머릿속에서 나왔는지 의아하다. ‘세금이 별로 나가지 않는다, 외국에도 좋은 사례가 있다’는 이유로 추진할 일이 아니다. 노숙인도 시민인 만큼 돕겠다는 건 좋은데 세금으로 시를 운영하는 시장은 정책의 효율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숙인 쉼터 관계자도 “의지가 있는 노숙인이라면 기존의 자활시스템으로도 충분하다. 스마트폰을 팔아 술을 마시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다수 시민들을 위한 시장이어야 하는데 극히 일부를 위해, 그것도 실효성조차 의문인 일을 벌이고 있으니 답답하다. 시장은 자원봉사자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광화문 광장 벼농사도 구설에 올랐다. 6월초부터 벼 모종을 심은 상자논을 설치한 서울시는 10월까지 벼 모종 상자 1400여 개를 설치해 230㎡ 규모의 농로를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도시 한복판인 광화문에 시민들의 보행권마저 침해해가며 벼농사를 짓는 것에 대해 불만도 속출하고 있다. 진보신당은 “광장은 모든 시민이 이용해야 할 공간이다. 박 시장은 도시농업 가치를 앞세워 광장의 공공성을 무시했다. 도대체 누가 광화문광장에서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설치한 상자묘를 시민들에게 보라고 강요할 수 있느냐”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광화문 주변에서 만난 직장인들은 “도심 한복판에 벼농사는 안 어울린다. 지역별 구역별 특성을 살려야 하는데, 시민들의 뜻을 반영했는지 묻고 싶다. 얼마 전 태풍 때 공무원들이 벼를 나르느라 부산떠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고 불평을 쏟아냈다.
도심 양봉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긴자양봉’을 벤치마킹해 지난 4월부터 시청 옥상에 양봉장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시는 내년부터 규모를 늘릴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공학부 교수는 “도시에서 자급을 목적으로 도시농업을 진행하는 것은 여러 어려움이 있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양봉협회의 한 관계자도 “그런 식으로 해서 경제성을 충족하기도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양봉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시장은 일자리 창출이나 물가안정 등 시정에나 신경써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행친화도시 마스터플랜’도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9월 23일 세종문화회관 앞 광화문 삼거리부터 세종로 사거리 550m 구간 내 ‘보행전용거리’를 시범 운영한 서울시는 내년부터 세종로와 종로 일부 구간을 ‘차 없는 거리’로 운영하고, 신촌동 연세로와 문정동 로데오거리는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대중교통까지 막아서 되레 시민들의 불편을 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반발도 크다.
주목할 점은 오세훈 전 시장이 추진했던 정책들을 갈아엎는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서해뱃길, 역세권 시프트, 한강르네상스, 도심관광호텔 등 오 전 시장이 추진했던 사업 대부분을 재검토하거나 무산시켰다. 특히 제동을 건 강남 재건축, 강남순환고속도로 등을 둘러싸고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강남순환도로 개통을 기다려왔던 주민과 직장인들은 “낙후된 서남권 발전을 기대했는데 막대한 이자를 물면서 연기라니 기가 막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박 시장의 임대 8만 호 정책 및 아파트 소형의무비율 상향조정에 따른 시민들의 항의도 줄을 잇고 있으며 일부는 소송도 계획 중이다.
도서관건립을 놓고도 말이 나오고 있다. 박 시장은 2015년까지 서울시 도서관을 99곳 늘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시 전 관계자는 “이명박 오세훈 시장 시절에도 도서관 사업을 추진했는데 박 시장 취임 후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전 시장이 추진했던 것은 무조건 탐탁지 않아하며 중단한 뒤 명칭만 바꿔서 시행하는 것 아닌가. 서울시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다고 들었다”라고 질타했다.
▲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청 옥상에 마련된 도심 양봉장에서 벌꿀을 채집하고 있다. 사진제공=서울시 |
실제로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한 실무직 간부는 ‘박 시장이 서울을 너무 모른다’며 짜증스러워 하더라. 무엇보다 정책의 연결성이 없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중간급 공무원도 “박 시장이 원하는 서울과 시민들이 원하는 서울은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핵심은 박 시장의 정책이 얼마나 많은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생활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다. 한 행안부 관계자는 “박 시장은 시민운동가가 아니다. 공공이익을 생각해야 하며 세금으로 충당된 재원으로 시를 꾸려나가는 만큼 우선순위와 효율성을 따져 써야 한다. ‘시민운동가 박원순’이 올인하는 부분은 대다수 시민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니 자꾸 ‘서울이 퇴화되는 느낌’ ‘엉뚱한 짓 한다’는 구설이 나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갈아엎는 비용이 더 드는 경우가 많다. 결국 세금 낭비다. 또 박 시장이 서민을 위한다고 추진하는 정책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굴지의 대기업 최고 경영자 출신인 천주욱 전 사장은 “박 시장처럼 시민운동가 출신이 선출직 지자체 수장이 되는 것도 필요하다. 실적 위주의 과도한 개발행정이나 전시행정, 불통행정 등 숨 가쁘게 달려온 서울에 대한 ‘삽질’이나 교과서적 혁신을 잠깐 쉬고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도 있다. 박 시장 취임 후, 관행으로 여겨왔던 많은 개발에 제동을 걸고 사람과 환경 위주로 생각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고 긍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하지만 천 전 사장은 “박 시장은 시장으로 할 일과 시민운동가로 할 일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박 시장은 전임자가 벌여놓은 사업을 부정하고 취소하기보다 전 시장이 만들어놓은 많은 하드웨어들에 걸맞은 멋진 콘텐츠를 개발하고 일자리 창출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