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지연 해소” 몸집 다시 확대, AI 도입 시도…공수처장 인사 당연직 참여 실마리 풀릴 가능성
한편 천 처장 취임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당연직 위원이 바뀌게 되면서, 난항을 겪고 있었던 공수처장 최종 후보 선정 논의도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예전처럼 다시 커지는 법원행정처
조 대법원장은 김상환 법원행정처장(대법관) 후임으로 천 대법관을 임명했다. 법원행정처는 전국 법원의 인사와 예산 등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핵심 보직이다. 판사들의 경력이 ‘재판’으로 가는지, ‘행정’으로 가는지 구분할 때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이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과거에는 법원 내 에이스들만 모일 수 있는 곳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법농단 논란이 제기된 곳이기도 했다.
이에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취임 후 법원행정처 폐지를 기치로 내걸고, 실제 재임 기간 행정처를 기존 3분의 1 규모로 축소했다. 하지만 상근 법관 수가 대폭 줄면서 재판지원 기능과 대국회 예산 확보 업무가 약화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다시 예전처럼 확대하겠다는 게 천대엽 처장의 계획이다. 현재 10명인 법원행정처 소속 상근 법관(심의관) 규모를 15~23명으로 증원키로 했다.
인사 시스템도 예전처럼 되돌린다. 판사들이 직접 법원장을 추천하는 제도도 폐지한다. 근무평정이 우수한 법관들을 순서대로 법원장 자리에 임명하기로 했다. “일을 잘하는 훌륭한 판사가 법원장이 돼야 한다”는 원칙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년간 쌓아온 법관 근무평정을 토대로 순위를 매겨 이를 법원장 인사 기준에 최우선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다. 사법부 재판 지연 현상의 원인은 법원 내 ‘성과와 보상’ 체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열심히 일한 판사들이 원하는 인사’를 더 추진할 방침이다.
또 빠른 사건 처리를 위해 재판부 근무 기간도 늘린다. 2월 법관 정기인사부터 재판장은 최소 3년, 그 외 법관은 최소 2년간 같은 재판부에서 근무토록 할 계획이다. 재판부가 바뀌는 것을 이유로 사건 처리가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법관 인사 이원화의 근간인 고법 판사들이 건강과 육아 등의 원인으로 대거 사직을 반복하는 현상도 손본다. 고법 판사 인사 시 지방 순환근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지방 근무 인사 전 퇴직’을 막겠다는 계획이다.
#빠른 재판 처리 위한 AI 도입 추진
빠른 재판을 위해 AI도 도입한다. 차세대 정보화 시스템 개통을 앞두고 재판 업무에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를 위한 예산도 편성했는데, 판사들에게 유사 사건들의 판결문을 추천하고 내용을 분석해 쟁점과 결론을 알려주는 AI 시스템 도입이 목표다. 판사들의 업무 부담을 경감시키고, 일처리 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함이다.
천 처장은 1월 15일 취임사에서 “재판과 민원 업무의 인공지능 활용과 같은 사법 서비스의 획기적 개선을 위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차세대 사법 전산 시스템의 시작과 고도화를 통해 재판 업무의 시간적·공간적 한계를 극복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미 특허법원 내에서는 AI를 연구하는 연구회도 꾸려졌다. 연구회 내 특허법원 소모임은 카이스트와 협업해 소규모 생성형 언어모델을 이용한 준비서면 요약 기능 구현 등의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파일럿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일단 준비서면을 요약하는 1단계 수준의 연구를 진행 중인데 향후, 준비서면을 비교 검토해 ‘원고와 피고 측이 서로 의견이 달라 다투는 영역과 다투지 않는 영역’을 분석하는 2단계 수준까지도 연구할 방침이다. 법원행정처 차세대전자소송추진단과도 협업할 계획인데 법원행정처는 판사 수를 늘리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AI 시스템을 법원에 도입해 판사들 업무 효율성을 높여 재판 지연을 해결하는 게 목표다.
#공수처장 최종 후보 추려지나
천 법원행정처장 취임으로 1월 20일 김진욱 공수처장이 퇴임하면서 공석이 된 공수처장 후임 인선 논의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등에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여야 추천 위원 각 2명, 법무부 장관(대행),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등 7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에서 위원 5명 이상이 찬성해야 공수처장 최종 후보로 선정된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는 2023년 11월 1차 회의를 시작으로 2024년 1월 10일까지 6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8명의 후보군 가운데 최종 후보 2명을 선정하지 못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장이었던 김상환 처장의 ‘반대 1표’가 중요했다.
최종 후보자 2명 가운데 1명은 오동운 법무법인 금성 변호사로 일찌감치 낙점됐고, 또 다른 유력 후보인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은 여당 측 위원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야당 추천위원들과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이 “공수처 폐지 의견을 냈던 이를 공수처장에 앉힐 수 없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고수했다고 한다.
야당 위원 2명 몫의 반대를 상수로 보더라도, 중도·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천대엽 신임 행정처장이 추천위에 합류해 ‘찬성’을 던지면 공수처장 후보 2명은 추려지게 된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 흐름에 정통한 법조인은 “김상환 전 처장이 사실상 야당과 같은 맥락으로 목소리를 내다보니 ‘5명’의 의견이 모이는 게 어려웠다고 들었다”며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의 인사로 들어오는 천대엽 처장인 만큼 공수처장뿐 아니라 향후 인사 때마다 정부, 여당과 기조를 함께하지 않겠냐”고 풀이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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