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지 효과는 있지만 근본적 차단 어려울 듯…“본인인증 시스템 강화가 더 중요”
암표는 보통 웃돈을 얹고 팔아서 이득을 챙길 목적으로 거래되는 불법적인 표를 말한다. 공연계에서는 이보다 더 넓은 범위로 공식예매처가 아닌 곳에서 판매되는 모든 표를 암표로 보고 있다. 고기호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부회장은 “공연 주최사가 허락하지 않은 곳이나 개인이 거래하는 표에 대해 모두 암표로 보고 있다”며 “암표로 인해 관객들은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공연을 관람하게 되고, 아티스트들이나 공연 제작자들은 암표 문제를 막기 위해 추가로 비용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공연 암표 피해는 해마다 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 1월 26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359건이었던 대중음악 암표 신고 건수는 2021년 785건, 2022년 4244건으로 증가했다. 공연을 관람하고자 하는 수요에 비해 판매하는 티켓은 한정돼 있어 관람객들이 암표를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가 지난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공연 티켓 예매 경험이 있는 전국 남녀' 57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19~29세 응답자의 32.8%가 ‘암표 구매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 최근 음악계에선 암표 거래를 막고자 NFT 티켓을 활용하는 아티스트 사례가 나왔다. 가수 장범준 씨의 경우 공연 티켓 예매가 진행된 직후 온라인상에서 티켓을 정가인 5만 5000원의 3배가 넘는 가격으로 판다는 암표 판매 글이 떠돌았다. 이에 장범준 씨는 공연을 이틀 앞두고 매진된 콘서트 티켓을 전격 취소 처리했다. 이후 현대카드, 모던라이언 등과 손잡고 NFT 형식의 티켓을 발행했다.
현대카드에 따르면 NFT 티켓은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돼 구매자 본인만 공연을 관람할 수 있고, 양도와 암표 거래도 불가능하다. 입장권 부정 판매에 자주 이용되는 ‘매크로(반복 작업을 자동화하는 프로그램)’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도 없다. NFT는 블록체인(가상화폐로 거래할 때 해킹을 막기 위한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소유권과 판매 이력 등 정보가 모두 블록체인에 저장된다.
NFT 티켓의 암표 방지 효과에 대해 전문가들의 판단은 엇갈린다. 일부는 NFT 티켓으로 소유권 증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암표 문제 해결에 효과가 있을 것이란 예상이다. 문영배 한국블록체인협회 수석 부회장은 “NFT로 입장권을 만들면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암표 거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블록체인 기업 관계자는 “NFT를 발행하는 주체가 믿을 수 있는 곳이라는 전제 하에 NFT를 활용한 티켓은 암표를 방지할 수 있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NFT 티켓을 최초로 발행할 때 본인인증 절차를 두거나 NFT 티켓을 양도할 때도 본인인증 절차를 두는 등 제한사항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회의적 시선도 있다. NFT를 활용하더라도 암표 거래를 100% 근절하기는 어렵고, NFT 기술 자체보다는 ‘본인 확인’ 장치가 암표 방지의 핵심으로 보인다는 시각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암표를 사고파는 것을 기술적으로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없다고 알고 있다”며 “기술적으로 100% 암표 거래를 막을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언론상에서 NFT로 과대 포장된 면도 없지 않아 있으며 티켓에 NFT를 붙인 것은 하나의 마케팅 수단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학내 메타버스금융랩 소장을 맡고 있는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NFT는 단지 소유권을 증명해주는 건데, 그게 실명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암표를 막는 매커니즘은 소유권을 증명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아니라 그 블록체인 기술로 소유권을 증명한 티켓과 본인 명의를 연결시키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NFT로 소유권을 증명을 한 후 본인을 증명할 수 있는 계정(실명 계좌, 주민등록번호, 본인 포털 아이디 등)과 엮어야 암표 방지가 가능하다고 홍 교수는 설명했다.
홍 교수는 “휴대전화 기기나 계정을 양도해버리면 충분히 암표 거래가 가능하다”며 “결국에는 실명인증과 계정이랑 엮는 것이 암표 문제에서는 더 중요한데 이건 블록체인 기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짚었다. 블록체인 없이도 본인인증은 가능하며, NFT 티켓 발행 사실을 알리는 데 더 목적을 두고 홍보에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홍 교수의 해석이다.
디지털금융전문가 예자선 변호사도 비슷한 결의 의견을 내놨다. “NFT 티켓의 핵심은 ‘전자티켓을 본인확인된 휴대전화당 1개씩만 판매’하는 것이지 NFT 기술이 아니다”라며 “아티스트 측에서 NFT 티켓 서비스에 대해 비용을 내고 이용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고, 모던라이언이 NFT 판매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마련한 이벤트로 보인다”고 말했다. 예 변호사는 “티켓 구매를 위해 거래소에 가입되는 효과가 있으므로, 이런 이벤트 시도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모던라이언은 현대카드가 NFT 사업 추진을 위해 설립한 자회사로, NFT 마켓플레이스인 ‘콘크릿’ 앱을 운영 중이다. 장범준 씨의 공연 티켓도 콘크릿에서 구매할 수 있다. 모던라이언은 설립 첫해인 2022년 적자를 기록했고 2023년에는 적자 폭이 더 커졌다. 상황이 어려운 만큼 NFT 티켓 발행으로 콘크릿의 이용자를 늘리고 마케팅 측면으로 활용했을 것으로 일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모던라이언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NFT 발행과 관리 비용은 아티스트가 아닌 현대카드와 모던라이언에서 지불한다. 예 변호사는 암표를 100% 막을 수 있다면 아티스트 측에서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NFT 티켓을 이용하겠지만 아직 그 단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암거래는 공연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스포츠 경기 암표, e-스포츠 경기 암표, 부동산 시장의 불법 전매, 중고거래 시장의 명절 기차표 암거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암거래가 성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NFT가 암표 거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듯이 부동산 시장이나 중고거래 시장 등 여러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암거래도 NFT 적용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조상규 변호사는 “각종 거래에서 NFT가 정확한 기록을 남기고, 위조나 변제를 할 수 없다는 점, 정확하게 권리가 이전된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뒷돈으로 현금을 거래하는 일 등이 일어나면 의미가 없다”며 “부수적인 거래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NFT가 모든 암거래를 막아준다는 것은 허상이다”라고 지적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NFT를 쓰라면 쓸 수는 있지만 암거래는 NFT를 써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티켓과 마찬가지로 계정을 양도해버리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유튜브 영상과 같은 온라인상의 자산들은 정부에서 관여를 하고 있지 않아서 NFT를 이용하는 게 장점이 될 수 있지만 부동산의 경우 정부에서 어느 정도 관리를 하고 있어 NFT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
계정이나 기기를 양도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모던라이언 관계자는 “로그인이 된 기기를 팔거나 계정을 양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기술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이어 “NFT 기술로만 암표 거래를 방지하는 것보다는 앱에서 처음 로그인을 할 때 본인 인증을 하고, 그 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양도나 거래가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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