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내부 사천 논란 확산 속 ‘친한 세력’ 부상…당 잔류 유승민 공천지 두고 윤-한 재충돌 가능성
얼굴을 붉혔던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1월 29일 대통령실에서 만나 나눈 대화였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이날 회동을 통해 둘의 갈등이 봉합됐으며, 여권 혼돈이 마무리됐다는 반응을 내놨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윤-한 갈등’은 김건희 여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시적 감정 대결이 아닌,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본격적인 권력 충돌에 가깝다는 판단에서다. 총선 공천을 앞에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양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갈수록 어색해지는 윤과 한
‘대통령실 사퇴 요구’ 후 정가에선 “둘의 관계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라는 관측이 돌았다. 이를 의식한 듯,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1월 23일 충남 서천 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함께 찾아가면서 화해 모드로 돌변했다. 체감온도 영하(-) 11.1℃, 눈바람도 거세 서 있기도 어려울 정도의 날씨였는데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보다 앞서 도착해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약 15분 동안 시장 어귀에 서서 윤 대통령을 기다렸다.
윤 대통령이 현장에 도착하자 한 위원장은 허리를 90도 가깝게 깊이 숙이는 ‘폴더 인사’를 한 뒤 웃으며 윤 대통령을 맞이했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과 악수한 뒤 특유의 ‘어깨 툭 치기’ 인사를 하며 검사 선후배로서 다정하고 친밀했던 과거로 돌아간 모습을 보였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화재 현장에서 지역 소방본부장으로부터 진압 상황을 보고받았는데,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보다 한 발짝 뒤에서 보고를 들었다. 서울에서 따로 왔던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서울에 올라갈 땐 대통령 전용 열차를 함께 탔다. 이후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약 2시간 동안 열차의 같은 칸에서 이야기도 나눴다.
서천에서 이뤄진 둘의 만남 분위기는 1월 29일에도 이어지는 듯했지만 이번엔 온도차가 확연했다.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오찬을 함께하며 전격 회동했다. 서먹한 분위기가 완전히 가셨다는 동석자들 전언이 나왔지만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사이에는 ‘격식’이라는 단어가 버티고 서 있는 장면이 확인됐다. 호형호제하던 사이가 아니라 이제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라는 공적 관계가 확립된 셈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낮 12시쯤 오찬장에 들어온 뒤 기다리고 있던 한 위원장, 윤재옥 원내대표와 차례로 악수하며 “수고 많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참석자들이 원탁에 둘러앉은 직후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에게 “이 방은 처음이신가요”라면서 존댓말로 물었고, 한 위원장은 “처음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그러면 이쪽으로 와보십시오”라며 한 위원장을 창문 쪽으로 데려갔다. 윤 대통령은 창문 밖에 보이는 용산 어린이정원, 드래곤힐 호텔, 분수 등 대통령실 주변 경관을 손으로 가리키며 한 위원장에게 소개했다. 그러나 이 대화는 오찬장 테이블까지 다 들려 ‘독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남 뒤엔 대통령실은 빠지고 당이 그 결과를 소개해왔다. 그러나 이날은 대통령실이 직접 나서 이도운 홍보수석 서면 브리핑과 관계자 설명을 통해 별도로 회동 내용을 밝혔다. 이를 두고 여권에서는 “뭔가 찜찜하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정국이 요동칠 만큼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크게 각을 세웠는데 윤 대통령이 격식을 차리고 한 위원장을 대한 모습을 보면 앙금이 완전히 가셨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해석이었다.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주변 여러 사람의 한결같은 평가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명품가방 논란에 빠진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댄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을 내치기는커녕 총선 출마 후보로 직접 발표하는 한 위원장 모습을 보고 윤 대통령은 몹시 마음이 상했다. 뒤에서 가격을 당했다는 생각까지 했을 것이 분명하다. 서천에서의 만남 장면보다 대통령실 회동이 오히려 더 어색하고 딱딱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람’한테 느낀 배신감이 그만큼 크고 결국 두 사람 간의 틀어진 관계가 봉합되기는 어려운 걸로 보인다.”
#진짜 대결은 지금부터
한동훈 위원장이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 주류인 ‘86세대’를 겨냥해 운동권 심판론을 들고 나온 배경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여권에선 한동훈 위원장이 이런 논리를 앞세우며 86세대에 맞설 자객 공천 포석을 쌓고 있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한 위원장은 1월 29일 비대위 회의에서 “자기 손으로 땀 흘려서 돈 벌어본 적 없고 오직 운동권 경력 하나로 수십 년간 기득권을 차지하면서 정치 무대를 장악해 온 사람들이 민생 경제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운동권 특권 정치의 심판을 시대정신으로 말한 바 있다”고 언급, 운동권 심판론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이런 기조 속에 여권 후보들은 민주당 86세대 정치인들이 자리하고 있는 지역구로 앞다퉈 몰려가고 있다. 국민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윤건영 의원 지역구인 서울 구로을에는 태영호 의원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옆 지역구인 구로갑(현역은 전대협 초대 의장 출신 4선 중진 이인영 의원)에는 YTN 앵커 출신 국민의힘 영입 인재인 호준석 대변인이 도전장을 냈다. 전대협 3기 의장을 지낸 임종석 전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출마를 준비 중인 서울 중·성동갑에는 경제 전문가인 윤희숙 전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그런데 한 위원장이 운동권 심판론에 힘을 보탤 일부 후보에 대해 지지 발언을 내놓으면서 여러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위원장은 1월 29일 당 회의에서 “임종석과 윤희숙, 누가 경제를 살릴 것 같나”라고 물으며 사실상 윤 전 의원 공천에 대해 응원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한 위원장이 이날 윤 전 의원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을 두고, 해당 지역에 출마 의사를 밝힌 용산 출신 예비후보의 공식적 반발까지 나왔다. 서울 중·성동갑 예비후보로 뛰고 있는 권오현 전 대통령실 행정관은 페이스북에서 “윤희숙 전 의원이 과연 민생 경제를 살릴 적임자인가”라며 한 위원장을 직접 때렸다.
윤석열 정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권영세 의원은 1월 31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가 한동훈 위원장 사천 논란에 대해 “마치 다 된 것처럼 하는 부분은 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 위원장의 윤희숙 전 의원 언급 등에 대해 “정제된 얘기를 하는 한 위원장인데 다시 한 번 잘 생각해서 좀 과하다는 소리가 안 나오게 했으면 좋겠다”면서 언짢은 모습을 드러냈다.
불이 날 조짐을 보이자 박정하 수석대변인이 나서 “당 지도부가 경쟁력 있는 후보들, 야당에 적절하게 대응할 지역구에 대해 경선을 만들고 우수 후보를 소개해주는 게 왜 문제인지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했지만 당 내부는 시끄러워졌다. 현재권력 용산과 미래권력 한 위원장과의 대결이 이제 시작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커졌다.
당내 세력이 없는 한동훈 위원장이 자신에게 우호적인 인사들에게 공천 우선권을 줄 것이라는 예측은 물론, 용산 출신 후보들에 대해 무더기로 손을 볼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용산 출신 후보 다수가 당선이 유력한 영남권에서 출사표를 던졌는데, 이들이 대거 당선되면 ‘친윤 세력’에 휘둘려 한 위원장의 미래가 불안해질 것이란 전망과 맞물리면서다. 한 위원장이 ‘친한 세력’ 확보를 위해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특히 이번 공천에서는 당대표 재량권이 대폭 확대됐다는 게 일관된 해석이다. 당의 공천 주도권을 강조해온 한 위원장은 이번 총선 공천 심사에서 직접 평가자로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현역 국회의원과 원외 당협위원장에 대한 평가에서 전체 15점 배점으로 반영되는 ‘당 기여도’의 경우 한 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가 유일한 평가자라는 게 당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도부 정성평가에 따라 후보자 평점이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되는 구조다.
경선에서 크게 유리하다고 평가받아왔던 용산 출신 영남권 후보자들부터 긴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참모 또는 부처 장·차관 출신 인사 20명이 공천이 곧 당선으로 불리는 여당 최대 지지 지역 영남에 후보 등록을 한 것으로 집계(2월1일 기준)됐다. 경북 10명, 부산 7명, 대구 2명, 경남 1명이다. 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않은 인사들까지 포함하면 이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점쳐진다.
용산 출신은 국민의힘 텃밭 TK(대구·경북)에서 압도적으로 많다.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제2차장(경북 영주·영양·봉화·울진) 허성우 전 국민제안비서관(구미을) 강명구 전 국정기획비서관(구미을) 이부형 전 행정관(포항북) 이병훈 전 행정관(포항남·울릉) 김찬영 전 행정관(구미갑) 조지연 행정관(경산) 등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한창섭 전 행정안전부 차관(상주·문경) 김오진 전 국토부 1차관(김천) 윤종진 전 국가보훈부 차관(포항북) 등도 출마를 준비 중이다.
#갈등 관리 필요성 나오지만 '글쎄'
공천을 두고 대통령실과 당 사이에 긴장 기류가 형성되자 여권에선 갈등 관리 필요성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다. 헌정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통령 임기 초반 비대위 체제라는 점을 감안할 때, 공천 과정에서의 사소한 다툼이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고 선거 전체를 망칠 수 있다는 이유다.
정치 경험이 오래된 여러 여권 관계자들은 이미 미래권력으로 등장한 한 위원장의 스탠스가 핵심 변수라고 입을 모은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한 위원장 지지율이 상승 추세, 윤 대통령 지지율이 정체 내지 하락 국면을 보이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앞서 대통령실 사퇴 요구에서 촉발된 ‘한-윤 갈등’ 때도 여론은 한 위원장에게 더욱 호의적이었다. 대통령실이 부적절하게 당무에 개입했다는 지적이 우세했던 것이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사석에서 “한 위원장이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여권 전체가 소용돌이에 빠질 수도 있고 조용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권 전체 내전을 불러올 수 있는 불씨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승민 변수’가 급부상했다. 거물급인 유승민 전 의원이 신당으로 가지 않고 여당에 남기로 했는데, 유 전 의원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두고서도 현재와 미래권력 충돌 가능성이 나온다. 유 전 의원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못지않게 윤 대통령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이어왔고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몹시 불쾌한 감정을 가져왔다는 게 정치권의 전언이다. 하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선 한 위원장이 유 의원을 격전지에 공천할 것이란 얘기가 퍼지고 있다.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은 “비대위는 유승민 전 의원을 수도권 선거에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렇게 되면 용산과의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는데 이런 문제들에 대해 여권 전체가 좀 더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지만 지금은 너무나 소통되지 않은 결정이 많은 형국이어서 큰 불이 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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